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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레전드들의 다양해진 '두 번째 인생'

사장님, 방송인, 유튜버까지... 주목 받는 은퇴 선수들의 선택

21.01.21 13:33최종업데이트21.01.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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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프로 운동선수들이 현역생활을 마치고 은퇴하고 나면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한정적이었다.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의 길에 나서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일부는 중계 해설위원 등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소수에 불과했다. 은퇴 후 생계를 위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업을 하거나 스포츠계를 아예 떠나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퇴 선수들의 행보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구단 경영자-방송인-유투브 크리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은퇴선수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축구인'이라는 본인의 근본과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여러 분야에 진출하여 축구인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이미지를 전파하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은 최근 K리그1 최강클럽인 전북 현대의 '클럽 어드바이저'로 위촉된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차범근-손흥민과 함께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현역 시절 일본 J리그와 유럽의 영국-네덜란드 등 해외무대에서만 활약했던 박지성이 축구인생 최초로 K리그 구단의 일원이 된 것.

박지성은 현역 은퇴 후 행정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꾸준히 공부를 지속해왔다.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 코스 과정을 수료했고, 2017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KFA)에서 유소년 축구 총괄 임원인 유스전략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박지성이 맡은 클럽 어드바이저는 일반축구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직책이다. 박지성은 말그대로 전북 구단을 위한 '조언자가 되어 프로와 유소년의 선수 선발, 육성 및 스카우팅, 훈련 시스템 구축 등의 업무에 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비상근직이고 영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북이 박지성이라는 엄청난 인지도를 지닌 슈퍼스타를 통하여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박지성이 경험한 유럽의 선진축구 시스템을 흡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작지 않다.

이에 앞서 한국축구의 또다른 레전드 이영표는 지난해 12월 도민구단 강원의 대표이사로 전격 선임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조광래(대구)나 허정무(대전)처럼 선수 출신이 프런트의 최고수장 자리까지 오르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44세의 이영표는 현재 K리그 구단 중 최연소 사장이기도 하다. 경영자로서는 아직 경험이 일천한 이영표 대표이사의 파격 선임에 의구심의 시선도 있었지만, 강원이 비시즌 내내 이적시장에서 적극적이고도 효율적인 선수 영입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면서 그 중심에 선 이영표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흔히 그러하듯, 현역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은퇴후 지도자로서의 활약을 기대한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오래전부터 지도자의 길에는 뜻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류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준비된 행정가'의 길을 추구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타 출신 감독은 많지만, 정작 유능한 '선수 출신 행정가'로 인정받는 인물들은 아직 많이 부족한 한국축구에서 이영표-박지성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다른 은퇴 선수들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K리그 올타임 넘버원 공격수'로 꼽히는 이동국은 지난해 은퇴 이후 연이은 방송출연을 통하여 '스포테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미 현역시절부터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장기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동국은 은퇴 직후 <뭉쳐야찬다> <나의 판타집> <백반기행> <정글의 법칙> 등 수많은 방송의 러브콜을 받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농구를 소재로 한 신규예능 <뭉쳐야쏜다>의 고정멤버로도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인 출신으로 방송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역시 안정환을 꼽을수 있다. 안정환은 <뭉쳐야찬다> <냉장고를 부탁해> <안싸우면 다행이야> <청춘FC> <위켄게임>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외모-실력-입담-인간미 등을 두루 겸비한 캐릭터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월드컵 대표팀 중계 해설위원이나 축구 관련 콘텐츠를 내세운 방송의 단골 출연자로도 활약하며 본업인 축구와의 인연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또한 안정환의 대중적 성공은 축구인들의 미디어 활용에 대한 인식 전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출연을 일시적인 외도나 부업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강했고 희화화에 대한 거부감도 강했다면, 최근에는 축구인들이 적극적으로 미디어 출연을 반기고 활용하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김병지-조원희-현영민-이천수-송종국 등은 예능 출연이나 축구 중계 해설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개인 유튜버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K리그 감독을 역임했던 황선홍 전 대전 감독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조기축구 경기를 해설하거나, 후배 안정환과 함께 야외 생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의외의 허당미를 발산하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현직임에도 지난해 E축구를 소재로 한 <위켄게임>에서 소속팀 포항 선수들과 함께 출전하여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등도 예능방송을 통하여 감독 시절의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던 이미지와는 달리 유쾌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호감을 샀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은퇴 축구인들이 지도자의 길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2017년부터 3년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뒤 지난해 12월 K리그1 울산 사령탑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 김남일(성남)과 설기현(경남)은 지난해부터 K리그 구단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차범근 전 감독의 아들 차두리(오산고)처럼 프로는 아니어도 아마추어축구 발전과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사례도 있다.

축구인들이 은퇴 후에도 다양한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은퇴후 축구계를 떠나서 잊혀지거나, 지도자에 입문했다가 한번의 실패로 재기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감독님이건 사장님이건 혹은 연예인이나 유튜버이든, 어떤 직함을 달고 있더라도 그들의 본질이 축구인이라는 사실은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성공한 축구인들이 은퇴 후의 인생 역시 훌륭하게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후배들이나 팬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례가 된다. 축구 레전드들의 인생 2막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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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이영표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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