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목숨을 걸고 다시 캄보디아로 간다는 내 친구

그곳엔 언제쯤 민주주의의 꽃이 필까?

등록 2021.01.27 10:38수정 2021.01.27 14:32
0
원고료로 응원
3년 전인 2018년, 캄보디아구국당의 부대표인 무어쏙후어가 한국에 왔을 때 '캄보디아 총선과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간담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에 노동하러 왔다가 캄보디아 청년들을 조직하여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분도 만났다. 그는 한국에 와서 민주주의를 보고, 경험하면서 캄보디아에서도 자라나는 아이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길 바라며 캄보디아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선 현재 훈센 총리가 36년간 집권하며 독재가 계속되고 있다. 훈센은 1985년 32세에 총리직에 오르면서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신년 만찬에서는 자신의 장남을 후계자로 언급하기도 하면서 정권과 권력을 대물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 출처: 훈센 페이스북

 
훈센은 헹 삼린, 체아 심과 함께 캄보디아의 암흑기였던 크메르루즈의 폴 포트 정권에 반대하며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의 지원을 받으며 프놈펜을 함락해 폴 포트 정권을 무너트렸다. 이후 수립한 캄보디아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거친 후 1982년 29세에 부총리가 되었고, 1985년에 총리가 되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훈센 세력은 폴 포트를 몰아내고 크메르루즈 시대를 끝낸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훈센과 함께 폴 포트 정권을 무너트린 헹 삼린은 1976~1978년 크메르루즈 제4보병사단 사단장을 거쳐 1979년 베트남 괴뢰정부에서 대통령을 지냈고, 체아 심 역시 크메르루즈 지역 위원장을 했었다. 2011년에는 캄보디아 부총리 7명 가운데 3명, 선임 장관 가운데 3명, 캄보디아인민당 소속 상원의원 30명 가운데 8명이 크메르루즈 출신이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안정과 평화를 명목으로 크메르루즈의 권력자들에게 잇따라 면제권을 주웠다. 이는 훈센 정권 역시 크메르루즈와 많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뚜어슬랭 제노사이드 박물관에서 ⓒ 장지혜

 
2017년 캄보디아 대법원은 총선을 앞두고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을 강제해산 시켰다. 결국 훈센의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은 야당 없이 총선을 치르고 국회 125석을 싹쓸이하였다. 총선에서 일당 독재의 성공을 하고 나서야 국가 반역 혐의로 구속되었던 당 대표 켐 소카를 비롯해 인권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등을 석방하였다. 이후 켐 소카와 함께 야당 대표였던 삼 랑시를 비롯한 지지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훈센 정부가 캄보디아 내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이메일을 비롯하여 SNS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한국에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도 감시망을 피하지 못한다. 2016년 반정부 정치평론가 켐 레이가 의문의 피살을 당했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도 무자비하게 체포하는 등의 공포 정치를 펼치고 있다.

캄보디아 국내에서 훈센에게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훈센이 집권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군사, 경제, 언론 등의 분야를 모두 그의 자녀들과 친인척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글로벌 위트니스'가 발표한 '적대적 인수(Hostile Takeover)'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큰딸은 '바이욘TV'와 일간지 사주이며 관련 기업만 22개가 넘고 18개 기업의 대표이사로 있다. 그의 남편은 도박회사 주식을 보유 중이며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큰아들은 육군 중장으로 총리 경호부대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아내는 8개 기업과 직접적인 연계가 있으며 멀티상영극장과 LG전자제품 현지 독점 판매권을 가진 현지 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은 군 고위직에 있으면서 큰누나와 함께 전기 회사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막내아들은 현직 국회의원으로 여러 기업군을 보유한 재벌이며, 그의 아내는 현 부총리의 딸로 6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막내딸은 고급 쇼핑몰을 포함해 7개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수입회사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막내 사위는 7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프놈펜 국제공항 확장 공사 프로젝트와도 관련이 있었다. 훈센의 여동생은 양주, 네스카페, 티슈 등 일반소비재 수입회사에 대한 캄보디아 내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훈센의 부인은 2000년부터 캄보디아 적십자사의 총재를 맡고 있으며 그 자리를 이용하여 캄보디아인민당의 선거운동 본부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글로벌 위트니스가 발표한 '적대적 인수(Hostile Takeover)' 보고서 중 ⓒ global witness

 
개인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훈센에게 대항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강제 셧다운을 시키거나 해산시키거나 활동가와 대표를 체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캄보디아 국내 시민단체들은 대표가 외국인이거나 이중국적자이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둔 캄보디아에선 지난해인 2020년 11월, 캄보디아구국당의 국내외 활동가와 지지자 13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137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에게 소환장과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재판은 2021년 1월과 3월로 나눠서 진행한다고 하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범죄 행위는 '국가 전복 선동 및 음모 혐의'였다. 지난 2019년 11월에도 국외 망명 중인 삼 랑시는 캄보디아로 돌아가려고 시도했으나 캄보디아 정부가 이를 쿠데타 시도로 간주하여 입국이 무산되었다. 이때 삼 랑시의 캄보디아 귀국을 지지하거나 도왔던 사람들을 '국가 전복 선동 및 음모 혐의'로 본 것이다. 한국에서도 훈센 정권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지지한 한국 거주 캄보디아인 11명에게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 중 60명이 1월 14일에 프놈펜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CNRP 지지자와 피고인의 가족 등은 재판 참관을 할 수 없었고, 피고인들의 이름이 틀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캄보디아계 미국인 변호사 테리 셍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법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 극장이고 정치 서커스입니다." 결국 이들에 대한 재판은 훈센 정권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활동과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함의 성격이 짙다.

 

프놈펜 법원의 체포영장 ⓒ 캄보디아 활동가 제공

 
"캄보디아 국민들은 킬링필드라는 제노사이드를 겪으며 여전히 공포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이장들이 야당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야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서류 발급에 불이익을 주고-캄보디아에선 이장들이 주민들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서류를 발급해준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불안감으로 인근 국가로 피신하는 경우도 있다."
- 2018년 8월 10일, '캄보디아 총선과 민주주의의 위기'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캄보디아 민주화를 위한 집회를 하는 캄보디아 공동체에도 훈센의 군인, 경찰, 지지자, 심지어 주한캄보디아 대사가 협박을 서슴치 않는다. 집회 때는 캄보디아 경찰이 한국으로 입국하여 집회를 감시하고 촬영해 갔다. 우리는 캄보디아에 귀국하면 바로 체포당할 것이다."
- 2018년 8월 10일, '캄보디아 총선과 민주주의의 위기' 간담회에서
 

참여연대에서 진행했었던 '캄보디아 총선과 민주주의의 위기' 간담회 ⓒ 장지혜

 
이미 오래전부터 캄보디아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훈센. 이 막장 정치를 어떻게,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2018년에 만났던 그는 최근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로 돌아가 국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에 나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지만, 그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캄보디아 민주주의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캄보디아 #민주주의 #독재 #훈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 자유, 열정과 함께 다채로운 사람을 꿈꾸며 사는 지구인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