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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아닌 OX? 주차대란에 '효과만점' 신호등

[월간 옥이네] 주차문제 해결 위한 옥천군의 아이디어

등록 2021.01.28 16:37수정 2021.01.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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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개구리주차 신호등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읍 통계청사거리에서 옥천경찰서를 잇는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부터 서점, 의류매장, 할인마트, 식당, 미용실, 50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미술사까지. 옛것과 새것이 이 길에 한데 엉켜있다.

엉켜있는 것이 또 있다. 자가용을 가지고 거리를 찾은 몇몇 사람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엉거주춤, 인도에 한쪽 바퀴를 걸친다. 일명 '개구리 주차'다. 기이한 주차로 엉킨 듯 보이는 풍경이지만 여기에는 어떤 질서가 숨어있다. 개구리 주차는 오직, 'O.X 신호등'에 초록빛이 켜져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O.X 신호등 사용법

도로 한 면에 8개씩, 총 16개. 위풍당당하게 줄을 서 거리를 지키는 O.X 신호등이다. 낯선 신호등이지만 그 사용법은 간단하다. 붉은색 X표가 떴을 때는 (개구리)주차 불가, 초록색 O표가 떴을 때는 (개구리)주차 가능이다. 주의할 점은 이 O,X 신호등이 매일 표정을 바꾼다는 것. 오늘 왼쪽 신호등 8개가 O표였다면 내일은 오른쪽 신호등이 O표로, 반대편은 주차불가다. 오늘 합법이던 주차가 내일은 불법이 되는 셈이다.

좁은 골목,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세운 것이기에 주차면적을 최소화한 '개구리주차'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호등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그 외 시간대는 옥천군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운영시간이 지나면 거리를 밝히던 O.X 신호등은 마법이 풀린 듯 일제히 툭,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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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개구리주차 신호등 ⓒ 월간 옥이네

 
개구리주차 거리 변천사

이곳에 O.X 신호등이 생긴 것은 지난 2018년 여름의 일이다. 통계청사거리~옥천경찰서 구간은 불법 주차가 많아 교통이 혼잡했던 곳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도로 양쪽에 차량을 주차했었죠. 그중에는 장기주차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길이 복잡했어요. 차가 오랫동안 가게 앞을 막고 있으면 아무래도 간판을 가리고 손님들이 출입하기에도 불편하지요."


10년 넘게 이곳을 지켰다는 인근 상인의 말이다.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은 도로 이용객들에게도, 상가 주인들에게도 반갑지 않은 존재였지만 주차를 마냥 금지할 수만은 없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마땅히 주차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불법'인 개구리 주차를 일부 '합법'으로 인정하자는 묘책이 생겼다. 2004년 9월의 이야기다. 이를 결정하기까지 옥천경찰서장, 옥천군 관계자, 개인택시지부장, 운수회사대표, 인근 상가대표들이 모여 토론회를 벌이기도 했다.

2003년 10월 11일 옥천신문 기사에 따르면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옥천읍 시가지 일원에 설문지를 돌린 결과, 당시 3안이던 '개구리주차 형식으로 주차'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홀·짝수일로 한쪽 도로만 주정차하는 방법'과 '일주일 교대로 홀·짝일을 변경하는 방법'이 뒤를 이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된 '홀·짝일 교대 한쪽 차선 개구리주차 허용'이었다.

"매일 주차 가능 위치가 달라지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차량이 오랫동안 주차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6년 후인 2011년, 홀·짝일 교대 개구리주차는 일주일 단위 교대로 바뀌었다. 교통질서지도요원 운영예산이 없어지면서 충분한 단속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탓이었다. 이후 교통질서지도요원의 빈자리를 대신해 '안전 고깔'을 한쪽 도로 끝에 세웠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안전 고깔은 운전자들의 손에 쉽게 들려 자리가 옮겨지기 때문이다. 가벼운 기존 구조물 대신 이보다 무겁고 큰 안전 고깔을 100개 설치하고 몇 달 후에는 불법주정차를 단속하는 카메라를 가동하기도 했다.

효과가 있는 듯 보였지만 플라스틱 구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전 고깔은 다시 부서지고 망가졌다. 이 자리를 대신한 것이 지금의 개구리주차 O.X 신호등이다. 일주일 단위였던 교대 주기도 격일로 돌아왔다. 

'예외'가 인정되는 거리

신호등이 세워진 350m는 '예외'가 인정되는 거리다. "원칙은 개구리주차만 가능하지만, 평행주차를 했다고 해서 무리하게 단속하지는 않는다"는 군 관계자의 말처럼 이 거리는 인간적이다. 교통질서지도요원으로 시작해 안전 고깔, 단속 CCTV, O.X 신호등으로 질서를 지키는 방식은 변해왔다. 어쩌면 앞으로 또 바뀌어나갈지도 모르겠다.

옥천경찰서 교통관리과 박대서 계장은 "도로가 좁은 것이 주차 문제가 생기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는 "대전 오정동 공구 거리에서 했듯 가로수를 제거하고 턱을 낮추어 차를 쉽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외'가 인정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는 것은 이 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테다. 해가 뜨고 지듯 개구리주차 O.X 신호등 거리는 오늘도 깜빡깜빡, 숨을 쉰다.

[참고자료]
옥천신문 '경찰서-등기소, 주정차 난상 토론회' (2003.10.11. 00:00)
옥천신문 '경찰서부터 등기소까지 개구리주차 양성화' (2004.08.13. 00:00)
옥천신문 '통계청-경찰서 구간 불법주차 '이젠 안 돼'' (2013.05.10. 11:34)
옥천신문 '주정차단속 카메라 9대 설치 가동' (2013.02.01. 11:30)
옥천신문 '통계청 사거리-경찰서 개구리주차 신호등 설치' (2018.07.05. 22:53)
 

월간 옥이네 2021년 1월호(통권 43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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