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 대신 정치하라

[청년정치 반성문 ③]

등록 2021.01.22 09:21수정 2021.01.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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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정치가 필요할까? 솔직한 마음으로는 조금 회의적이다. 앞서 말했듯 젊은 신체나이를 제외하고는 기성정치인과 구별되는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고 청년 자체에 대한 정의도 모호해서 대표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정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①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첫째,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청년들의 정치는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돈도 권력도 없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문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청년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정치혐오, 양당구도의 기성정당, 승자독식 선거제도, 정치행위를 틀어막는 공직선거법,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치자금법, 시민들을 정치와 격리시키는 교육제도, 기성세대의 편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다. 사실상 청년들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정치의 폐쇄성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결국 돈·인맥·학벌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의 주변부에도 들어가기도 어렵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로 대표되는 모든 집단이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② 자신들이 살아갈 사회를 만들기 위해

둘째, 청년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연방주의를 공고히 한 토마스 제퍼슨이 "과거 세대의 결단이 다음 세대를 구속해선 안 되기 때문에 20년마다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기성세대가 끊임없이 다음 세대를 구속할 수 있는 이유는 청년세대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흔히 청년세대를 수동적으로 바라본다. 좋은 사회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는 식의 사과는 그저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청년세대의 3중고는 모두 기성세대의 잘못, 막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간혹 "열심히 산 게 죄냐. 감사를 받아야지 기성세대가 뭘 잘못했냐"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뉴데일리 류근일 칼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국민의당] 청년세대 고통, 막지못해 미안합니다 | 안철수(20.07.21)(유튜브 동영상), [뉴데일리] 후레자식세대? 기성세대 사과할 일 없다(12.01.16))

청년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민주화·산업화를 달성했다는 기성세대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이전 세대가 결정한 대로 살아야 하는가. 이제 그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으로 삶을 체념하는 시대를 청년들이 직접 청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청년정치를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현재 청년들은 수많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과거세대를 대체할만한 정치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만들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을 가로막는 정치문화적 장벽들을 허물고 우리 세대의 사회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기 위한 제반 작업들을 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성정치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정치 기반은 언제나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항상 대립하며 발전해나가야 한다. 대립을 해야만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비교할 수 있고 그래야만 과거의 악습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는 과거 50년대처럼 정치깡패들도 없고, 70년대처럼 모이기만 하면 잡아가는 정보기관도 없고, 80년대처럼 사회를 바꾸자는 말 한 마디에 몽둥이부터 내리치고 납치해 고문하는 사람들도 없다.

사회적 약자의 정치참여를 위해서라도, 지금 살아가는 사회를 직접 바꾸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은 정치적인 세력화를 도모하며 기성세대에 경고장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인 장벽을 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분명한 것은 기성세대와 선을 긋고 새롭게 청년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미 정치인이에요"

다음으로 '청년'이라는 말을 버려야 한다. 청년정치와 관련한 한 가지 일화를 공유하고 싶다. 2019년 정의당 진보정치 4.0 아카데미 1기의 기획과 실무를 맡아 독일 베를린으로 연수를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연수단은 사민당, 기민당, 녹색당, 좌파당 같은 정당의 청년당과 각종 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중 좌파당과의 간담회가 인상적이었다.

27살 대학생 Franzi Lucke는 좌파당 청년당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9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질 때 한 수강생이 "이후 정치인이 된다면 어떤 꿈을 꾸고 있냐"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Franzi Lucke는 "저는 이미 정치인이에요(Ich bin schon ein Politiker)"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연하게 청년단위에서의 역할을 끝내고 공직을 맡아야 정치를 한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 독일로 연수를 왔는데도 불구하고 청년정치인을 공직을 맡은 정치인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Franzi Lucke는 나에게 우문현답을 준 것이었다. 크게 반성했고 그 이후로는 공직을 맡지 않은 청년이라도 훌륭한 정치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이 땅의 청년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청년' 딱지를 떼고 그냥 '정치'하자. 당신들은 어린 사람도 아니고, 약자의 옷을 입고 기성세대의 시혜를 호소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 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 나갈 자질을 갖춘 시민이다.
#청년정치 #청년 #정치 #기성세대 #기성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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