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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겠다며 정부가 열어젖힌 투기 판도라 상자

[取중眞담] 빌라와 다세대까지 들썩... 용적률 완화는 답이 아니다

등록 2021.01.26 18:44수정 2021.01.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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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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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종로구 신문로2-12 구역. 이곳에서는 용적률을 법정 한도의 120%까지 높이는 도심 고밀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 연합뉴스

 
집값 폭등으로 비판을 받던 정부가 도심 역세권 용적률 확대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도심에 주택 공급을 확대해 집값을 잡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지만, 집값 안정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부동산 투기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택공급 확대'를 공언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하루 뒤 파격적인 용적률 확대안을 내놨습니다.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보면, 역세권 복합용도개발 지구단위계획으로 일반 주거지역의 용적률을 700%까지 상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도심 용적률을 파격적으로 늘려 도심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일반적으로 주거지역 용적률은 최대 300%입니다. 100㎡의 땅이 있다고 하면, 이 땅에 짓는 건물의 연면적이 300㎡를 넘길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용적률 제한은 도시 생태계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만약 용적률을 대폭 완화해주면 난개발이 일어나면서 교통과 일조권, 인프라 부족, 도시 경관 훼손 등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문제들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도시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용적률을 역세권 주변 지역에 대해 최대 700%까지 늘려준다는 겁니다. 종전에 3층짜리 저층 건물만 지을 수 있었던 땅이 7층짜리 건물을 지을 금싸라기 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서울 지역 약 100여개 지하철역 주변이 고밀 개발 특혜를 받게 됩니다.

풀어버린 용적률 제한, 투기꾼들의 환호

누가 좋을까요? 서울 역세권에 땅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 춤판을 벌이고 있을 겁니다. 더 많은 건물을 지어 팔 수 있게 되니 앉아서 돈이 굴러들어온 격입니다. 불로소득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겁니다.


정부가 용적률 완화로 추가 공급되는 주택의 일부를 기부채납으로 환수하더라도 기존 용적률을 적용해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용적률 완화는 부동산시장에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개발 호재'입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계획이 확정되면 일단 역세권 주변 땅값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며 "강북아파트 밀집 지역도 사업성 향상에 따라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아파트 가격을 자극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미 부동산 투기꾼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정부가 파격적 특혜를 내건 공공재개발 정책을 발표한 뒤부터 서울 지역 다세대·빌라 주택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6개월째 상승하고 있습니다. 공공재개발 사업을 발표하기 전에는 상승과 하락을 오갔지만, 지난해 6월부터는 줄곧 올랐습니다. 서울 지역 빌라·다세대 주택의 매매가지수는 지난해 6월 0.06% 상승했고 12월에는 0.19%로 상승폭이 더 커졌습니다.

이제 정부의 '용적률 특혜' 계획까지 확정됐으니, 역세권 인근 빌라·다세대 주택 상승세는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집값을 밀어 올리는 형국이 됐습니다. 주택 투기판을 조장하면서 "투기를 잡겠다"는 공허한 말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택공급과 동시에 올랐던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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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주택 공급 문제는 집값 급등의 원인도, 해법도 아닙니다. 집값이 언제부터 이렇게 올랐을까요? 박근혜 정부 시절 비싼 아파트를 대거 분양하면서부터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주택인허가 건수는 공공과 민간을 포함해 총 76만5300호였습니다. 2014년(51만5200호)과 2013년(44만100호)보다 20만~30만호나 늘었습니다.

주택 공급이 늘었는데 집값은 올랐습니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3.5%, 수도권 매매가격은 4.4% 올랐습니다. 주택 공급량이 적었던 2014년 매매가격 상승률(전국 1.6%, 수도권 1.5%)보다 3배 이상 높았습니다.

2016년에도 주택인허가건수는 72만6000호로 상당한 규모의 주택 공급이 이뤄졌지만, 매매가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2016년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0.7% 올랐고, 서울 주택가격은 2.1%, 서울 강남은 2.5% 상승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그 경향이 더 심해졌습니다. 당시 한해 주택인허가건수가 65만3000호에 달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상승세는 더욱 커졌습니다.

2017년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은 3.6%, 서울은 4.4%나 올랐습니다.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비싼 값을 받고 분양하고, 그 가격에 따라 주변 시세도 자극하면서 상승세가 지속돼 왔습니다.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적정 수준을 찾아가는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공급이 아닙니다. 투기를 조장하는 부동산 시장 질서가 문제입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8·2 대책을 시작으로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핀셋 대책 등으로 오히려 투기꾼들이 움직일 공간을 열어주는 맹탕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오히려 다주택자(임대사업자)에겐 세금 특혜를 줬고, 지금도 그 특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를 올린다고는 하지만 투기로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에 비하면 여전히 새발의 피 수준입니다.

정부는 투기꾼들에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주택공급'이라는 틀린 해법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무작정 공급만 늘리려다보니 용적률 완화 같은 정책들만 쏟아집니다. 투기꾼들과 토건세력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겁니다. 보수 언론들은 신이 나서 "규제를 더 풀어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집값 급등과 출산율의 추락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 심각해진 집값 급등은 국가의 미래를 좀먹고 있습니다. 비싼 집값은 출생률 감소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주거유형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월세를 사는 무주택 신혼가구가 첫째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은 유주택자에 비해 55.7%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세 거주의 경우 유주택자보다 첫째 자녀 출산 가능성이 28.9% 낮았습니다.

유엔인구기금 집계를 봐도 한국의 출산율은 198개국 가운데 198위, 꼴찌입니다. 황진영 한남대 교수가 지난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이 1억원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0.042명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보고서는 대체로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17년 신생아 수는 35만7800명이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32만6800명이었고, 지난 2019년에는 30만2700명으로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니, 2020년 신생아 수는 20만명대로 내려앉을 것이 유력해보입니다.

이렇게 출산율이 저조해지고 있는데 난개발로 주택만 대책 없이 늘리면, 나중에는 이를 살 사람이나 있을까요? 그렇다고 부동산 투기로 돈을 좀 번 사람들이 아이를 너덧 명씩 낳을까요?

집값이 오를수록, 그로 인해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록, 무주택 젊은 세대의 출산 포기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더 늦기 전에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짚어보길 바랍니다. 도심 고밀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문재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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