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6 12:28최종 업데이트 21.01.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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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새해라고 세운 계획도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괜찮습니다. 작심삼일이라고 새해에 마음먹은 건 사흘 이상만 지키면 잘 한 겁니다. 다이어트와 함께 새해 계획의 양대 산맥이 금연인데,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담배를 끊었습니다. 아버지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호기심에 한 모금 피워 봤다가 눈물 콧물 다 흘리고 나서부터는 담배를 멀리했거든요.

15년 전 싱가포르에 이민 와서 이주노동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라도 담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돈 버는 게 힘들 때나 부모님 생각, 친구 생각에 외로울 때는 담배 한 모금 할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포기했습니다. 담배에 붙어 있는 혐오스러운 사진들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는 2004년부터 흡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진들을 담뱃갑에 새겨 넣었는데 시커멓게 변한 폐나 썩어 버린 치아 암에 걸린 환자의 사진까지는 어떻게든 참겠는데 흡연으로 인해 사산한 태아의 사진은 도저히 못 보겠다 싶어 그냥 담배를 포기했습니다.
 

싱가포르 담배갑에 새겨져 있는 사진들. 돈 주고 사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 이봉렬

   
편의점에 담배를 진열해 놓은 모습을 보면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보였는데, 계산대 근처에 진열된 담배가 충동구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진열을 못하도록 법을 바꿔서 그나마 좀 낫습니다. 손님이 담배를 주문하면 보관함 문을 열어 하나씩 꺼내 줍니다. 싱가포르에서 담배 광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진 때문이 아니라 담배가 비싸서도 못 사 피웁니다. 담배 한 갑의 가격이 14 싱가포르 달러로 우리 돈 1만2천 원 정도입니다. 가끔 한국 다녀갈 때 몇 보루 사서 가면 되겠다 싶지만, 여기는 본인이 피우던 담배 한 갑 (개봉한 상태에서 19개비까지) 말고는 담배 반입 금지입니다. 전자담배, 물 담배, 씹는담배… 다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국할 때 담배를 몰래 가져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담배가 싼 바로 옆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담배를 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싱가포르 담배에는 SDPC(Singapore Duty-Paid Cigarette) 마크가 찍혀 있습니다. 세금 제대로 낸 담배란 표시입니다. 시내에서 이 마크가 없는 담배를 피우다가 경찰에게 적발이 되어 출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최소 200달러(약 17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니까 담배를 몰래 가지고 들어올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건물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안내문. 세금을 냈다는 표시 (SDPC) 가 없는 담배를 피다가 적발이 되면 벌금을 내야 될 수도 있습니다. ⓒ 이봉렬

 
실내에선 당연히 금연이고 학교 같은 교육 시설의 5미터 이내도 금연입니다.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호텔 로비, 주차장, 정부 및 공공기관 소속 건물, 레크리에이션 시설, 저수지 등 어지간한 곳은 다 금연 구역입니다. 흡연실이 따로 있거나 거리의 쓰레기통 위에 재떨이가 함께 비치되어 있다면 거기선 피워도 됩니다. 대신 재떨이 겸용 쓰레기통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 걸 예방하고 있습니다.

거리 전체를 금연 거리로 지정한 곳도 있습니다. 오차드 로드가 그 곳인데 서울로 치면 명동 혹은 강남 사거리쯤 되는 시내 한가운데입니다. 2019년부터 오차드 로드 전체를 금연 거리로 지정해서 그 많던 흡연 구역과 재떨이를 다 치우고 보행 중 흡연까지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담배 안 피우는 입장에서는 거리를 걷다가 다른 사람이 피는 담배 연기를 맡지 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흡연자들은 대로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마련된 흡연 구역에 가서 담배를 피워야 하니 불편하게 됐습니다.
 

번화가인 오차드로드 전체가 금역구역으로 지정되어 거리 어디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가 없습니다. ⓒ 이봉렬

   
2018년까지만 해도 흡연이 가능한 법정 흡연 나이가 만 18세였습니다. 그런데 2019년에는 만 19세로, 2020년에는 만 20세로 상행 되더니 올해 2021년 1월부터는 만 21세로 또 바뀌었습니다. 만 21세 미만인 사람이 담배를 피우거나, 구매 또는 소지만 하는 경우에도 최대 300달러(약 25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또한 만 21세 미만인 사람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체는 첫 위반 시 최대 5천 달러(약 425만원), 재위반 시 최대 1만 달러(약 850만원)의 벌금이 부과 됩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싱가포르의 흡연율은 2015년 16.5%에서 2019년 10.6%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국 흡연율 21.5% (2018년 기준)의 절반 수준입니다. 한국도 담뱃갑에 혐오 사진을 붙이고 담배 가격을 올리는 등 금연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담배 광고가 일정한 규제 속에서 허용이 되는 등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 모든 걸 다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금 때문일 수도 있고 담배 사업자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일 겁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세운 금연 계획이 실패했다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설날이 있으니까요. 설날부터 다시 금연 계획 세우고 하루하루 실천해 나가면 됩니다. 우리의 금연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도 조금 더 노력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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