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루 쓴 첫 문장은 없다

[초보자를 위한 삶의 주인공 되는 글쓰기 비법] 2장

등록 2021.01.26 10:59수정 2021.01.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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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간 단식 광대에 대한 흥미는 매우 줄어들었다."(288p)
- 카프카 전집1 <변신>(솔출판사)에 수록된 '어느 단식 광대' 첫 문장.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말기 단편 소설 중 하나인 <어느 단식 광대> 첫 문장입니다. 작가는 후두결핵으로 짧은 삶의 터널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말하기도 버거웠던 그였습니다. 퇴고를 거듭하여 남긴 이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일까요?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광대의 단식은 그 시대의 유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왔고, 그에게 말 걸기를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단식이 가장 쉬웠습니다. 그가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유행이라는 것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너무 늙었고, 일년에 한 번 서는 시장의 가설 흥행장에서 단식행위를 하는 것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는 대형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동물 우리를 보러 가는 길목에 그의 자리가 놓였습니다. 그는 그전에 했던 40일의 단식 기간보다 더 많은 단식을 함으로써 스스로 예술 행위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 것을 떠나 혐오감을 보였습니다. 그는 옛 영광을 떠올리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그의 사후에 그가 있던 자리에 표범 새끼 한 마리가 입주했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그 자리에 몰려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단식 하는 광대는 무료한 삶을 달래는 낯선 재미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상상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이 반복되면 쉽게 지루함을 느낍니다. 음식을 먹지 않은 광대, 상골이 피접한 그의 모습은 표범 새끼가 우리를 도는 것보다 재미없고, 동물들이 우리에 머무는 것보다 못하는 짓이었습니다. 유행은 새로움을 쫓고, 새로움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소설은 이러한 분위기를, 첫 문장에 배치합니다. '지난 수십 년 간 단식 광대에 대한 흥미는 매우 줄어들었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광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암시합니다. 한때는 그의 단식을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때론 의심했습니다. 감시인들 조차도 그가 몰래 음식을 먹는다 여길 때면 단식 광대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속상한 마음을 달랬습니다. 단식 광대를 바라보는 유행이 잠잠해졌던 이유에는 아마도 사람들의 의구심 어린 눈빛과 어떻게 사람이 굶는 것을 보고 즐길 수 있지? 그것은 야만적이야라는 생각의 틀이 작동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식 광대는 그것에 거리낌 없이 단식하는 행위를 예술적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내 행위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내 행위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말문이 트이고, 내 존재적 가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수십년간 이어졌던 유행이 끝을 보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새로운 축으로 이동했다는 보이는 정보와 함께, 여전히 그 유행을 여전히 따르는 무리도 세상에는 있다는 가려진 정보도 있습니다. 과도기적 상황을 의미 합니다. 수십년이라는 시간의 축이 어느 날 갑자기 전복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물음이 생깁니다. 왜 이 세계에서는 사람이 굶는 행위가 한때 유행이 되었는가는 점입니다. 단식 광대는 어떤 이유로 그런 유행에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는가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문장은 독자가 작가가 만든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로이자,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사람은 호기심이 발동하고 상상력에 자극이 가해질 때 주의 집중이 지속됩니다. 작가가 첫 문장을 여러 번 퇴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편 소설의 첫 문장은 허투루 쓰이지 않습니다. 그 소설을 지배하는 전체적인 분위기, 감성, 주인공의 운명 등이 이 첫 문장에 압축돼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표현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교과서는 바로 문장 장인들의 첫 문장을 배우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카프카는 생전에 지금처럼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지 말고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아픈 몸도 몸이지만 세간의 입방아에 자신의 삶이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순간에도 세간의 의심을 산 단식광대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카프카의 청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위대한 작가의 이름에 오를 카프카의 재목을 친구는 알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의 작품을 없애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변신>, <소송>, <실종자>, <성>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 작품이 불에 태워질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초보자를 위한 삶의 주인공 되는 글쓰기 비 #김성훈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첫문장 #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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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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