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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변호사가 끝까지 싸우라고 했습니다

[김진숙 쾌유와 복직으로 가는 희망버스 ⑩] 김진숙 복직 촉구 단식 농성중인 송경동 시인

등록 2021.01.27 21:30수정 2021.01.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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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노조 활동으로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동조단식을 하는 단식자들을 만난 뒤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작년 12월 17일 그는 <경향신문>에 기고문을 실었다. '잔인한 사람들, 잔인한 정부… 김진숙을 복직시켜라'라는 시대의 경고장이자 격문이었다. 전국에서 다시 모인 350대의 희망버스가 '해고 없는 세상!' '김진숙의 쾌유와 복직'을 걸고 한진중공업을 향해 출발하기 이틀 전이었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쓸쓸한 생각을 하며 급히 글을 적는다"라고 썼다. 그때 이미 청와대 앞으로 달려와 지붕도 벽도 없는 노상에서 밥을 거부하고 노숙 단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11월 말경 김진숙 복직 관련 교섭이 결렬되면서 답답한 상황이 전개되었어요. 시민사회 노동운동 하는 분들이 긴급하게 모여 논의하면서 2011년 희망버스가 2020년 리멤버 희망버스로 제안되었죠. 김진숙 지도위원 단 한 명의 복직을 놓고 다시 문재인 정부하에서 희망버스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에서 두 번이나 공고를 내고, 부산지역 시의회에서 여야 의원 전원이 복직 촉구 결의문을 내고, 국회 환경노동위(환노위) 여야 위원들이 합의해서 복직 권고안을 내준 이런 사항이니 연내에 해결될 줄 알았어요.

"우리가 12월 14일 리멤버 희망버스 기자회견을 바로 이곳 청와대 앞에서 하고 그날 70년대 민주노동운동 해왔던 선배님들과 함께 시민사회수석 김제남씨를 만났죠. 시민사회수석만이 아니라 정부 대표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까지 만났어요.

어찌됐든 정부가 이 문제를 풀겠다고 했으니 빨리 문제 해결에 나서라, 코로나19가 당시 2단계가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우리도 희망버스를 다시 해야 하는 사회적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하며 19일 전까지 문제 해결을 촉구한 거죠.

그때 본인들도 최선을 다해보겠다, 이런 답변을 받았어요. 그래서 기다려봤는데 17일까지 가면서도 별반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게 확인되어서 그때 그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면 19일까지 안 될 건데 다른 어떤 일들과 마음이 필요할까, 개인적인 다짐을 해보던 시간이었죠."


- 그러면서 작년 12월 22일, 리멤버 희망버스 기자회견이 있었던 이곳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7명이 노숙 단식을 시작한 거네요. 당시 구체적인 요구가 35년 해고 생활 이젠 끝나야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내 복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 촉구였죠. 벌써 해가 바뀌어서 1월로 넘어왔어요. 

"사실 이런 투쟁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거예요. 워낙 힘든 일들이고, 다른 모든 일상을 멈추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특히나 가족들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극한으로 몰려서 하는 거죠. 이러다가 내 몸에 진짜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나, 힘겨운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나, 개인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죠. 이번에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거고요. 

한편 왜 또 당신이 나서냐 하는데, 저도 어쩌면 한진중공업 관련해서는 작은 당사자이기도 해요.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건으로 구속되어 나온 후 박래군·정진우씨와 함께 8년여 재판받고 현재도 집행유예 기간이에요. 당시 사법 피해자만 수백  명이었어요. 당시 이명박 정권이 경찰 알바 부대까지 동원해 부당하게 희망버스를 탄압했음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를 통해 밝혀졌는데도 이 정권 들어서 아무도 사면 복권되지 않았어요. 그런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무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최소한의 인간 회복을 위해 걷는 '만인의 길'

-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은 그동안의 노동운동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다, 단지 김진숙 지도위원 한 명의 복직이 아니라 35년 동안 노동운동을 압박했던 해고라는 상황을 상징하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한진중공업 문제로만 봤을 때도 이게 김진숙 한 개인의 투쟁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가 얘기했듯이 1990년도 초반에 첫 민주노조 만들고 최소한의 노동자 권리를 찾으면서 싸웠던 한진중공업 지회장이었던 박창수 열사가 공권력과 자본의 합작으로 구속되고, 감옥 안에서 엄청난 고문·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잖아요. 그렇게 심각하게 다친 사람을 안양병원으로 옮겼는데, 당시 안기부 요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그 병원에서 의문사 당했죠.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런 박창수 열사를 솔밭공원에 묻으면서 자신의 청춘도 이미 그곳에 묻어버렸다는 사람이에요.
 

1991년 5월 7일 박창수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경찰이 영안실 벽을 뚫고 난입하고 있다. ⓒ 의문사위 자료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동료였던 김주익 열사도 있죠. 2003년도에 동료 노동자들 정리해고 막아보겠다고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 체포영장 청구하며 공권력과 자본이 압박을 해대니 거기서 있어서는 안 될, 자기 목숨을 걸어버리는 선택을 한 거잖아요. 이어서 곽재규 열사도 십수 미터 아래 독(dock)으로 떨어져서 운명했고요.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 후 8년 동안 자기 집안에 보일러를 안 켜고 뜨거운 물에 몸을 씻지 않았다는 사람이에요. 지금 김진숙은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다치고 잘리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의 원한과 분노, 아픔, 이런 것들을 자기 삶 안에 담고 싸우고 있는 거거든요."

- 지난해 12월 3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방사선 치료를 미루고 부산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걸어서 오겠다고 선언을 했죠. 저 분은 자기 몸 돌볼 시간도 없구나, 11월 말에 암이 재발해 가슴 한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사람이 한 달 만에 한겨울 걸어서 청와대로 오겠다니, 그때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저는 늘 김진숙을 보면 혼자로 안 보여요. 그 뒤에 서 있는 박창수 열사, 그 옆에 서 있는 김주익 열사, 곽재규 열사, 또 2011년에 희망버스라는 거대한 사회 운동을 통해서 대국민 사과까지 받아내고 정리해고 철회 약속까지 받았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이 약속했던 1년이 지나도록 그 약속을 안 지켜서 텅 빈 노조 사무실에서 자기 목을 내건 최강서 열사, 이 사람들이 항상 같이 서 있어요. 

지금 김진숙은 혼자 걷는 게 아닐 거예요. 본인이 늘 말했듯이 억울한 야만의 시대에 희생되고 탄압받고 차별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한과 분노를 담아서 지금 걷고 있는 거죠. 저는 그게 그냥 도보행진이 아니라, 또 김진숙 개인의 소금꽃 행진이 아니라, 그 긴 사회민주화운동 시기 동안 고통받고, 탄압받고, 차별받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는 '만인의 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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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면 청와대 앞에서 1월 27일 현재 37일째 단식 중인 송경동 시인 ⓒ 리멤버희망버스 기획단

 
-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문제로 처음 출발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사회운동의 주요한 상징이자 연대의 방식이고,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잖아요. 이 정권하에서 희망버스가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게 개탄스러운데, 그동안 희망버스가 갔던 투쟁장들에 대해 소개해주시면요.

"저희가 갔던 곳만 해도 현대 기아차 희망버스, 거제 대우조선 비정규직 희망버스, 부산 생탁 비정규직 희망버스, 이명박 정권의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맞서서 긴 시간 투쟁했던 유성기업 희망버스, 강원도 삼척의 동양시멘트 희망버스, 스타케미칼 희망버스… 등등 셀 수 없죠. 저희는 노동자 투쟁에만 갔던 게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밀양 송전탑 건설반대 희망버스, 홍준표가 경남 도지사로 있을 때 진주 공공 의료원을 폐쇄하면서 출발했던 희망버스 등등.

그런 희망버스 했던 사람들이 박근혜 노동3권 개악에 맞서서 '을들의 국민투표' 운동도 펼쳤고,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화문 캠프촌도 만들었죠. 캠프촌 땐 그 긴 겨울을 넘어서 5개월을 촛불광장에서 붙박이로 살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박근혜 퇴진운동의 최전선이기도 했던 세월호 유가족들과 희망버스 사람들이 촛불정부를 자인하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 겨울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이 참담하죠. 어떤 밤에는 영하 22도까지 온도가 내려갔었어요. 거의 매일 영하 15도를 오가는 한파에 노숙단식을 해야 했는데, 눈·비·바람 막을 비닐 한 장을 못 치게 했어요."

[관련기사] 청와대 앞 농성장에선 밤마다 신경전... 그들에게 텐트 허용해야(http://omn.kr/1r9b0)

정부는 교섭 당사자로서 책임을 져라

-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와 국회 환노위, 부산시의회 권고와 결정 등을 따르면 되는데 왜 안 하는 거죠?

"부산 시의회, 국회 환노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이건 모두 사회적 기관들이잖아요. 이 기관들에서 분명히 권고한 내용을 아예 무시하고 있어요. 한진중공업과 법정관리를 맡은 산업은행은 업무상 배임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기관과 공적 기관들의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그래서 거기에 따를 이유가 없다, 자신들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이 그렇게 얘기했다고만 해요.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법률 5단체가 명백히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률 검토 소견을 내주었지만 안하무인이죠. 그간 수십 년 동안 수천 건의 노동쟁의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부당 해고에 대해 해당 기간의 임금을 지급한 것은 법의 판단을 넘어 기업의 당연한 책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당한 보상과 배상이 이뤄질 수 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고 김용균·문중원님 투쟁, KTX 여승무원, 쌍용차, 콜텍, 파인텍 등 모두 그렇게 합의를 했지만 누구도 그 합의가 업무상 배임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 왜 정부에 책임을 묻는 거죠?

"정부한테 책임을 묻는 건 지금 너무 당연한데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1986년에 해고되었잖아요. 해고 사유가 뭐였냐면 그해 3월에 대의원이 되고, 대의원 대회에 다녀와요. 그건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에요. 다녀와서 종이 한 장에 수기로 대의원 대회 다녀온 소감을 적었어요. 당연히 회사의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한 내용 몇 줄도 첨가되어 있어요. 그 한 장짜리 수기를 150장 정도 복사를 해서 동료 조합원들한테 나눠준 거예요. 그것도 대의원의 당연한 역할이잖아요.

근데 이걸 가지고 그해 5월부터 7월 사이에 국가 공권력이 개입을 한 거죠. 부산 대공분실에서 김진숙을 내놓으라 해서 잡아가서 고문을 하며 배후가 누구냐, 이 글을 왜 썼느냐,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 이렇게 세 번을 고문하고 회유를 했던 거예요. 회유할 때는 3천만 원을 종이 상자에 넣어와 이 돈을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회유를 했다고 해요.

그렇게 국가공권력이 세 번을 붙잡아 가서 불법으로 고문하고 회유하고 탄압했죠. 나중엔 가택연금도 시키고요. 사측은 이런 부당한 공권력 탄압을 빌미로 전환 배치하고, 출근을 막았죠. 해고 사유가 경찰조사를 받는 자라는 것, 가택 연금 등으로 무단결근을 했다는 까닭이었어요."

- 35년을 싸우게 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직접적인 해고 사유가 무단결근이란 말이에요?

"예. 그 시간이 35년이 지나 온 거죠. 당시 무료 변론하던 노무현 변호사가 나중에야 그랬대요. 왜 항소하지 않았느냐고. 항소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스물여섯 살 노동자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통령으로 있는 문재인 당시 변호사는 '부당해고니 끝까지 싸워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측의 책임도 물어야 하지만 명백한 국가폭력에 의한 부당 해고에 대해 국가와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에 따른 국가와 정부의 책임도 물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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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사는세상

 
그런데 정부와 경사노위는 노사 문제이니 당신들끼리 풀어라, 하는 거예요. 부당해고 이후에도 늘 정부와 공권력, 경영계 등이 구체적으로 개입해서 정치적인 이유로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막아왔죠. 2003년 김주익 열사와 곽재구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른 해고자들은 그때 다 복직이 되었어요. 그때도 김진숙 지도위원만은 실제적인 교섭 담당자인 정부가 나서서 배제했어요.

그때 배제 이유가 뭐였냐면 "경총과 전경련이 김진숙만은 반대해서 안 되니 그 한 가지만 안 된다"라는 거였어요. 그 당시에도 교섭 대상은 한진중공업 사측만이 아니었던 거예요. 국가였고 정부였던 거죠. 국가가 개입해서 모든 걸 좌지우지했으니까요. 지금 와서 노사 문제이니 노사 자율로 풀어라, 정부 책임은 없다, 라니요."

- 희망버스 운동이 시작된 2011년에도 김진숙 지도위원이 복직할 기회가 있었지요?

"그 당시에는 법적으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되었던 정리해고자들 전원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과 거기에 연대한 희망버스 운동을 통해서 전원 복직되었죠. 국정원, 검·경 등을 동원해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작동 중이던 이명박 정권 시절이에요. 법적 판결을 넘어서 정의를 바로잡았고, 당시 정부도 법원도 사측도 승복했죠. 그렇게 2011년에도 모든 정리해고자가 100% 전원 복직되었는데, 정작 그 일을 목숨을 걸고 이룬 김진숙만은 안 된다 그랬죠." 

- 정부는 한진중공업 문제에 어떻게 개입했나요?

"정부는 희망버스 운동을 막고 한진중공업 사측을 보호하기 위해 희망버스가 올 때마다 1만에서 1만 5천 명에 이르는 전투경찰들을 전국에서 부산으로 불러 모으기도 했어요. 공권력을 동원해 김진숙을 강제로 끌어내리려 해서 최후의 결단을 준비하던 위험한 순간까지 가기도 했죠.

그래서 김진숙의 해고는 노사 문제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늘 정부가 사측과 결탁해 공권력과 행정력으로 김진숙의 35년 부당해고를 용인하고 이어왔기 때문이죠. 현재도 그렇잖아요. 겉으로는 우리도 문제 해결하고 싶어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말도 안 되는 한진중공업 사측과 산업은행의 업무상 배임 주장에 동조하고 다른 방안이 없다며 이 정부가 거대한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싸움, 이 교섭의 실제 상대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하는 겁니다. 한진중공업 사측의 노무 담당자가 이 정부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사 문제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먼저 국가와 정부부터 나서서 과거 공권력 폭력에 의한 김진숙의 부당해고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그 정의를 회복하는데, 실제 그 탄압의 당사자로서 책임을 지라고 묻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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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노조활동으로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열린 '노동자 김진숙 명예회복 및 복직을 위한 긴급 국회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김진숙에게는 1986년에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받았던 상처가 지금도 몸에 남아 있어요. 스물여섯이었던 여성 청년 노동자의 몸에 얼마나 심한 고문을 했는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뼈가 휘어 있고, 몸에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요. 그 정도로 했던 게 조사결과를 통해서 밝혀졌어요. 그래서 민주화 유공자라고, 국가 기관 중 하나인 민주화보상심의위에서까지 조사를 통해 밝혀주었어요.

그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은 거예요. 한진중공업 사측과 산업은행이 그러고 있고, 이 정부도 그러고 있는 거지요. 부당해고 기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인 임금 등을 지불하면 자기들이 업무상 배임을 저지르는 거라고 얘기하고 있고, 정부도 그런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대주주들의 망발을 묵인하고 방조·동의해주고 있죠.

산업은행과 정부가 나서서 그간 수십 년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당연했던 기업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덜어주고 있어요. 명확한 법적 강제력 없으면 모두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니 노동자들과 어떤 합의도 안 해줘도 된다고 새로운 노동탄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하려 했던 노동3권 개악만큼이나 불의하고 악독한 노동탄압입니다. 한땐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였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게 이해가 되는 당신의 입장이냐고요. 한때 민주화동지였던 김진숙의 35년 꿈을 다시 한번 그 기울어진 법의 이름으로 짓밟는 게 당신이 얘기하는 사법개혁, 검찰개혁의 진면목이냐고요."

김진숙과의 첫 만남과 연대

- 어느 글을 보니 김진숙 지도위원을 처음 알았던 게 글을 통해서였다던데, 전태일문학상 투고 글을 보면서였다고요?

"1990년대 후반이던가, 전태일문학상 운영위원으로 일할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이 들어왔어요. 저는 당시 제2의 <전태일 평전>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거기에는 본인이 겪었던 나이 어린 여성 봉제 노동자의 삶 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어요. 대부분이 나중에 <소금꽃나무>에 실렸던 글이지요.  너무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연유로 그해 전태일문학상으로 선정되진 못했죠. 제가 전국노동자문학연대 일과 함께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을 만들고 있을 때였는데, 따로 연락처를 알아서 그때부터 만나게 된 거죠. 매번 글을 잘 안 쓰려고 해서 애를 먹어야 했지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글이다 싶어 간청을 해서 글을 받아 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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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노조활동으로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열린 '노동자 김진숙 명예회복 및 복직을 위한 긴급 국회토론회에' 참석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동조단식 중인 송경동 시인. ⓒ 이희훈

 
필자로 만난다는 생각보다 저 먼 부산에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사는 정말 존경할 만한 동지가 있다는 마음이었어요. 그의 곡직한 삶의 글을 받아 실을 때마다 제 삶도 위안을 받는 기분이었죠. 저도 현장 노동자 출신이어서인지 그런 글이 가슴에 많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소금꽃나무>는 우리 시대 모두의 필독서로 손색이 없어요. 전 가끔 그의 말과 글이 루쉰의 글 같다고도 했었죠."

- 지금 이곳에 미술인과 음악인들도 연대하고 있고, 매일 만 배의 절 행동도 이어지고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연대자들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음악인들이 매일 청와대 민주 버스킹을 해주고 있고, 매일 1시부터 3시까지는 '제대로 된 세상을 그리고 싶은 화가들' 모임에서 청와대 드로잉전을 하고 있어요. 전시할 전(展)이 아니라 싸울 전(戰)이래요.

김진숙 동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본인도 얼마 전에 영남대의료원 십수 년 해고자 신분으로 300여 일 가까이 고공농성을 해야 했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한선주님이 단식자들의 건강을 챙기면서 전국에 있는 시민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하루 만 배의 절 행동을 앞서 해주고 있고요. 매일 타로와 시 낭송과 인간책마당과 춤추기 등 '유쾌한 청와대 오후 2시'를 해주는 분들이 계시죠. 도보행진 '만인의 길'로 결합해주시는 분들은 더 많고요.

이렇게 참 많은 사람이 온 마음으로 김진숙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함께 싸우고 있어요. 김진숙 개인만을 위해 싸운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사실 이 인터뷰에는 그의 살아온 내력을 싣고 싶었다. 그는 왜 거리의 시인이 되었을까. 시집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조시(弔詩)를 쓴 시인일 텐데, 그만큼 그들의 아픔을 몸에 새기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길일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지면이 있으면 한 줄이라도 더 이곳의 상황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1월 27일 현재) 그들은 37일째 단식 중이며,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 뚜벅이들은 대전역을 출발해 신탄진역을 향해 걷고 있다고 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의 1890일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정택용 사진작가는 희망 뚜벅이들이 황간역을 지날 때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왜 그렇게 빨리 걷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웃으며 돌아온 답은 "송경동이 단식 빨리 끝내게 하려고"였다고 했다. 내가 만난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루빨리 병원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누군가 말했듯 그는 '길 위의 시인'에서 '길 위에서 시를 사는 시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온몸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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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복직!해고금지!광화문촛불 웹자보 ⓒ 리멤버희망버스 기획단

#김진숙 #송경동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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