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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밖의 우리는 자유로울까... '조제'가 던진 질문

[리뷰]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포개었다가 흘려보내는 영화 <조제>

21.01.28 10:28최종업데이트21.01.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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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무슨 영화가 양념이라고는 없다. 영화를 돋보이게 하려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장신구는 다 치웠다. 그 공간을 조제(한지민 분)와 영석(남주혁 분)의 담담하고 솔직한 '감정'이 채웠다. 영화 <조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다가서기'일 수도 있지만, 대게는 '한순간의 사로잡힘'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이면서도 혼란스럽기도, 확신을 담보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랑의 감정이 아닐지.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의를 실현하는 일도 아닌데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있나.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마음이 향했다는 증거다.

영석은 길을 가다 휠체어가 옆으로 엎어져 바닥에 나뒹군, 하반신 마비의 조제를 만나고 그녀를 도와 집에 데려다주면서 그녀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기울어져가는 주택에서 한 눈에도 어려워 보이는 형편 속에 살아가는 조제와 조제의 유일한 가족, 할머니. 조제를 데려다주고 돌아서려는 영석에게 조제가 건넨 한 마디는 "당신 덕분에 집에 잘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맙다"와 같은 의례적인 감사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생, 밥 먹고 가요"였다. 초면에도 불구하고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영석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표현이라고 하기에는 까칠한 말투로. 하지만 영석은 싫다 하지 않고 조제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번데기 찌개와 볼품없는 반찬 두어 가지가 전부인 밥상.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고 또 그 밥을 먹는 행위는 전혀 닿지 않았던 두 사람의 다른 세계가 한 지점에서 겹쳐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낯설지만 싫지 않은,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 영석은 조제에게 그것을 보았던 것일까.

영석과 부적절한 관계인 지도교수와 자신을 바라보는 어리고 예쁜 대학 후배라는, 현실적으로 더 그럴듯해 보이는 상대가 아니라 조제에게 끌린 까닭은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마음이 향했다는 것 밖에.

첫 시작은 몸이 불편한 그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할머니가 가져다준 버려진 헌책들 속에서 온 세상과 만나고 그래서 안 가본 곳이 없는 조제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연민의 대상은 조제가 아닌 자신임을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이 맺고 있는 왜곡된 관계나 있어 보이는 삶에 대한 섣부른 동경, 자신의 역량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상황 등. 영석은 현실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조제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복잡한 현실 문제들에 대한 피난처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상상 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조제에게 있어 영석은, 현실과 보다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지 않았을까. 조제를 깊은 외로움에서 구원해 준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으니까. 그것(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살을 맞대어야 비로소 놓여나는 일이었으니까. 

홀로여도 외롭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영석을 놓아주려는 조제와, 그 손을 놓지 못하는 영석의 손이 참으로 애달프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말은 *소리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이 장면에서 설득되었으니 내가 나이 든 것인지, 성숙해진 것인지.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은 평화로워 보여. 그들에겐 우리가 갇혀있는 것인지 몰라."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을 갇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족관 밖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조제의 대사이다.

등장인물들 간의 절제된 대화로 이어지는 깊은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 <조제>. 영화 속에 가득한 여백, 그 빈 공간에 더 많은 생각이 채워진다.

p.s. <조제>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물고기>의 한국판 리메이크 영화이다.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는 없다는 개인 지론이지만, 리메이크작이 이 정도면 원작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여 원작도 봤다. 원작은 일본 영화 특유의 '설명'이 많았다.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원작이 더 수월할 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한국판 <조제>가 원작보다 더 세련된 리메이크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 글에 함께 올릴 글입니다.
영화 조제 조제호랑이물고기 리메이크 일본영화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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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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