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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통 들고 담배꽁초 주웠습니다, 그 결과는요

길거리에서 70분 동안 모은 담배꽁초만 635개... 제발 이렇게 버리지 맙시다

등록 2021.01.28 09:58수정 2021.01.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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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건물 근처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 홍효진

 
희고 기다란 몸매. 끄트머리가 뜨겁게 태워진 놈은 보란 듯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길고 얇은 놈이 대부분이지만 또 어떤 것은 몽당연필만큼 짤막하다. 바닥에 찰싹 붙어 옆으로 퍼져 있는 놈도 있고, 빗물에 온몸을 적신 채 화단에 몸을 숨긴 녀석도 있다. 과연 놈들은 얼마나 숨어있을까. 2L짜리 빈 생수통을 들고 놈들의 뒤를 쫓기로 했다.


'담뱃재' 휘날리며... 놈들이 몰려왔다

지난 27일 오전 10시 5분.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담배꽁초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화단부터 담배꽁초가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화단 흙 속에 몸을 파묻은 담배꽁초들이 비 묻은 낙엽에 들러붙어 있었다.

낙엽과 흙을 털고 한 개비씩 생수통에 담았다(한 번에 여러 개를 담으면 담뱃재가 휘날린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담배꽁초들을 수거했지만, 너무 깊숙이 자리해 끝내 줍지 못한 녀석들도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들. ⓒ 홍효진

 
아파트 한 채를 끼고 돌아 거리로 나오는 길. 야외주차장은 물론, 보도블록 틈새에 몸을 누인 녀석들이 반겼다. 검지와 엄지 끝을 사용해 담배꽁초를 빼냈다. 10시 16분. 시작한 지 11분 만에 통의 밑바닥이 어느 정도 차올랐다.

꽁초가 가득 든 생수통을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던 한 동네 주민은 "엄청 많다"며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었다. 주민은 "왜 바닥에 함부로 버리는 지 모르겠다"면서 "(담배를) 피울 때 (꽁초를) 담아갈 수 있는 걸 좀 갖고 나왔음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가로수 밑에도 담배꽁초가 모여있었다. 꼿꼿하게 몸을 펴고 누워있거나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였다. 숙여야 보이는 것들은 곳곳에 가득했다. 빗물받이 사이에 짝을 지어 끼어 있기도 했다.


차라리 숨어있기라도 하면 그나마 낫다. 다니는 길목에 대놓고 떨어진 것들도 눈에 띄었다. 거리낌 없는 행보에 기가 찼다. 아무리 주워 담아도 담배꽁초는 두세 걸음을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10시 46분. 41분 만에 물통의 절반이 찼다.
 

오전 10시 46분 생수통 절반이 찼다. ⓒ 홍효진

 
'70분', '635개'의 담배꽁초가 모이는 시간

이번엔 노원구 식당골목으로 장소를 옮겼다. 노원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25분. 3분이 지난 11시 28분부터 담배꽁초를 다시 줍기 시작했다. 인적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 바로 앞에 담배꽁초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꽁초와 작별한 바닥은 깨끗했다. 머지않아 다시 쌓이겠지만.

술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이곳이 "찐"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술집이 문을 열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간. 입구 앞에는 담배꽁초들이 널려 있었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셀 수는'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개수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생수통 용량을 잘못 선택했나,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노원구에 도착해 다시 줍기 시작한 지 29분만인 오전 11시 57분. 2L의 생수통은 모두 채워졌다.
 

담배꽁초가 2L 생수통을 가득 채웠다. ⓒ 홍효진

 
모인 담배꽁초들의 개수를 확인하기 위해 근처 공터로 향했다. 생수통을 박차고 쏟아져 나온 놈들이 태초의 모습처럼 공터 바닥에 흩어졌다. 5개씩 한 단위로 묶어 세기 시작했다. 다섯, 열, 열다섯... 오십, 오십오... 백. 그래 100개까지는 뭐. ...이백. 그래 200개까지도 뭐.

숫자는 점점 커지다 500을 훌쩍 넘겼다. 어라, 600도 넘었다. 오전 10시 5분~10시 46분(총 41분). 오전 11시 28분~11시 57분(총 29분). 총 70분 동안 모인 담배꽁초는 635개비였다. 담배는 뜨겁게 타올랐다 차갑게 버려졌다.
 

모인 담배꽁초의 개수를 확인하고 있다. ⓒ 홍효진

 
담배꽁초, '가장 많은 쓰레기' 불명예 '1위'

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6월 공개한 환경의 날 기념 '생활 속 쓰레기 방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수거된 쓰레기 1위는 담배꽁초였다. 총 6488점의 담배꽁초 중 89%에 달하는 5768점이 도심에서 발견됐고, 이어 해양(511점), 산(108점), 농촌(99점) 순으로 가장 많이 발견됐다.

지난해만 약 700억 개비의 담배가 판매됐고 이 중 3분의 2는 땅바닥에 그대로 버려졌다. 쓰레기통에 제때 회수되지 못한 담배꽁초는 빗물받이를 타고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 생태계를 파괴한다. 같은 해 9월, 환경운동연합이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전국 동서남해안 해양쓰레기를 수거∙분석한 조사 결과에서도 담배꽁초가 가장 많이 수거된 쓰레기로 나타났다.
 

635개비의 담배꽁초들이 쓰레기봉투에 담겼다. ⓒ 홍효진

 
불명예 1위 기록을 연달아 세운 담배꽁초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가장 흔한 길바닥 친구다. 원칙 상 '일반쓰레기'로 분류되는 담배꽁초가 발견되는 곳은 대부분 길바닥이다. 놈들이 흡연자의 손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질 때, 산에서는 불이 나고 바다는 푸른빛을 잃는다. 길가에 번지는 담뱃재는 말할 것도 없다. 고개 숙이면 바로 보이는 것이 아무리 숙여도 보이지 않도록, 길바닥의 담배꽁초가 더는 흔하지 않도록. 이제는 '제대로' 버려야 할 때다.
#쓰레기 #길거리쓰레기 #담배꽁초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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