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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내 생계를 '선의'에 기대야 하나요?

[신소영의 사소하지 않은 수다] 생계와 존재가 위협받지 않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절실

등록 2021.02.01 18:21수정 2021.02.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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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2019년 12월에서 작년 9월까지 한 10개월 정도를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에서 일했다. 내가 맡은 일은 카운터.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대면 서비스에서부터 음료, 프렌치프라이까지. 로테이션 하며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일이 조금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 19가 터졌다. 어느 날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알바생들이 조금씩 술렁였다. 손님이 줄어들면서 알바생들의 스케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분담하자며 알바도 자르더니
 

10개월 정도를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에서 일했다. ⓒ elements.envato

 
주 15시간을 일해야 주휴 수당이 나오고,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을 회사에서 가입해준다. 반반의 부담을 지는 것이다. 그 조건 때문에 이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는데 주 15시간도 채워지지 않으니 당혹스러웠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나 싶었지만, 패스트푸드점도 겨우겨우 얻은 자리였기에 고민이 되었다.

구차함을 뒤집어쓴 것 같은 심정으로 나는 매니저에게 15시간만 채워달라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돌아온 말은 본사에서 인건비를 줄이라고 했다는 것. 그나마 매니저의 선의로 15시간을 겨우 채우는 스케줄이 배당되었다.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이 통장에 찍혔으나 재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이번에는 일하는 사람을 줄여버린 것이다. 보통 점심 피크 시간에는 카운터에 4, 5명이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두세 명만 배치를 했다. 손님이 계속 없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하며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한 달 정도만 손님이 줄었을 뿐,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더 늘었다. 정말 미친 듯이 바빴다. 최소의 인원으로 손님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점심시간을 치르면, 몸에서 땀과 함께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코로나로 인한 불황은커녕,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그때 오래 일한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다.


"코로나 오기 전에 여름 장사 때는 가게가 터져나갈 것처럼 손님들이 밀려들어왔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해. 그렇게 돈을 미친 듯이 벌 때는 아르바이트생한테 보너스 한푼도 안 주면서, 적자가 날 것 같으면 왜 알바생부터 시간 자르고 일은 일대로 많이 하라고 그래?"

선배의 말은 알바생에게 보너스를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이익이 많을 땐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다 쓸어가고는 입을 싹 씻고, 적자가 날 것 같을 땐 알바생들에게 고통분담을 하라고 하는 구조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는 고용이 불안하고 저임금일수록 심하다. 알바생이라고는 하나 엄연하게 고용된 노동자이고, 노동자는 노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려운 때 그나마도 일을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이다. 나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비겁함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내 생계를 다른 사람의 선의에만 기댈 수밖에 없을 땐, 비참하고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마음'과 '현실'을 지켜주는 사회적 안전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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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4일 코로나19 이익공유제 실현 현장 방문의 일환으로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아 정기화 가맹점주의 얘기를 듣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도 1년이 지났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가 있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 총소득이 G7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부분이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엄청나게 번 일부가 있다는 말이다. 어려워진 사람들과 이익을 공유하자는 '이익공유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언론에 나온 민주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격차 극복 방안으로 내놓은 이익공유제는 "온라인 기반으로 배달·쇼핑·마켓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이 자영업자·배달노동자 등과 이익을 나누자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며 "이익공유제의 방향성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연히 말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주가가 상승하거나 호황을 누린 기업들은 혹여 이익을 공유해야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때 생각이 났다. 나의 생계가 매니저 선의에 달려 있을 때 느꼈던, 몸이 힘들어도 좋으니 스케줄이 더 들어가기를 바랐던 비굴함과 절박함. 고통분담은 고용이 불안하고 저임금의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가장 먼저 부담한다는 억울함. 이런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와 씁쓸함. 그리고 아무런 안전망 없이 또 일할 곳이 없는 거리로 내몰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상황은 다르더라도 지금 그때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세상이 똑같이 평평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그 소득의 격차가 몇십 배, 몇백 배 차이가 나는 것뿐만 아니라, '벼락부자', '벼락거지'라는 말까지 생길 만큼 사회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는 건 위험한 일 아닐까. 생계와 존재가 위협받는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업이든, 사회든, 국가든 한 사람, 소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공평의 격차가 극대화되며 곪고 있지만, 책임지고 개선하는 데 미진하다. 이제라도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 상황이 닥치더라도 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의 처참한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거다.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데 그 사이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 같다. 더 이상 비굴함과 억울함과 공포에 내몰리지 않도록 노동자의 '마음'과 '현실'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이익공유제 #고통분담 #자영업자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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