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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함을 담배와 술로 달래는 세상? 반대한다

[주장] 담배와 술에 부과하는 건강증진부담금은 시기상조인가

등록 2021.02.01 09:05수정 2021.02.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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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질병권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 '잘 아플 권리'라고도 하고, '아파도 잘 살 권리'라고도 한다. 이른바 건강권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질병권은 아파도 사회로부터 불편과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는 설명이다.

질병권은 여성운동가 조한진희 님의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그는 빈부 차에 따른 건강 불평등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는 몸이 아픈 이들을 패배자로 낙인찍는다고 지적한다. 개인적 질병을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거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 구조적 문제이며, 누구든지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건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주거 환경과 노동 여건 등이 천양지차인데, 건강을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건 부당하다는 거다. 곧,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환경을 사회가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99% 공감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그들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무릎을 치게 된다. 선천적인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거나 불가항력으로 후천적 장애를 입은 이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결연히 반대한다. 더욱이 책의 저자처럼 이타적인 삶을 살다 얻은 질병이라면, 그건 존경받아 마땅한 '훈장'이다.

그런데도 굳이 1%를 남겨둔 이유가 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아도 될' 이들이 있겠지만, 주변엔 '아프면 미안해야 할' 이들도 적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이들이 그런 경우다. 야박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타인에게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민폐이기 때문이다.

담배와 술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지질해 보이지만 내 건강보험료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솔직히 좀 아까운 구석이 있다.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취지를 모르지 않을뿐더러 100% 동의하는 바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고 건강한 사람이, 가난하고 몸이 아픈 이들의 의료비를 보전하는 것은, 제도가 아닌 윤리에 가깝다.


또한, 매월 세금처럼 내는 20만 원 남짓의 건강보험료가 이웃들을 위해 의미 있게 쓰이고 있으리라 믿는다. 자랑 같아 민망하지만, 적어도 그 돈이 내게 쓰이지 않도록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 덕에 근래 1년 동안의 의료비가 고작 몇천 원이었던 때도 있었다.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질병을 자초한 경우가 분명 있다. 모든 질병이 사회 구조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환경 요인으로 인한 신종 질병과 가족력 등을 무조건 개인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각자 스스로 건강에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비만이 고혈압과 당뇨 등 모든 성인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일부 의사들은 비만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만은 과연 사회 구조적인 탓인가, 아니면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가.

담배와 술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은 또 어떤가. 흡연과 음주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질병이 수백 가지에 이르고, 한 해 사망자만도 수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흡연과 음주로 인한 질병이라면, 이 또한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에 책임을 물어야 할까.

난 개인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저소득층일수록 비만도와 흡연율이 높고, 음주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영양가는 적고 열량만 높은 값싼 음식을 찾게 되고, 경제적 스트레스를 담배와 술로 푸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경제적 양극화의 책임이 사회 구조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과 같은 개별적 대응까지 사회에 탓을 돌릴 순 없다고 본다. 대안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개인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식습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정크 푸드(Junk Food)'를 퇴출하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아이들이 '쓰레기 음식'에 길들지 않도록 학교 매점에서 판매를 금지하고, 먹거리 교육이 학교마다 교육과정에 포함되었다.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가 건강을 해친다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것들이 값이 싸서 즐겨 먹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발품을 팔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을 수 있다. 문제는 요리하기 귀찮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스마트폰 한두 번 터치에 집까지 배달이 되는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햄버거와 피자, 치킨에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학교 급식은 낯설기만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학교 급식에 나물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식판의 빈자리는 고기나 가공식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요즘 들어선 피자와 치킨, 돈가스 등이 아예 고정 반찬으로 나올 정도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는 처절한 노력이기도 하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비만율이 높아진다는 통계는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더욱이 비만한 아이들일수록 운동하는 걸 꺼린다. 그들은 체육 수업이 영어나 수학보다 싫다고 이구동성 말한다. 개중에는 당뇨와 지방간 등 이미 성인병을 앓고 있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겠으나, 머지않아 그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병원이 북새통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테고, 건강보험의 재정도 악화할 것이 불 보듯 환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로잡아야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게 맞다

흡연과 음주로 인한 질병도 애꿎게 사회를 탓할 건 못 된다. 흡연과 음주로 스트레스를 풀고, 그로 인한 무례와 추태에 관대한 우리 문화가 개인의 잘못된 생활 습관에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온갖 질병의 원인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건, 거칠게 말해서, 개인의 의지 탓이다.

담배와 술을 끊는 건, 해당 기업을 문 닫게 만들지언정, 자신과 가족, 이웃의 건강을 지키는 좋은 습관이다. 흡연과 음주로 인한 발병률을 낮춰 건강보험 재정을 견실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단지 습관 하나 바꾸는 것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사회 구조적 문제엔 나 몰라라 한 채, 건강을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건 부당하다는 점엔 거듭 동의한다. 그러나 질병을 부르는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든 걸 사회 구조적 문제로 눙쳐선 곤란하다.

물론, 이유야 어떻든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의 치료와 지원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런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건 야만적일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그들에게도 당장은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마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들로부터 미리 '치료비'를 거두면 어떨까. 예컨대, 비만을 부추기는 각종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또, 질병을 유발하는 담배와 술에도 세금을 부과한다면, 더 먹고 피우고 마실수록 자신의 장래 치료비를 더 많이 적립하는 셈이 된다.

세금이 부과되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곧, 끊고 줄여 질병을 예방하든, 장래 자신의 치료비를 저축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건강권과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도입이 필요하며, 이보다 더 확실한 대안은 없다고 본다.

요행을 바라고 부동산과 주식을 산 뒤 손해를 봤다면, 온전히 투자자의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질병 유발의 위험을 알면서도 먹고 피우고 마셨다면,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게 맞다. 그들에게 질병권을 보장하는 건, 투자자의 손해를 사회가 벌충해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엊그제 정부가 담뱃값을 8천 원으로 인상하고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을 기사화한 것이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총리까지 나서서 검토한 바 없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여론의 반발에 화들짝 놀란 탓이다. 총리는 '담배와 술은 많은 국민이 소비하는 품목으로서, 가격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며, 신중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으로 단기간에 추진할 수 없다'고 명토 박았다. 당분간 손대지 않겠다는 뜻이다.

여론을 핑계 삼기 전에, 담배와 술을 유해 물질이 아닌 기호품으로 여기는 정부의 인식이 아쉽다. 건강에 백해무익하며, 간접흡연과 음주 운전의 피해 등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임을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셈이다. 줄이거나 끊도록 정책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닐까.

아울러, 성인 못지않은 청소년 흡연율과 음주 빈도를 낮추는 데에도 효과적이라 확신한다. 학교마다 금연과 음주 예절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고 처벌 또한 강화됐지만 조금도 나아진 건 없다. 그들이 담배와 술에 접근하지 못 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경험상 온갖 혐오스러운 영상 자료를 보여주고 전문 강사를 초빙해 교육해봐도 소용없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없애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하나 당장은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어릴 적 흡연과 음주 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미래세대 우리 아이들의 흡연과 음주를 방치할 게 아니라면, 반대 여론에 움찔하기보다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단한 서민의 삶을 담배와 술로 달래야 하는 세상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부러 질병권이라는 낯선 단어를 핑계 삼아 몽니 부리듯 이 글을 쓴 이유다.

사족 하나.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다. 퇴근 때가 아니라도 하루에 두세 번은 꼭 계단을 이용한다. 쓰레기를 버린 뒤 올라올 때나, 부러 운동 삼아 18층을 걸어 오른다. 내가 건강하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남에게 폐 끼칠 일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건강해서 남 주는' 삶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
#건강증진부담금 #질병권 #건강보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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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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