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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의 직설 잊었나... 안타깝다, 국민의힘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작년 총선엔 중국 때리더니... 역풍 맞는 북풍

등록 2021.02.03 12:02수정 2021.02.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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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안기부) 실장님이 속한 집단은 늘 적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 적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손에 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거라고 말입니다."

북으로 간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본명 박채서)의 실화를 다룬 영화 <공작> 속 황정민의 대사다. 이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김대중을 막으려는 거야"라는 안기부 실장에게 영화 속 흑금성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집권여당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까"라고 응수한다. 2018년 개봉해 약 500만 명이 관람한 <공작>이 가리키는 '북풍'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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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북풍(북한 변수를 이르는 말)과 총풍(북한이 총을 쏴 긴장 국면이 조성되면 이걸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15대 대선 당시 안기부와 집권 여당이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북한 고위층과 접촉하고 재미 교포를 매수해 허위 사실을 퍼트린 사건으로 요약된다. 영화 개봉 당시 매체 인터뷰에서 박채서씨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모 후보의 외교안보특보를 한 사람들이 북경장성호텔에서 (북한 측 인사를 만나) 전면전에 준하는 긴장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야기였고 제시한 액수가 1억 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북풍과 총풍 사건이 벌어진 당시가 1997년이었다. 현직 여당 정치인과 안기부 직원들이 국가 혼란을 일으킬 요량으로 북한 측에 1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러나 20세기의 유물로 남지 못했다.

이후 분단국가 특유의 반공주의, 안보상업주의를 이용하는 세력은 중요한 선거 때마다 북풍을 다채롭게 변용해왔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제기한 NLL 대화록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역시 북풍의 한 갈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5대 대선으로부터 무려 23년, <공작>을 극장에서 관람한 이들만 500만이요, 지상파 TV 등으로 관람한 이들의 숫자를 더하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북풍이, 반공주의란 20세기의 유물이, 예전처럼 선거에 먹힐 공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도리어 역풍을 우려해야 할 만큼 우리 유권자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성숙해졌다. 심지어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당시 논란이 됐던 지점도 반공이 아닌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둘러싼 공정의 문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헌데 안타깝게도, 무려 2021년인 지금까지 북풍의 힘을 믿는 이들이 있다. 북한 원전 공세도 모자라 "이적 행위" 운운한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 말이다.

북풍의 현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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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실로 단순 무식하다. 이른바 북풍의 현 단계가 그렇다. 북한과 공산주의의 위협과 공포면 그만이다. 우리 유학생들이, 사업가들이, 문화예술인들이 활발히 교류하는 중국이어도 상관없다. 지난해 4.16 총선 전 펼쳐진 광경이 딱 그랬다.


떠올려 보라. WHO가 빠르게 정정한 '우한 폐렴'이란 용어를 열심히도 전파하고 끝까지 고수했던 이들이 누구였는지. 공적 마스크를 '의료 사회주의'로, '범학계 코로나19대책위원회'를 '의료 사회주의'를 넘어 '문재인 사회주의'로 바꾼 이들이 누구였나. 심지어 훗날 가짜뉴스로 판명된 '차이나 게이트'를 "개연성이 충분하다"라며 공공연하게 거론한 보수 정치인과 보수 언론도 허다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코로나 사태로 문 정부 본색이 드러나며 반중(反中)·반문(反文) 여론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중국의 댓글 부대가 한국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폭로 자체의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와 무관하게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 여론을 상대로 사이버 공작을 벌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청와대엔 이런 '차이나 게이트'를 수사해 달라는 청원도 제기됐다.
- 지난해 3월 <문화일보>, '한국의 중국化가 文정부 꿈인가' 칼럼 중에서

민심은 냉정했다. 집권 여당의 180석 승리로 끝난 총선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코로나19란 재난 상황에도 선거 승리에만 몰두해 민심과 민생을 외면한 채 현 정권을 '사회주의'화 했던 이들을 향한 유권자들의 심판은 실로 냉엄했다.

그럼에도 최근 '북한 원전 문건 삭제 의혹'이라며 여당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 국민의힘과 "현 정권 차원의 이적 행위"라고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보면 분명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그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지난 주말 이후 논란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혹 해소의 단서들만 놓고 보자.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됐다는 '팩트'가 '체크'됐다. 또 산업부 공무원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2018년 5월 이전인 그해 3월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은 "평화공존을 위해 북한에 원전을 지어야 한다"라며 "북한 원자력 발전소를 지켜주는 것이 수출이냐 아니냐를 갖고 내부적으로 알규(논쟁)를 많이 했는데, 이것은 수출"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던 북한 경수로 사업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어 보인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원전 건설을 서슬 퍼런 한미 원자력 협정의 실세인 미국의 눈을 피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의도를 가진 문건을 산업부 일선 공무원이 버젓이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산업부 문건만 해도 그러하다. 산업부에 따르면, 해당 공무원이 삭제한 문서 외에 산업부 내 또 다른 동일 문서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동료 공무원의 컴퓨터에서까지 발견됐고. 문건 자체가 극비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해당 공무원이 자료를 삭제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향후 남북경협이 활성화 될 경우를 대비해 검토한 아이디어 차원이지 산업부 차원의 공식 문서일 리 없다는 산업의 해명이 설득력 없는 것도 아니다. 

누굴 더 신뢰할까
 
북한 원전 건설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것만으로는 국제법상 불가능하다. (...)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전제 하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이라면 호들갑을 떨 일은 못된다. 다만 문 대통령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임기 중에도 일어날 가망이 없는 일을 산업부가 멀리 내다보고 검토한 것이 신기할 뿐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조차 최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북한 원전 검토가 "이적행위"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요컨대 산업부 차원의 헛발질일 수 있으니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국정조사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 이들은 누구인가.

작금의 북풍이 기존과 차별화된 지점이 하나 있긴 하다. 논란의 확산 과정 말이다. 애초 논란은 보수 언론이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입수해 그 내용을 기사로 내보내면서 촉발됐다. 이를 보수야당이 확대재생산했다고 볼 수 있고.

어째 검찰과 보수언론, 보수야당이 서로를 활용하던 그 3자 커넥션의 작동 방식과 꼭 닮아있지 않은가. 산업부는 그 공소장에 기재된 원전 관련 문건의 목록조차 일상 업무 차원의 내부 보고용 문건이란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산업부 해명과 작금의 북풍성 의혹 제기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하겠가. 
#북풍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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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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