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지 말고 후회하지 말지어다

망설이며 산 인생의 전반부,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의 후반부

등록 2021.02.04 16:25수정 2021.02.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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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백조처럼 우아하게 50세를 맞이하고 싶다 ⓒ pixabay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장원청 저)에 소개된, 고대 인도에 전해지는 한 철학가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이 철학가는 뛰어난 지혜로 많은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 어느 날,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철학가를 찾아와 집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저를 당신의 아내로 받아주세요! 나를 놓치면 나보다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철학가는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고려해 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 후 철학가는 결혼과 비혼의 장점과 단점을 따로 나열해 살펴보고 두 가지 선택의 장단점이 모두 균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더 고민에 빠진 철학가는 숙고하다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을 땐, 경험해 보지 못한 쪽으로 택하는 게 현명할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마침내 여인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여인의 집을 찾아가 여인의 아버지에게 당당히 딸과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랬더니, 여인의 아버지는 냉담한 표정으로, "자네, 10년이나 늦게 왔네.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라고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선택을 미룰 때 놓치는 것들 


이 철학가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철학가는 절대적인 이성의 힘으로 문제를 고민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성주의'라는 수단을 이용해 자신의 불안한 감정과 맞서도록 했던 것이다. 

질과 양이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쪽을 먹어야 할지 선택의 늪에 빠지면 이도 저도 택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는, *'뷔리당의 당나귀 법칙'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이야기이다.
 
*뷔리당의 당나귀 
- 동질 동량의 먹이에 둘러싸인 당나귀는 자유 의지가 없기 때문에 양측으로부터의 동일한 힘에 이끌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굶어 죽는다고 하는 설. 14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장 뷔리당'의 이름을 딴 것 

- 위키백과에서 인용하였음.

이 철학가는 죽음에 직면하여 쌓아온 평생의 업적을 모두 태워버리고는, 단 한 단락의 비고만을 남겼다고 한다.
만약 인생을 둘로 나눌 수 있다면, 전반부 인생은 '망설이지 말고' 후반부 인생은 '후회하지 말아라'.

​'선택 전에는 망설이지 말고, 선택 후에는 후회하지 마라'는 당부였다.

20대까지 내 삶의 모토는 '후회하지 말자'였다. 시도한 결과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과정에 집중하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이 철학가의 이야기를 접하고 보니, 그때는 후회하지 않는 게 먼저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는 게 먼저였다. 

어려서, 큰딸이어서, 여자여서, 엄마여서… 망설이고 주저할 이유는 오만가지였다. 100세 시대 중 절반 가까이 살다 보니, 그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미루지 않고 했었어도 큰일 날 일은 없었다. 극도의 이성주의자도 아니었으면서 왜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일까.
   
나에게는 '47'이 행운의 숫자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3번에 걸쳐 연이어 같은 학급 번호를 가졌던 게 그 이유다. 실제로 고2 때였던가. 수학 주관식 시험 문제를 아무리 풀어도 모르겠길래(그 당시 이런 문제가 한, 두 문제는 아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답에 내 번호였던 47을 썼었다. 그런데 정답이 46이어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왠지 이 숫자 언저리는 내게 좋은 기운을 줄 것만 같은 미신적인 믿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황없이 40세를 맞으며 찾아왔던,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들을 추스르고 본격적인 40대를 거쳐오면서 47세에 가까워질 때는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었다. 마침내 47세가 되고, 또 한 살이 추가될 때까지도 그 언저리 숫자에 머무르며 격동의 20~30대를 도리질하기도 했었다. 왠지 45세가 넘는 시기부터는 난 항상 47세인 것만 같은 우습지도 않은 망상에 젖어 산 듯하다.

아직, '망설이지 말아야 할 시간'이 더 남았다 

구정이 얼마 안 남았다. 생일도, 설도 구정을 쇠는 세대라 구정 설이 되어야 난 본격적으로 해가 바뀌는 것 같다. 나이 '50'을 1년 앞둔 새해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는 셈이다. 100세 시대에 나머지 절반의 인생을 1년 남긴 시점. 아직은 '망설이지 말아야 할' 시간이 1년 더 남아 있다는 것. 이것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47이라는 숫자에서 본격적으로 멀어지는 이 시점에 그나마 내게 주는 위안이자 축복일 것이다.

일하면서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맞았던 40세의 첫해, 허망했던 때가 떠오른다. 50세는 그렇게 맞고 싶지 않다. 1년이라는 시간을 담보 삼아 그때보다는 좀 더 여유롭고 우아한 백조의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다. 그러려면 물밑에서 허우적대는 발차기는 필수 일터. 어느 지점에서 역동적인 발차기를 해야 할지,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유지하는 내공을 쌓아갈지, 50세 맞이 1년 프로젝트를 차곡차곡 준비해 가야겠다.

할까, 말까 머릿속으로만 재어보다 흘려보내기엔 이제부터 나의 시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갈 것이니. 인생의 전반전을 충분히 망설이며 살아왔으니, 남은 절반의 생은 '후회하지 않을 선택과 정진'으로 살아가련다.  

오소희 작가는 엄마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눈썹을 그리는 것부터 출발하라고 강하게 권했다. 눈썹을 그린다는 행위는 내가 어느 때든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한다는 의미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 아니라 세상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는 의식으로써의 화장. 

이제 보니, 오늘 아침에 난 세수도 않고 이렇게 감상에 젖어 글을 쓰고 있구나. 빨리 끝내고 눈썹부터 그리리라. 그렇게 세상을 맞이하고, 뚜벅뚜벅 나아가 1년 후에는 기쁘고 우아하게 50세를 맞으리라.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 될 글입니다.
#100세시대 #중년 #50세를 맞이하는 자세 #구정 설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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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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