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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농사는 최악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요

[짱짱의 농사일기 45] 시작하는 마음으로 묻는 질문, '나에게 농사는 무엇인가'

등록 2021.02.08 08:28수정 2021.02.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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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김장용 절임배추를 하는 농가와 감귤농장에서 일했다. 이 몇 달 동안은 내 농사가 아닌 다른 농사의 경험을 했다. 농사일마다 품삯이 달랐던 일당이 쌓이면서 지난해 농사의 흉작을 조금 보상 받은 것 같다. 


나의 몸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삶을 살면서 흙길을 걸어가는 것에 후회를 한 적은 없다. 다만, 해마다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크고 작은 아쉬움은 항상 여운으로 남았다. 그것은 목표한 농사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지만, 작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도 생겼다.

기후변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농사
 

생강밭 작년 여름, 긴 장맛비에 많은 작물들이 쓰러졌다. ⓒ 오창균

 
일년 농사를 돌아보면 한 철 농사가 안 되더라도 남은 한 철 농사에서 잘 되면 본전은 얻는다. 작년엔 농사가 잘 되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계약재배한 농산물이 친환경학교급식으로 나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반값에 처분해야 했다. 남은 한 철 농사에 기대를 했지만, 매일같이 쏟아지는 길고 긴 장맛비에 작물들이 쓰러져 나갔다. 

기후변화로 농사가 갈수록 어렵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는데, 작년은 할 말을 잃을 만큼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농부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농사는 잘 짓고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판로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옛말에 농사는 땀 흘린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은 지금의 농업현실에서는 맞지 않다.

흙에서 사람냄새를 느낄 때
 

흙에서 사람냄새를 느낄때가 있다 ⓒ 오창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돈으로 교환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이다.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흙에서 사람 냄새를 느낄 때, 무아지경에 빠져 일할 때 느끼는 환희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몸과 정신은 농사를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느낀다. 억지로 하는 농사에서는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잠깐의 고됨을 고통으로 생각하고 돈이 안 되는 농사를 원망했을 것이다.

내가 삶의 전환점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농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자본의 도구로 쓰이고, 소비만 하는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꼈을 때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수 있다고 말하는 거짓과 욕망의 울타리를 벗어나 단순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농부가 되는 것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자급하고, 절제된 삶 속에서 나의 시간을 갖는 직업은 농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농사로 돈은 얼마나 벌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밥은 먹고 살아요'라고 대답한다. 그 물음과 대답에는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올해도 '나에게 농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놓고 해답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면서 흙길을 걸을 것이다.
#농사 #기후변화 #흙 #단순소박한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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