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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 만에 청와대 앞 도착한 김진숙, 문 대통령은 말이 없다

[현장] 부산부터 400km 걸어 와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외쳐... 48일 단식농성도 종료

등록 2021.02.07 18:17수정 2021.02.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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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만나 눈물 흘린 한진중공업 노동자 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서울 용산역 한진중공업 본사 부근에 도착한 가운데, 마중나온 한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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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자들 만나 눈물 흘린 김진숙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자신의 복직을 위해 48일째 단식농성중인 시민들을 만나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암투병 중임에도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희망 뚜벅이 행진'을 한 지 34일 만이다(관련기사 : 1시간에 6.3km, 시민 2백명과 함께 걸은 김진숙의 희망뚜벅이 http://omn.kr/1ryof).

김 지도위원이 "우리는 여전히 동지인가, 함께 최루탄을 맞던 동료의 눈빛은 여전한가"라고 적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던 편지의 '답'은 없었다. 청와대 본관 앞 분수대에는 그의 복직을 촉구하면서 곡기를 끊었던 이들만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먼저, 단식농성장 옆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1인 시위 중인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면서 짧게는 10일, 길게는 48일 간 단식을 한 이들을 껴안고 인사했다. 김 지도위원은 이후 청와대 분수대 앞 단식농성장에서 100미터 떨어진 청운동사무소로 향했다. 그와 함께 걸었던, 혹은 그의 도착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모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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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자신의 복직을 위해 48일째 단식농성중인 시민들을 만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마이크를 잡은 김 지도위원이 물었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줬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나. 아니면 LG트윈타워의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잘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의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잘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을 받던 코레일네트웍스 해고자가 돼 서울역 찬 바닥에서 김밥을 먹고 있나."

김진숙의 질문과 답변

 

[연설 전체보기] 400km 걸어온 김진숙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복직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김 지도위원의 질문은 문 대통령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에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박창수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1991년 장안동 대공분실을 거쳐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의문사 당했다.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2003년 10월 구조조정 반대·노조활동 보장을 촉구하며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다 목숨을 끊었다.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최강서씨는 2012년 12월 사측의 손배소송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으로 빈소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님의 아픔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됐다. 결코 잊지 않겠다'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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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서울역에서 농성중인 코레일 네트웍스 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그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김 지도위원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스텔라스테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라면서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 대답이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 지도위원은 "나는 36년 간 자본과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며 "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물었다. 또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 와'라고 묻는 세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라고도 물었다.

김 지도위원의 질문은 스스로 내린 답변, "포기하지 말자"로 연결됐다. 그는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면서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다"고 다짐했다.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함께 한 '이 시대의 김진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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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자신의 복직을 위해 48일째 단식농성을 한 시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그의 복직을 촉구하면서 단식농성을 진행한 이들도 '새로운 시작'을 얘기했다.

48일차 단식농성을 진행했던 정홍형 '리멤버 희망버스'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0일 단식에 들어가면서 '12월 31일, 김 지도위원이 정년 마지막 날엔 반드시 현장에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그 시한을 넘겼다. 그래서 제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뼈를 태우고 살을 태우면서 이번 정부도 노동자의 편에 선 정부가 아니었다는 걸 가슴 깊이 깨달았다. 더 이상 저들에게 구걸할 것도, 저들에게 요구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힘차게 전진하고 투쟁하자"고 말했다.

'이 시대의 김진숙'으로 소개된 해고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돼 7년째 싸우고 있다"면서 "36년 전 해고된 김진숙 선배님과 함께 싸운 자들이 지금 정치권력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에 (김 지도위원과) 함께 걸으면서 수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민주노조를 포기하지 않고 선배님과 함께 걸어온 길을 끝까지 함께 웃으면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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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본사앞에 도착한 김진숙 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본사앞에 도착해 동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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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본사 바라보는 해고노동자 김진숙 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본사앞에 도착해 본사 건물을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종교시민사회단체 대표로 활동한 송경용 신부는 "김 지도위원이 경기도에 들어오기 전에, 서울에 들어오기 전에 (복직 협상을) 끝내려 했지만 부족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도 저와 종교·노동·시민사회는 김 지도위원의 인간적 존엄과 복직을 통한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 국가와 공권력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대한 사과와 복직, 그에 합당한 보상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장 48일 간의 단식농성 끝... 노사 협상은 다시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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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자신의 복직을 위해 48일째 단식농성중인 시민들이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배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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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청와대앞에 도착한 뒤 자신의 복직을 위해 48일째 단식농성중인 시민들이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배웅하고 있다. ⓒ 권우성

 
한편, 그간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면서 단식농성을 진행했던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김 지도위원의 배웅 속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노사협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4일 노사 양측은 종교계 등의 중재를 통해 최초의 공식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전국금속노조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측은) 국회의장과의 간담회 후 교섭을 재개하는 약속조차 회사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3일 뒤인 8일로 연기하자고 일방 통보했다"고 밝혔다.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1986년 2월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 등을 폭로하는 홍보물을 배포한 일로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사측은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김 지도위원이 무단 결근을 했다면서 그를 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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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해 도보행진을 시작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7일 오후 서울역에 도착하자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 응원하고 있다. ⓒ 권우성

 
국가기관은 이미 그의 복직을 권고한 바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지난 2009년과 2020년 그의 해고를 '부당한 공권력 탄압에 따른 해고'로 규정하고 사측에 복직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4일 최영애 위원장 명의로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노사관계 문제를 넘어 과거청산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바 있다.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문재인 대통령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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