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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뛰어 넘은 '귀멸의 칼날'은 특별한가?

[리뷰]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21.02.08 16:22최종업데이트21.02.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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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포스터 ⓒ 워터홀 컴퍼니㈜

 
1990년대 초는 일본 황금 문화기 절정의 시대였다. 영화, 게임,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선두하던 그 파급력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현재 대중매체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명성에 비해서는 빛을 바랬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명맥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애니메이션, 즉 만화는 팬덤, 퀄리티, 독창성, 시장의 크기 등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지금도 대체 불가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10월 16일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역대 일본 내 애니메이션 상영 수입 1위 기록을 다시 썼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더욱이 이전 1위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니, 일본 자국 내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과연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역대급이라 할만한 작품성을 가진 애니메이션일까?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의 장편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붉은 돼지>, <이웃집 토토로> 같은 지브리의 작품들이나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후보'라 불리는 호소다 마모루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과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궤를 달리하고 있는 영화이다.

<귀멸의 칼날> TVA의 후속작인 이 작품은 '소년 점프'에서 2020년 연재 종료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대략적인 이야기는 '혈귀'라 불리는 귀신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 '탄지로'라는 소년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앞선 과거의 장편 영화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완전한 이해를 위해선 원작을 봐야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본 영화가 원작 팬들에 대한 헌정으로써 기능한다는 명확한 한계를 지님과 동시에 마니아층들을 위한 작품들이 주류문화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징조로도 보인다.

원작 '귀멸의 칼날'은 고토게 코요하루의 첫 번째 데뷔작 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입소문을 타 '소년 점프'의 간판만화로 등극하였다. 수많은 신작 중 '귀멸의 칼날'이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빠른 전개속도, 작품의 핵심 주제, 유행을 따르지 않는 인물들의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핵심 사건만을 짚으며 독자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건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성은 인기를 얻은 작품들이 오랜 연재를 위해 분량을 늘리는 최근 동향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주간 연재작의 경우 특히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존의 틀을 벗어난 추가된 이야기의 복선을 회수하거나 치밀한 설정을 구상해 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 이야기의 설정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쿠보 타이토의 만화 <블리치>의 경우 '에스파다' 에피소드 이후 무리하게 연재 분량을 늘려 완결에 이르러서 완성도가 크게 무너지져 종국엔 팬들에게조차 외면받았다.

이외에 '귀멸의 칼날'이 펼치는 주제의식은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족애, 희생정신 같은 미덕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는데, 이는 캐릭터의 성격을 통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 주인공 탄지로가 열혈 캐릭터로 분류되는 주인공 유형과는 다소 다른 일관된 선함을 보여준다는 점, 또 악역의 경우 입체감을 위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이 대세가 이루는 요즘,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은 전반적으로 연령을 아우르는 정석적인 가치관을 지닌다. 또한 다이쇼 시대를 바탕으로 일본 전통문화를 대거 차용했으나 역사물에 치우치지 않고 판타지 고유의 맛을 잃지 않은 점도 일본 대중들을 사로잡은 이유로 보인다. 
 
과연 역대급이라 할 만한가?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스틸 컷 ⓒ 워터홀 컴퍼니㈜

 
그렇다면 이제 만화 '귀멸의 칼날'과 영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을 분리해보자. 아무리 원작이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더라도 2차 창작물 또한 반드시 명작이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각본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만큼 원작의 장점은 살리되 각색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는 원작에서 대중들의 호불호가 가장 심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원작 '귀멸의 칼날'의 경우 데포르메가 두드러지는 전통 삽화 같은 그림체를 사용한다. 이러한 특유의 그림체와 담백한 연출은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적응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즉 화려한 연출이나 사실적이고 예쁜 현대적인 작화 등, 첫눈에 대중들을 사로잡을 요소는 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TVA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1기 시리즈를 완성한 제작사 '유포테이블'은 극장판 또한 화려하게 탈피시켰다. 부드럽고 선명한 조명과 광원을 이용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담아내었다. '전집중'을 이용한 전투장면은 다양한 구도와 연출 그리고 진하고 화려한 이펙트를 통해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그 이상의 역동적인 느낌을 담아냈다. 

그러나 연출을 제외한 각본을 살펴보자면 예전 만화들의 극장판을 넘어서는 장점을 찾기 힘들다. 애초에 다루는 에피소드의 부분은 번외편도 아닌 기존 원작의 일부분으로 TVA '귀멸의 칼날' 1기가 종료된 시점에서 2기로 넘어가기 위한 이음매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 영화가 다루는 스토리는 원작에서도 주인공 '탄지로'가 염주 '렌고쿠 쿄지로'의 유지를 잇는다는 점에서 큰 분기점이 된다. 그만큼 영화의 피날레인 마지막 '탄지로' 일행을 지키기 위해 십이귀월 상현의 삼인 '아키자'와 염주 '렌고쿠 쿄지로'의 전투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 전투 장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둘의 혈투에 대한 연출은 흠 잡을 데 없지만, 원작의 팬들에게는 더욱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지만 귀멸의 칼날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의아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열차 에피소드는 염주 '렌고쿠 쿄지로'의 퇴장을 다루는 만큼 전반적인 비중과 활약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어 오히려 만화의 핵심 인물들인 '탄지로' 일행의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혈귀에게 살해당한 가족들과 환상 속에서나마 재회하는 탄지로의 모습은 작품의 주제인 책임감과 가족애를 중점적으로 보여주지만, 신파를 통해 감정에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은 수행하고 있지 않다. 과거 회상과 유사하다는 부분에서 '귀멸의 칼날'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을 위해 그간의 이야기를 압축해 전달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스틸 컷 ⓒ 워터홀 컴퍼니㈜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는 결코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극장판 영화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특히 오락영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인간 찬가, 가족애, 책임감 같은 메시지는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무르며 이를 전하는 방식 또한 너무 직설적이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 이룬 족적을 살펴본다면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중 초반 낙하 시퀀스가 보여준 충격 혹은 미야자기 하야오의 <원령공주>가 전하는 심오한 주제의식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귀멸의 칼날'의 유행 이전인 2016년 비교적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면 위로 이끌었던 영화 <너의 이름은.>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이 흥행사태를 두고 이쪽 업계가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코멘트를 남겼지만, 질적으로도 건재하다는 방증인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귀멸의 칼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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