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폭력의 기억은 상흔을 울린다

왜 이제와서?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 피해자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등록 2021.02.16 15:54수정 2021.02.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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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확립되고, 이에 대한 법적인 조치가 마련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04년에 청소년 기본법 등으로 제정이 되어 운영되다가 2008년에 들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로 전면 개정되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개정되며 시행되고 있다.

과거에 단순히 애들 싸움을 법률로 제재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인식들은 많이 사라졌다. 학교 현장의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도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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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인기 실내 스포츠 입지를 굳혀가던 한국 프로배구 V리그가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휘청이고 있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불거진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둘은 현재 팀 숙소를 떠난 상태다. 사진은 지난 2020년 10월 경기에 출전한 이재영과 이다영(왼쪽). ⓒ 연합뉴스

 
최근 여자 배구선수 이다영, 이재영 선수, 남자 배구선수 송명근, 심경섭 선수, 트롯가수 진달래의 학교폭력 사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변화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운동선수들의 체벌이나 학교생활 중에 친구들끼리의 다툼을 자라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왔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이러한 학교폭력을 단순한 다툼으로 보는 시각은 많이 사라졌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빠르고 확실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물리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등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폭력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는 발생시기 때문인다. 학교폭력은 대부분 8세부터 19세 사이에 발생한다. 피해자가 학생이 대상임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학생을 포함한 모든 성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즉, 가해자는 모든 대상이고, 피해자는 학생이다.

8세부터 19세까지 해당되는 이 시기에는 한 인간의 정서적, 정신적인 근간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어떠한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과 정서적 안정감, 자존감, 자기효능감 등이 형성되고, 이는 평생동안 그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학교폭력 발생을 예방하고, 이에 대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학교폭력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밖으로 드러나서 인지 가능한 폭력과 다른 하나는 드러나지 않아서 인지 되지 못한 폭력이다. 우선 밖으로 드라난 학교폭력은 학교나 경찰서 등에 신고가 되고, 이에 대한 관련학생(가해자, 피해자 포함)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처벌이나 징계 등을 통해서 가해자에게는 잘못을 인지하고, 뉘우치는 기회를 제공한다. 피해자는 정서적,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지원을 받게 되고, 가해자로 부터의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받게 된다.


문제는 인지되지 못하는 학교폭력에 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인지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묵인되고 지나가는 학교폭력이다. 묵인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명확한 한 가지는 피해자의 의사보다는 주변 사람들(교사, 학부모, 가해자, 기타 관련자 등)에 의해서 묵인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이 발견되거나 신고가 되지만, 여러 상황과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설득을 하거나 학부모 쌍방 간의 합의를 통해서 마무리하려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사안이 진행될 경우에는 피해자의 정서적, 정신적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그 후에 나타나는 후유증은 더욱 심각한다.
  
폭력에 대한 미투(Me, too) 고백을 볼 때, 몇몇 사람들은 '왜 이제와서야 저런 얘기를 하지?', '그 때는 왜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간거야?' 와 같은 류의 이야기를 던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이제 와서 과거에 자신이 당한 폭력사안을 꺼내는 것이 아니고, 가해자를 괴롭히고자 이러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귀기울이지 않았을 뿐이고, 사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세상에 꺼내놓기 위해서 머리 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당한 폭력과 그 속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떠올리는 그 과정은 다 아물었다고 생각되는 상처에서 핏물이 새어나오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줄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며, 자신의 상처 속의 쓰라린 생살이 드러나는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자신들의 힘들고 쓰라린 과거를 소환하여 이야기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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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프로배구 OK금융그룹 레프트 심경섭(왼쪽)과 송명근이 최근 불거진 '학교 폭력 의혹'에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인정하며, 구단을 통해 사과했다. OK금융그룹은 13일 입장문을 내고 "송명근, 심경섭 선수가 학교 폭력에 연루됐다. 팬 여러분을 실망하게 해 죄송하다"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송명근과 심경섭은 구단 조사에 가해 사실을 인정한 뒤, 사과했다. 사진은 2019년 11월 13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홈경기에 나선 심경섭과 송명근. ⓒ 연합뉴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고 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많은 이들은 가해자가 처벌이나 징계를 받고 나면, 피해자가 속이 시원해지고, 모든 상처가 사라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실제로는 그 때부터가 피해자의 고통의 시간이다.

처음에는 가해자의 처벌이나 징계가 후련한 느낌을 주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당한 폭력의 장면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과 작은 폭력에도 어쩌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 폭력장면이 떠오르면 피가 거꾸로 쏟았다가 심연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감정기복을 느끼게 된다.

결국 시간이 주는 망각이 이들의 상처를 덮고, 아픈 생살을 가려주며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피해자는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그 상처에서 분노와 괴로움이 비집고 나오지만, 이를 꾹꾹 눌러가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일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상처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인물이나 매개체가 눈 앞에 나타나는 경우이다. 과거에 입었던 가슴 속 상흔 밑에서 조그만 울림이 시작된다. 욱신거리는 상흔 속에서 조금씩 핏물이 스며나오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게 된다. 그 인물을 만나거나 TV에서라도 보게 되면, 학교폭력을 당하던, 그 무기력 했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함께 여전히 힘들어하는 자신에 대한 원망도 같이 생기고, 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된 그 날의 그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그러한 일이 발생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지만, 가해자가 이야기한 '장난이었어. 미안해'와 같은 성의 없는 사과가 오가게 되었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자신을 괴롭힌 원인은 찾지 못하고, 상처 때문에 힘든 자신만을 돌아보고, 멀쩡히 살아가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이해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상흔 속 욱신거림을 멈추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보듬어 주는 것이고, 다시는 이러한 폭력으로 인해서 무고한 희생과 상처가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는 잊으라거나 묻고 지나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주변 사람들의 편안해지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 피해자를 위한 말은 아니다. 피해자의 상흔 저 밑바닥이 욱신거리지 않고 상처가 터져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위로의 말 한 마디, 이해하는 눈빛 한번이 더욱 필요하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하게 되고, 상처는 아문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결국에는 망각하게 될 것이고, 상처는 아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피해자는 끊임없이 아플 것이고, 망각은 더디어 질 것이고, 고통의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시간이 어떻게 아프지 않고, 위로 받으며, 상처가 아물어 망각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어깨를 부축해야 할 시간이다.
#학교폭력 #폭력 #상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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