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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녀, 관계 요로에 진정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 / 50회] 80세이던 김성녀 여사는 1969년 정부 요로에 남편과 형제들의 서훈을 진정했다

등록 2021.02.25 17:32수정 2021.02.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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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최운산·최진동 형제 ⓒ 최성주

 
80세이던 김성녀 여사는 1969년 정부 요로에 자신의 체험과 기억 그리고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남편과 형제들의 서훈을 진정했다.

최진동 사령관의 포장이 공로에 비해 격이 낮으므로 이를 시정하여 줄 것, 참모장과 참모를 지낸 최운산과 최치흥에 대하여 건국공로 훈장을 추서해 줄 것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진  정  서

본인은 독군부 총사령관 최진동의 제수이며, 도독부 독군부의 창설자이며 참모총장으로서 모든 군자금을 맡아 조달하였으며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최진동 장군의 친제인 최운산(일명 만익)의 미망인이며, 도독부 독군부의 지략가이며 작전참모였고, 최진동 장군과 최운산의 친제인 최치흥(일명 명순)의 형수되는 사람입니다.

3형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도독부 독군부를 창설하여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시다가 작고하신 분들의 공적이 사록에 누락 및 오기된 사정을 시정코저 하오며, 물론 독립 운동한 것은 개인의 명예욕에서 행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본인은 국민과 후손들에게 최진동 3형제의 혁혁한 독립운동 투쟁사를 사실대로 명백히 밝히고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나이다.

1. 최진동 장군은 1963년 3월 1일에 독립유공훈장 단장(제374호)을 수여 받았음. 최진동 장군의 공적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독립운동사 제3권 및 제4권에서만도 수십 페이지에 달하도록 공적이 수록되어 있으나 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복장이나 중장을 수여받고 있기에 사실을 규명코저 하오며, 모든 공적을 사실과 동일하게 남기고자 하오며 품격의 승격도 원하는 바입니다.

2. 최운산(일명 문무, 만익)은 1961년 1월 29일 공적심사위원회에서 대통령 포장으로 결정되었다고 총무처로부터 통보받은 사실이 있으며, 1968년 2월 12일 공적심사위원회에서 다시 심사하여 보류되었으며, 1969년 12월 17일에 총무처에 사료를 보완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공적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 발행 한국독립운동사 제3권 및 제4권과 공보처 발행 무장독립운동비사 및 대지의 성좌 제1부 망명지대와 애국동지회 발행 한국독립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최치흥(일명 명순)은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회 발행) 및 국사편찬위원회 발행 한국독립운동사 제3권 및 제4권에 수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투사이다.
 
 

최운산 장군 (출처 : 최운산 장군 기념사업회) 연변박물관에 전시된 최운산 장군 초상화. 북만주 제1의 대지주이자 거부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어 무기구입, 군복 제작, 군량미 조달 등 독립군 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에 혼신을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 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1977년 뒤늦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 최운산 장군 기념사업회

 
이와 같이 최진동 장군을 위시하여 3형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시다가 작고하시었는데, 조국광복을 맞아 독립운동 당시 하급지휘관 및 졸병으로서 생존한 독립인사가 자신의 공적을 과대 선전하기 위하여 허무맹랑한 사실과 왜곡되고 과장된 조작 사실로 인하여 독립운동사에 오점을 남겼으며 일생을 독립운동과 조국광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총투입하여 투쟁하였으나 공적이, 사록에 수록이 뒤바뀌어져 있기에 반드시 사학가들에 의하여 사실이 입증되리라 보며 독립운동을 하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양심에 호소코자 합니다.

가. 북만주 지역에는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있었으나, 그 단체들이 왜 통합을 하여야 했으며, 통합 후에는 누가 총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통합 후에는 누가 자금을 지원하였는가요?

나. 북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 당시 누가 거처와 모든 장비 및 피복, 식량과 모든 군자금을 제공하였는가요?

다. 일본군에서 독립군의 근거지라 하는 왕청현 봉오동 일대와 서대파는 누구의 소유였는가요?

라. 도독부, 독군부에서 사재를 투입하여 서대파에 군정서 겸 군사교련소를 창설한 사실을 알고 계시며, 창설 당시 자금은 누가 조달하였는가요?

마. 한국에서 북만주로 독립운동을 위하여 입만 하신 분 중에 누가 자금을 가지고 들어가셨던가요? 유일한 분으로서는 이시영 선생(2대 부통령 취임한 분)이시며, 그 외에는 북만주에 거주하는 교민의 도움으로 지탱하였고, 그 외 자금은 누가 지원하였던가요?

본인은 이상과 같은 사실의 진부를 가려서 한국독립운동사의 오점을 시정하고, 일생 독립운동에 헌신하시다가 작고하신 최진동 장군 3형제의 명예를 위하여 흑백을 가려서 모든 역사의 산 증거에 의하여 사실대로 밝히고자 하여, 여러 사학가 제씨들에게 호소하며, 자에 진정서를 제출하나이다. (주석 3)


주석
3> 국민회군편찬위원회 편, 『항일국민회군』, 221~223쪽, 공산권문제연구소, 1974, 최성주, 앞의 책, 104~10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최운산 #최운산장군평전 #무장독립투사_최운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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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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