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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과 각계 인사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창설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 / 51회] 국가나 사회가 하지 않은 일을 후손들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라의 현실이다

등록 2021.02.26 17:29수정 2021.02.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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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항일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최운산 장군은 북만주 제1의 거부이자 무장투쟁을 전개한 항일독립투사였다.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패시키고 빛나는 승리를 전취한 제1의 요인은 수년 간 독립군을 훈련시키고 양성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실이었다.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승만과 박정희는 국가의 상훈질서까지 망가뜨렸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자기 비서출신에게 국가의 최고훈장을 주고 반이승만 노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제외하거나 깎아내렸다. 박정희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열단 선전부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지낸 운암 김성숙은 해방 후 혁신운동 등의 이유로 배제되었다가 별세하고, 박 정권이 끝난 다음에야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정부의 독립운동가 서훈 심사위원 대부분이 친일부역자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토크콘서트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토크콘서트. 좌로부터 진행을 맡은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정상규 이사, 저자인 최성주 이사, 정원식 박사이다. ⓒ 김철관

 
최운산 장군은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그마져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이라는 낮은 서훈이었다. 중국 동북지역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유난히 인색했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이 지역 독립군을 적으로 상대하며 소탕전을 전개했던 만군ㆍ일본군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승격되었지만 30년 동안의 무장투쟁과 여기에 바친 재산에 비하면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한 존재의 근원은 독립운동 특히 무장독립전쟁의 선열들이다. 그분들의 공적을 발굴하여 공정한 서훈을 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과 국가의 본원적인 책무이고 역사정의 구현의 길이다. 

일구월심 남편의 서훈과 무장독립전쟁의 올바른 기록 그리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낯선 조국에서 힘겹게 살아온 김성녀 여사는 그나마 서훈 소식을 듣지 못한 채 1975년 3월 3일 부산에서 눈을 감았다. 봉오동에 남겨 놓은 자식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그의 독립운동에 바친 공적으로 보아 마땅히 서훈되어야 할 것이다.  

최운산 장군과 김성녀 여사의 자식 중 유일하게 남한에 정착한 장남 최봉우는 부인 차연순과의 사이에 5남매를 두었다. 최봉우는 부산에서 운수업으로 어느 정도 재산이 모이자 야당인 신민당에 참여했다.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를 짓밟던 시절이다. 독재정권은 엉뚱한 트집을 잡아 회사의 지역운영권을 박탈했다. 이후 추진한 사업도 유신권력에 찍힌 처지라 번번히 실패한다. 부인이 직장을 다니며 집안살림을 도맡아 꾸렸다. 
  

대한군무도독부 창설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포스터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봉오동 고향을 떠나 먼 이역에서 힘겹게 살아온 차연순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8월 19일 운명하였다. 병환 중인 남편과 대학졸업반인 큰 아들, 군복무중인 둘째 아들, 고3인 큰 딸과 고1인 셋째아들,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를 남겨둔 채이다. 자식들은 가난과 학업중단과 온갖 시련이 따랐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처한 실상 그대로였다.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의 문이 열렸다. 최봉우는 자신의 고향이자 선대의 독립운동 성지이고 그곳에 남아 있을 혈육을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행은 쉽지 않았다. 건강과 비용이 용이치 않았다. 날이 갈수록 '향수'는 짙어지고 건강은 악화되었다.

수교의 문이 열리고도 5년이 더 지난 1997년에야 최봉우는 더 이상 건강에 유예가 없음을 깨닫고 큰 며느리의 부축을 받아 봉오동을 찾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 뒷산에, 아버지는 평양에, 어머니는 한국에, 죽어서도 각각 이산된 가족사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투병 끝에 2001년 세상을 떠났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 학술세미나에 앞서 열린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전임 윤경로 이사장, 바로 옆이 신임 최용규 이사장 ⓒ 이윤옥

 
손자들이 뜻을 모았다.

2016년 7월 4일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를 창립했다. 국가나 사회가 하지 않은 일을 후손들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라의 현실이다. 선대의 독립운동으로 후손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제대로 교육받을 처지가 못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영락하거나 사회 밑바닥에서 생존에 허덕여야 했(한)다. 최운산 장군의 후손들도 다르지 않았다. 

최봉우의 자식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귀한 뜻을 지키고자 힘겹게 살면서도 뜻을 모으고, 역사학자와 각계의 양식 있는 인사들을 발기인으로 하여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이사장 윤경로)를 발족하고 학술회의와 봉오동대첩  현장답사 등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념사업회를 주도한 손녀 최성주 씨는 봉오동대첩 100주년인 2020년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을 저술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언론분야 사회운동가로 활동해온 지은이는 100년을 기다리다 못해 직접 나섰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이자 지은이의 할머니 김성녀 여사에게 직접 들은 증언을 비롯, 중국 측의 각종 자료와 단편적인 국내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몇차례 답사하여 봉오동대첩의 정사(正史)를 펴내었다. 학자ㆍ언론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후손이 해냈다. 
  

표지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책 표지이다. ⓒ 피로소픽

 
지은이는 책의 에필로그 「손녀 최성주가 할아버지 최운산 장군께 드리는 편지」에서 말한다.

할아버지,
저는 봉오동 독립전쟁 후 96년이 지난 2016년에야 처음으로 현장을 답사하고 당시 독립군이 파놓은 참호 속을 걸어보았습니다. 일본군의 진입을 예상하고 산의 능선을 따라 파놓은 참호, 낙엽이 가득 차 있는 그 참호에 서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온 몸을 가득 채웠습니다. 

할아버지!
봉오동 독립전쟁의 승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대한민국 군대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대한북로독군부군은 이어진 일본군의 반격으로 벌어진 연장전, 청산리 전투에서도 승리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바쳐서 수천 명의 강력한 군대를 유지했던 최운산 장군의 결단과 그 저력에 감동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후손의 마음이 아니라 100년 후를 살아가는 후세대로서 당신이 돌려놓은 역사의 방향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봉오동 독립전쟁의 승리는 당시에도 한일병탄 이후 시나브로 꺼져가던 독립을 향한 열기를 되살린 횃불이 되었고 많은 분들이 독립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을 주었으니까요. (주석 1)


주석
1> 최성주, 앞의 책, 266~26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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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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