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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 뻔한데 보험설계사 내보내는 보험사들

판매조직 분리로 보험 쪼개기·불완전 판매 급증 우려... 금감원 관리·감독도 허술

등록 2021.02.20 16:57수정 2021.02.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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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미래에셋생명 등 대형보험사는 이미 판매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영업조직을 떼어내고 있다. ⓒ 연합뉴스, 미래에셋생명


만드는 곳 따로, 판매하는 곳 따로.

요즘 보험회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영업조직 분리다. 한화·미래에셋생명 등 대형보험사는 이미 판매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영업조직을 떼어내고 있다. 보험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이른바 '제판분리'다. 

2019년 말 기준 보험사 전속설계사는 18만3000여명,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는 22만5000여명으로 전체 보험설계사는 약 40만명에 이른다. 18만3000여명의 전속 설계사들과 현재 각 보험사 본사에 소속된 정규직 인원들이 자회사로 내쫓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올해 초 한화생명이 영업 효율성 등을 내세우며 판매 전문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곳 정규직 노동자들은 2차례나 파업을 강행하는 등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한화생명 전속설계사 2만여명과 관련 임직원 1400여명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다름없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회사 쪽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판매 전문 자회사에서 다른 보험사의 상품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화생명 노사는 접점을 찾았지만, 전문자회사를 통한 보험 판매방식으로 소비자 피해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자회사들이 '불완전 판매'로 악명이 높은 법인보험대리점(GA)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보험사의 여러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GA의 불완전판매비율은 일반 보험회사의 약 2배다. 2018년 기준 보험사 전속 설계사의 불완전판매비율은 0.12%였던 반면, GA 소속 설계사들의 경우 0.21%나 된다.  

보험판매 자회사, '불완전판매 악명' GA 전철 밟나 
 

2018년 기준 보험사 전속 설계사의 불완전판매비율은 0.12%에 그쳤지만, 법인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들의 경우 0.21%로 두 배나 됐다. ⓒ 금융감독원


김일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생명보험업종본부장은 "GA에는 인적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고객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다른 회사 상품을 판매하는 중간자 역할만 하는 곳이어서 민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사의 경우 전속 설계사가 퇴사 등으로 기존 고객을 관리할 수 없게 되면 다른 설계사에 계약을 넘겨 관리하도록 시스템을 갖춰놨는데, GA에는 이 시스템이 전혀 없다"라며 "이런 뜬 계약이 발생하면 관련 수익이 담당 지점장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기존 계약을 유지·관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GA의 경우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첫 계약단계 때부터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본부장은 "GA는 (설계사가 받는 수수료가 높은) 돈 되는 상품 판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그런 상품을 판매할 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또 "보험사 전속 설계사는 상품 관련 교육을 받지 않으면 승격이 되지 않거나, 수당이 줄어드는 등 불이익이 있다"며 "하지만 GA 설계사는 그렇지 않다 보니 고객에게 필요한 상품보다 설계사에 유리한 상품을 파는 경향이 있다, 판매 전문 자회사가 난립한 뒤 민원이 급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GA 소속 보험설계사들에 대한 부당 노동행위도 문제다. 오세중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장은 "지금까지 GA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설계사를 상대로 한 부당행위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이는 고객 피해로 이어지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GA의 설계사에 대한 부당행위를 감독당국에 신고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고 노조 쪽은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관리·감독이 잘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GA 내 준법감시실과 감사실에 금감원,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판매 전문 자회사 설립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이에 대한 감독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매조직 분리 후엔 상품개발 조직까지 분할?
 

지난달 27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화생명지부가 온라인 결의대회를 열고, 고용안정협약 쟁취를 위한 전면파업투쟁을 결의했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위원장이 온라인으로 투쟁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 사무금융노조


보험사들이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려는 이유로는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오 지부장은 "일차적인 이유는 정규직 인원 정리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또 올해 설계사노조가 합법화하면서 본격 활동을 앞두고 있는데 노무관리 부담을 덜어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 역시 "비용 절감 차원"이라며 "인적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없으니, 법인 분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원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그는 "사측에서는 자회사로 옮겨갈 설계사들의 소득을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전속 정규직 설계사들은 이동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전속 설계사의 경우 대기업에서 근무하기 위해 입사한 것이지 자회사에서 근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이후 추가로 보험상품 개발 등 부서를 법인으로 분할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본부장은 "영업 영역이 빠져나가면 보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보험 영역으론 거의 없어지는 셈"이라며 "그렇게 되면 본사에 있는 영업전략, 상품개발 등의 조직이 필요 없어져 별도 법인으로 만들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제판분리 흐름이 보험사가 대부분의 노동자를 정리하고 재무설계 등 자산운용 영역에만 집중하기 위한 첫 단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감독당국은 법적 보호장치 마련돼 있다고 하지만...
 

2019년 9월, 전국보험설계사노조가 노조 설립 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감독당국은 보험의 제판분리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보험상품을 만든 보험사가 책임을 지도록 돼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현행 보험업법상 모집종사자(설계사)가 보험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생기면 보험회사가 1차적으로 책임지도록 돼 있다"며 "이후 보험사가 모집종사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내용이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도 포함돼 있는데, 소비자 피해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판매 전문 자회사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지금보다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금소법이 있어 제판분리 이후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라며 "판매 전문 자회사도 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먹고 사는 구조로 갈 것이기 때문에 GA가 지금껏 그래왔듯 자회사도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수료 챙기기에 혈안이 되다 보면 보험서비스 관리는 설계사의 관심사에서 벗어나고, 편향적으로 (설계사에게 이익이 큰) 보험 모집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GA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감독당국이 GA나 판매 전문 자회사 쪽 준법감시인의 성과를 단기간에라도 집중 관리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헌수 순천향대 교수는 "판매 전문 자회사가 많아지고 실적 경쟁이 치열해지면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기존 장기보험을 질병별로 나눠 판매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며 "넓은 보장을 원하는 소비자의 경우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불완전 판매 증가에 따른) 판매 전문 자회사와 GA 쪽 민원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시장이 안정되면 결국 이들도 소비자들의 민원에 신경을 쓰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보험 #GA #제판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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