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괜찮아, 여기는 쿠바니까' 나에게도 그럴까

[40대 백수가 얼떨결에 간 쿠바] 9박 12일 쿠바 여행의 시작

등록 2021.02.21 20:39수정 2021.03.12 01:24
3
원고료로 응원
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쿠바는 역시 체 게바라 ⓒ 이희동

 
처음부터 쿠바를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될 수 있으면 좀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지난해 1월 난 타의로 7년 동안 다니던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그만두게 되었다. 모법인의 센터 재수탁이 좌절되면서 10년 만에 백수가 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니 참담했다. 1년 간 센터장으로서 건강을 해쳐가며 일했던 나의 노력이 허무했고, 7년 동안 쌓아 온 나의 경력이 아까웠다.


마주친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난 여행을 계획했다. 낯선 길에서 스스로를 조망하고 싶었고,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꿈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바라보게 된 세계지도. 다행히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해줬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동유럽을 그리고 있는데 아내가 대뜸 쿠바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페이스북을 보면서 무심코 언급했던 <시사IN>의 고재열 기자가 기획하는 9박 12일의 쿠바 여행을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홀로 동유럽 여행보다 사람들도 사귈 겸 비슷한 사람들이 같이 가는 쿠바 여행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이를 셋이나 둔 아내가 남편을 그 오랜 시간 혼자 여행 보내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아내가 쿠바를 허락하자마자 난 쿠바를 결심했고, 곧바로 고 기자에게 연락했다. 본래 여행 인원이 다 찼는데 다행히 2명이 취소하는 바람에 빈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가게 된 쿠바. 난 쿠바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내 마음 속의 쿠바


쿠바는 몽고와 함께 아내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평생에 한 번은 꼭 쿠바를 가고 싶다면서 배우 이제훈과 류준열이 나온 tvN의 <트래블러-쿠바편>을 열심히 보기도 했다. 몽골에서는 말을 타고 싶다더니 쿠바에서는 캐리비안 해를 바라보며 럼주를 마시고 싶은 걸까?

그런 아내와 달리 나는 쿠바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내가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사탕수수의 럼주와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무상의료체제와 도시농업이 다였다. 사회학을 공부해서, 럼주를 좋아해서, 사회적경제분야에서 일을 해서 알게 된 정보들뿐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 체 게바라는 조금 달랐다.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는 대학교 때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빨간 책을 통해 체 게바라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꽤 많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을 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이후 나의 수첩에는 체 게바라가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의 혁명적인 삶을 본받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보다는 안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상상해 봤다. 대학교 졸업 후 북한학을 선택했던 데에는 분명 그의 영향도 조금 있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으론 불가능한 꿈을 꾸자."
"나는 해방가가 아니다. '해방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쿠바 가기 전 공부하기 ⓒ 이희동

 
그러나 이런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쿠바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곳은 여행 가기에 너무 멀었고, 무엇보다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세계에는 쿠바 말고도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처음 맛본 쿠바산 럼주가 너무 맛있었지만 럼주는 쿠바 말고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이런 내가 어렴풋이 쿠바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보고 난 이후였다. 영화 속 쿠바는 선진국이라는 미국 국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었다. 의료가 공짜라는 공산주의의 이상이 실현된 나라. 비록 적성국가 미국 국민이지만 기꺼이 진료를 해주는 국가. 잉? 쿠바는 후진국 아니었던가?

사회적경제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쿠바는 더 이상했다. 미국의 경제 봉쇄에 대항해 도시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비록 쿠바의 입장으로서는 도시농업이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지만, 그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현대 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로서 각광받고 있었다. 실제로 주위에 쿠바로 해외연수를 다녀온 이도 있었다.

도대체 쿠바는 어떤 곳이지? 쿠바에 관한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쿠바? 쿠바!

생각보다 쿠바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여행 갔던 이들 자체가 드물었다. 아직 우리나라와 수교가 맺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워낙 멀기도 멀었다. 아직도 쿠바가 북한과 친한 공산주의 국가여서일 수도 있겠으나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공산주의 베트남과 중국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것은 아닌 듯했다.

대부분의 자료는 쿠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역시나 쿠바 혁명을 꼽고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당시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상대로 일으킨 혁명은 현재 쿠바의 바탕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자부심으로 미국의 경제봉쇄를 견디고 있다고도 했다. 쿠바 곳곳에 그려져 있는 체 게바라는 쿠바인들의 상징이었다.
 

쿠바의 또다른 상징 헤밍웨이 ⓒ 이희동

 
또한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쿠바 여행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였는데, 쿠바를 사랑했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따라 여행코스를 짜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왜 헤밍웨이는 말년에 쿠바를 떠나야만 했을까? 그건 쿠바에 가서 확인하면 되겠지.

마지막으로 쿠바 여행에 관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쿠바가 무엇이든 상상 이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괜찮아. 여기는 쿠바니까'라는 상용어구가 적용될 만큼 쿠바는 부족한 동시에 넉넉하다고 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물자는 부족하지만 그에 비해 사람들의 마음씨는 넉넉해서 묘한 매력이 있는 곳. 사람들은 그 이중성에 매혹되는 듯 했다.

술과 음악을 사랑하고, 혁명을 자랑스러워하고, 현재의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 쿠바. 그렇게 쿠바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난 그 이역만리에 가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쿠바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