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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청이 해결 못한 회계비리 문제, 이들이 바꿨다

[시민이 바라본 용산 지방자치 5] 구청의 '솜방망이' 처벌과 직접 나선 주민들

등록 2021.02.22 13:34수정 2021.02.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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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인근 복지관 가는 길에 붙어있던 규탄 현수막 ⓒ 김호세아

   
여러분들이 공익제보자가 되었다고 치자. 공공기관에서 다른 기관의 비리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불법행위에 대해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기관이라면 무엇을 기대할까? 해당 기관의 비리를 잘 조사해서 행위에 가담한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그 비리행위와 연관된 이해단체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를 기대하지 않을까?

2019년 서울 용산장애인복지관 회계비리 문제를 공익 제보할 당시 필자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 같다. 공무원들이 적극적인 행정으로 비리를 저지른 관계자들과 기관의 문제를 일거에 잘 정리해주고 필자도 그곳에서 계속 잘 일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용산구청으로 조사가 넘어가고 나서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을 가졌다. 비리와 관련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이미 공개가 된 터라 이걸 밝히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남은 것은 비리와 관련된 관계자, 기관, 법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진한 공익제보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솜방망이에 좌절했을 때
 

공익제보자인 필자에게 온 조사결과 조치사항 ⓒ 김호세아

 
하나씩 살펴보자면 개선명령에 나온 '후원금 반환'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 돈을 빼돌린 것이니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

그다음에 나오는 '시설 회계책임자 및 회계관계직원 인사조치 권고'는 기가 막혔다. 시설 최고관리자가 연루된 비리를 시설 규정에 따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후원금 문제의 재발을 막는 조치나 과태료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허무한 조치사항을 읽고 혹시나 뒷장이 더 있는지 서류를 들춰봤으나 이게 '끝'이었다. 순진했던 필자는 좌절했다.
 

추운겨울 복지관 앞에서 피켓시위하는 용산구민들 ⓒ 용산시민연대


필자는 공익제보자로 직장 내에서 생존을 고민할 당시, 노동조합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거라 직감하고 시민단체와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작은 복지관에서 모인 후원금을 운영법인이 몇 년간 빼돌린 문제였지만 대기업도 아니고 대서특필 되기에는 사안이 비교적 작았다. 언론에 열심히 알렸지만 기사는 며칠 지나면 다 잊혔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영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하던 찰나에 지역사회 진보정당과 시민단체가 함께해주기 시작했다. 모두 용산구민들이었다. 기자회견이 열리고, 함께 피켓을 들어주고, 현수막이 지역에 붙었다. 회사 안에서는 괴로웠지만 지역사회가 나와 노동조합 편인 걸 알았기에 당당했다.


용산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필두로 주민들은 비리법인에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 무능한 용산구청을 대신해 끈질긴 투쟁에 나섰다. 공무원들을 의지할 수 없었던 필자에게 복지관 정상화를 위한 지역 시민단체의 의지는 큰 힘이 되었다.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자 지역이 바뀌었다
 

식당운영 중단 공고 당시 복지관 측에서 게시한 게시물. 복지관은 불법운영에 대해서 사과할 생각 없이 식당운영을 중단함으로써 지역장애인들의 식사할 권리와 조리노동자의 일터를 없애려고 했다. ⓒ 김호세아

 
당시 용산장애인복지관 노동조합은 조리사 직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복지관은 급식소 불법운영이 지적되자 일방적으로 식당운영 중단을 공고하면서 복지관에서 10년간 일해온 조리사는 하루아침에 실직 위기에 처했다.

식당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해 지적받은 것은 복지관 운영진의 역량 부족이었음에도 이 모든 사태가 노동조합 탓인 양 여론을 호도하는 듯한 빨간 글씨로 노동조합을 매도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과 복지관 이용자들은 복지관 측의 매도에 속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금 불법 전출과 식당 폐쇄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하면서 노동조합과 함께 복지관 정상화를 외쳤다. 그 결과 노동조합과 주민, 이용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여론은 식당과 함께 조리사의 일자리를 지켜냈다. 

결국 대한성공회유지재단은 지역사회 비난 속에 장애인복지관을 떠나게 되었고 실직의 위기를 겪었던 조리사는 명예롭게 정년을 맞이했다.

이 일련의 해피엔딩은 지역사회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결코 예상할 수 없는 결과다. 비리 법인은 계속 지역사회에 남아 있었을 것이고 식당도 폐쇄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구청의 고위 공직자도 아니었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지역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자 지역이 바뀌었다. 용산장애인복지관 회계비리 사건은 용산구민의 승리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전 직장. 노동조합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의당 설혜영 구의원도 조리사 조합원의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 김호세아

#복지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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