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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은행에 돈 넣는 바보'로 살겠습니다

[나를 갈아넣었던 재테크] 심신이 피폐해진 펀드 투자의 경험... 내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닌 행복

등록 2021.02.24 18:58수정 2021.02.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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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부동산, 주식... 온갖 유혹이 우리를 흔듭니다. 누군가가 상상도 못 할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면 왠지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투자의 끝이 늘 장밋빛인 것은 아닙니다. 남들 다 한다고 뛰어들었다가 돈과 건강, 심신의 안정까지 잃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나를 '갈아 넣었던' 투자, 그 웃을 수 없는 경험담을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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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거 안 하면 바보라는데, 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 pixabay

 
2008년 봄, 나는 펀드에 가입했다. 당시, 펀드라고 하면 단연 중국펀드가 대세였다. 중국 펀드의 상승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고, 이미 내 동생도, 친구도, 친구의 아는 사람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도 모두가 중국 펀드 하나씩은 갖고 있으며, 누구는 몇백을 벌었고, 또 누구는 몇천 만 원을 벌었다고 했다. 다 한다는데, 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요즘 이거 안 하면 바보라는데, 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쯤에서 설마 싶겠지만, 그렇다. 당신의 생각이 맞다. 나는 막차를 탔다. 계좌를 만들고 한 달 뒤부터 곧바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펀드는 다시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월 10만 원은 재테크라고 말하기엔 아주 적고 미미한 금액이었지만, 20만 원을 넣으면 18만 원이 되고, 30만 원을 넣으면 26만 원이 되는 통장 앞에서 나는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해약했다.

은행 창구 직원이 딱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기다리면 때는 올 것이라고, 지금 잠깐 해보고 그만두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무시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때'라는 것을 기다리기엔 나는 간이 너무 작았고,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며 박봉의 남편 월급으로 집 사느라 낸 대출금 갚을 것을 생각하면 치킨 하나 마음 놓고 사 먹기 힘든 형편이었으므로 달마다 1, 2만 원씩 줄어드는 펀드 계좌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삶이 너무도 고달팠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당구에 빠지면 눕기만 해도 집 천장에서 당구공이 굴러다닌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매일 통장 속 잔고가 줄었나, 늘었나에 전전긍긍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통장 하나 들고 가볍게 나섰던 외출은 몇백 원의 마이너스에도 무거운 마음이 돼 돌아오기 일쑤였고, 뭘 해도 즐겁지 않고, 초조한 날들의 지속이었다. 금융 관련 소식이라면 작은 뉴스에도 예민해졌고, 왜 나는 뭘 해도 안 될까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무엇보다 펀드 금액이 유지는커녕 지속적으로 마이너스가 이어지는 날에는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 세상 모든 것이 암울하고 짜증이 났다.

남들처럼 부자는 못 돼도, 저축하는 셈 치고 펀드 해서 은행 이자보다는 좀 더 벌어보자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내 삶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 고민 없이, 공부 없이, 정보도 없이 은행 가서 '중국펀드 하러 왔어요' 한 마디로 펀드를 시작한 내가 어리석었을 뿐이다. 자고로 재테크는 그렇게 아무나 막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펀드라는 재테크 투자의 짧고 얕은 경험을 손절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재테크에 눈을 뜨게 된 건, 두 번의 이사를 통해서였다. 전세로 시작했던 신혼집에서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사고, 이후 또 한 번의 이사를 하면서 의도치 않게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늘 부족한 부분은 대출을 받아 메웠지만, 아등바등 겨우 대출을 갚고 나면 신기하게도 집값은 갚은 대출 금액만큼의 가격이 더 더해져 있었다. 집은 월급 모아 사는 게 아니라 대출받아 사는 거라더니 그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때도 유혹의 입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 아파트는 단지 내 나무가 무성해지면 팔고 옮겨 앉아야 돈 번다며,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로 시작해 세 채까지 불린 동네 언니가 나에게 대출받아 전세 끼고 집을 사라며 부채질을 해대곤 했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마 그 언니는 대출 없이 작은 집 한 채 달랑 깔고 앉아 있는 내가 답답했겠지만, 내 집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누리는 쪽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지금도.

코로나와 함께 또다시 다가온 재테크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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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단과 행위들은 돈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 pixabay

 
코로나19가 등장하고 가장 먼저 우리의 불안을 잠식한 건 경제였다. 언제나 위기는 경제부터 흔든다. 고용 침체와 실직이 가시화되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너도 나도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을 시기, 출판계는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도서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모든 수단과 행위들은 돈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취미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집에 앉아서 월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불안한 시대 위기를 이길 수 있는 수익창출 방법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튜브에는 경제 이야기를 하는 채널들이 종횡으로 급성장했고, 21세기에는 독립운동을 주식으로 한다는 동학 개미가 등장했으며, 여기저기 부동산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치솟았다.

또다시 내 주변에도 주식 강자들이 등장했다. 당장 아버지와 동생이 주식으로 큰 금액은 아니지만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 했고, 친구와 지인들도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 원의 수익을 보았다며 '너는 뭐 하냐'는 타박을 주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은행에 돈 넣는 바보가 어디 있냐며.

하지만 나는 주식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나에게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라며 전해준 주식 투자 비결이 나에겐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체크해야 할 주식 사이트와 설거지나 운동할 때 들으라고 알려주었던 (그들 말로 고급 정보가 가득한) 유튜브 경제 채널과 틈틈이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알짜 주식 공부 사이트들이 나에게는 결코 틈틈이 할 수 있는 쉬운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 틈새 시간에 그보다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더 많았다. 아침에는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눈을 뜨고 싶고, 설거지와 운동을 할 때는 음악을 더 듣고 싶고, 틈이 나는 시간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그도 아니면 영화라도 보고 싶고,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나를 위한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그러고 보면, 나의 재테크 도전 실패의 원인은 부족한 정보력도 턱없이 적은 종잣돈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라는 사람의 문제였다. 나는 천성적으로 재화를 화폐가치로 판단하는 재주가 없고, 무엇보다 셈에 약하며, 자본 가치의 허와 실을 판단하는 안목이 없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을 급등과 급락을 오가며 변화하는 주식처럼 빨리 변하는 세상에 잘 따라가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선망하고 또 누군가는 성공하기도 하는 서울대 입시를 애초에 도전할 수조차 없었던 것은 참고서와 입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부에 딱히 흥미와 취미가 없는 나 자신 때문이었던 것처럼, 누구나 선망하는 재테크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그런 쪽으로 전혀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인 것이다. 사람은 다 타고난 그릇이 있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며, 그렇게 주식의 유혹도 나는 바보 소리 들으며 꿋꿋하게 뿌리쳤다.

나는 나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명한 판단과 지혜로운 실천력으로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들을 축복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깜냥이 되지 못한다. 만약 그럴만한 실력과 능력과 혜안이 있었다면,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말고에 급급하기 이전, 이미 나는 부자가 돼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재산 증식과 수익을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투입한 만큼 산출되는 결과에 만족하려 한다. 차곡차곡 모으기만 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은행이자로도 돈을 불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일한 만큼 벌고, 버는 만큼 모으고, 큰 부담이 없는 선에서 내 능력만큼 삶을 살아가겠다는 나의 신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믿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라도 '노오력'하면 될 것이라는 고집이 아니다. 거센 파도가 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되 침몰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부표처럼, 한없이 가볍고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삶도 괜찮다는 것을 살아내고 싶은 바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기는 그저 위기이거나 더 큰 위기일 뿐이다. 당연히 나도 그 대부분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위기 속에서 불안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소시민이다. 그렇기에 나는 위기의 불안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무언가에 희망을 걸기보다 당장 내 손에 잡히는 현실과 생활, 일상을 지키는데 더 많은 노력과 희망을 걸어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부동산'과 '주식'이 아닌 '나'에게, 그리고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오늘 하루'에 투자를 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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