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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시킨 뒤 본 그 뉴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우리의 '편리함'은 어떤 희생으로 만들어지나... 새벽배송 뒤에 가려진 것들

등록 2021.02.24 16:58수정 2021.02.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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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지향하면서부터 빵 하나 사 먹으려 해도 쉽지가 않다. 예전 같으면 동네 빵집 아무 데나 들러서 제일 군침 도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 그럴 수 없었다. 계란이나 유제품을 넣지 않은 빵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믿었던 바게트에도 유청 단백질을 넣는 경우가 있었으니, 이거 원. 

물론 먹지 않으면 간단하지만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름의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을 지향하긴 하나, 금욕주의자가 되진 못했다. 고백하자면, 오히려 식탐이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더 잘 먹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몇 번인가는 빵을 사기 위해 다른 동네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빵 쇼핑을 한 적도 있다. 그때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 과도한 포장재가 발생하는 것, 대량으로 쌓아두게 되는 것 등등 때문에 과연 이게 옳은 변화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전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이다. 나는 비건을 지향하는 것이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가 아닌, 동물과 환경에 덜 미안하기 위해 택한 삶이 방식이기 때문이다. 

클릭 몇 번, 꼭두새벽에 밀가루가 배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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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 pixabay

 
다소 먼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내가 주변에서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통밀로 된 담백한 빵이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맛. 처음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먹다 보니 입에도 잘 맞았다. 제빵을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으니 전문가가 들으면 어이없을지 몰라도, 어쩌면 나도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쌀로 밥 지어 먹듯, 어딘가에서는 이 역시 평범한 가정식 음식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짐작이었다. 빵 때문에 멀리 가는 것도, 택배를 이용하는 것도 마뜩잖았으니 내가 직접 만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나은 대안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통밀가루를 사려고 마음먹고 보니 여러모로 수입산보다는 국내산 밀이 좋을 듯했다. 또한, 내 몸은 물론 환경에도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유기농이라는 조건까지 추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유기농 우리밀 통밀가루를 사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파는 곳이 없었다.

며칠간 동네를 뒤진 것이 허무하게도, 인터넷을 검색하니 바로 나왔다. 직접 빵을 만들 기대에 들떠 주문하는데,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서비스가 한시적으로 무료 제공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급할 것도 없었지만 별생각 없이 신청했고, 다음 날 현관문을 여니 예정대로 유기농 우리밀 통밀가루가 놓여 있었다.

그게 작년 3월의 일이다. 그 후 며칠 뒤, 나는 업무 도중 계단에서 쓰러져 사망했다는 쿠팡맨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손발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고인이 사망한 곳이 내가 사는 건물이 아니며 그가 담당한 곳도 이 지역이 아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의 죽음은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느낀 슬픔을 누군가에게 터놓기도 어려웠다. 모두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나름의 윤리적 소비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소박하게 살아가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벗들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게 할까 두려웠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죽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계속 배송 시스템을 이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내 슬픔은 반쪽짜리도 되지 못한다고 폄하했다. 새벽배송이 아니라 해도 지금처럼 빠른 택배가 가능하려면 이른 새벽의 강도 높은 업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즈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을, 그로 인한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자동차가 없는 나는 무겁거나 동네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 때문에, 때로는 경제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럴듯한 핑계를 찾아가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슬픔은 잊혀져갔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갖가지 종류의 배송 시스템을 이용한다. 가끔은 울적하지만 그렇게 슬프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전, 대형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도 퇴근 전, 잠들기 전 책을 받을 수 있는 '양탄자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루도 안 돼 책을 받아보면, 삶은 더 여유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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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 pixabay

 
특정 직업을 뭉뚱그려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내가 한때 백화점에서 일했다고 말하자 누군가 감정 노동 운운하며 대뜸 안쓰러워 한 적이 있다. 미안하지만,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그때 나는 꿈이 있었고 매 순간 보람을 느꼈는데 연민이라니, 가당치 않았다. 직업은 연민이 아닌,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행여 나의 모자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스럽다. 하지만 주제넘은 연민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지금 주문한 책과 물건들을 몇 시간 만에 받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할지 모르나, 모두에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단 하루면 받아 보는 책을 그렇게 빨리 손에 넣게 되면 삶은 더 여유로워질까. 오히려 초 단위로 일상을 쪼개며 더 조급해지지는 않을까. 

나는 여전히 내 슬픔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반쪽의 마음이 모이면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이제는 누군가와 이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 작년 3월의 죽음을 기억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적어도 잊지 않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전하고 싶다. 우리는 지켜보고 있음을.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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