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문장은 없다

[초보자를 위한 삶의 주인공 되는 글쓰기 비법] 4장

등록 2021.02.23 17:21수정 2021.02.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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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르는 하늘 ⓒ 김성훈

 
"언젠가는 노을에 대한 글을 꼭 써보리라 다짐했다. 다짐을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도전을 해본다. 노을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유난히 어렵다. 너무 좋아하는 대상인데 그것이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 글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자연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그래서 어렵다. 언어가 아닌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노을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는 것,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참 아름답다'고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20p) -정여울<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수업365>(밀리의 서재)

작가 정여울이 쓴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수업365>에 수록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볼 권리'의 첫 단락입니다. 노을을 소재로 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이제야 실현해본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 '참 아름답다고 칭찬받을 만한 삶'이라는 이야기로 확장되는 힘을 독자는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이런 오묘한 에너지의 파동을 시각을 통해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글이 잘 쓰였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로 문장을 밀고 나가야 할까요? 첫째로 잘 쓰였다는 추상적인 느낌의 정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개념화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랑을 정의하는 것이 무려 여섯 가지나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장면의 구도를 정했다면, 스케치할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짚어줘야 독자는 그 길을 내비게이션 안내를 받듯 수월하게 따라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도 사랑이고 저것도 사랑이니, 모든 것을 다 담을 거야 했을 경우, 독자는 망망대해에 난파된 배처럼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가 혼란을 주는 작가에게 시간을 기꺼이 내 줄 수 있다는 기대는 망상입니다.

둘째로 까닭이 나와야 합니다. 소설가 이태준은 <문장강화>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름답구나!' 하는 것은 자기의 심리다. 자기의 심리인 '아름답구나!'만 써가지고는, 독자는 아무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다. 독자에게도 그런 심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풍경이 아름다운 까닭을, 즉 하늘, 구름, 산, 내, 나무, 돌 등 풍경의 재료를 풍경대로 조합해서 문장을 표현해주어야 독자도 비로소 작자와 동일한 경험을 그 문장에서 얻고 한가지로 '아름답구나!' 심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잘 썼다는 것을 이태준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것은 잘 썼다고 판단한 작가의 자기 심리일 뿐입니다. 그것만 써서 독자에게, 자, 이것 봐 잘 쓰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것은 강요에 가깝습니다. 어쩌다 이심전심으로 독자도 '어 정말 글 잘 썼네'라고 느꼈다고 할지라도, 내가 글 잘 썼다고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독자도 같은 느낌이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심리를 불러 일으키기 위한 까닭, 글을 잘 썼다고 평가할 만한 항목, 참신성(표현력), 통일성(구조), 표준어법에 맞는 문법성 등의 측면에서 고루 살펴보고 조합했을 때, 좀 더 독자에게 '그러니까 이 글 잘 쓴 것 맞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장은 결코 혼자 쓰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받쳐줘야 하고, 그것은 때론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때론 업혀가기도 하는 등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정여울 작가의 글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꽤 역동적입니다.
 
"언젠가는 노을에 대한 글을 꼭 써보리라 다짐했다. 다짐을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도전을 해본다. 노을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유난히 어렵다. 너무 좋아하는 대상인데 그것이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 글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자연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그래서 어렵다. 언어가 아닌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노을을 바라볼 여유가 있다는 것,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참 아름답다'고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
 
다시 정리해보면, 다짐 – 도전 – 어려움 –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음악, 미술, 자연)-성장-여유-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 삶으로 이뤄지는 문장의 연쇄를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나는 노을에 관한 글쓰기에 도전했다. 노을에 관한 글쓰기가 어려운 까닭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결국 노을에 관한 글쓰기는 어려움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노을을 바라볼 여유,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자신의 삶은 아름다우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입니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한자어가 난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란한 수식어가 붙어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히 보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러한 메시지가 잘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혹 예술 영역에 해당하는 소설 작품에서는 작가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감추기도 하는데, 그것은 작품 내에서 큰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뿐이지 상황마다 보여주는 장면은 명확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표현은 다른 말로 문장의 유기적 관계가 잘 맺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 교사들이 학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은 음과 음이 이어지는 게 상당히 분명하고 명확하게 딱딱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엄마' 했을 경우 '엄'과 '마'라는 음절이 분명하게 각지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중국어는 5성(경성포함)의 영향으로 인해, 전음이 후음을 밀어주거나 떨어뜨리거나 올리거나 등을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māma'의 경우 1성의 전음보다 더 떨어뜨려 후음 ma를 발음합니다. 그래서 중국어 교사들은 학우들에게 '마,마'라고 읽지 말고 '마-마↘'라고 해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말합니다.

문장 역시 그러 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 문장이 딱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음의 문장에 영향을 주어 그 뒷 문장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앞이 강하면 뒤가 약하게, 앞이 약하면 뒤가 강하게, 앞이 추상적이면 뒤가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언젠가는 노을에 대한 글을 꼭 써보리라 다짐했다'는 첫 문장을 다음 문장으로 잇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강조점은 바로 '다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다짐을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로 이어집니다.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미는 힘은 바로 강조점에 있습니다.

만약에 작가가 '언젠가'에 강조점을 찍었다면 문장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언젠가'와 관련한 사건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강조점이 노을이었다면 다음문장은 독자가 노을을 떠올릴만한 여러 묘사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오늘 이 글을 읽으셨다면, 그리고 다행스럽게 첫 문장을 완성했다면, 강조점을 찍은 단어를 바탕으로 다음 문장을 만들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초보자를 위한 삶의 주인공 되는 글쓰기 비 #김성훈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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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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