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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세상 떠난 뒤... 혼자가 된 남편의 여행

[리뷰] 영화 <업> 꿈을 핑계로 지금을 외면하지 말 것

21.02.24 09:15최종업데이트21.02.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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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 포스터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영화 <업>은 초반 11분 안에 소년 칼과 소녀 엘리의 만남부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몇 장면만 빼고는 모두 대사 없이 처리된다. 말하자면 프롤로그인 셈이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백발이 성성한 늙은 칼이다. 그의 지난 인생은 앞으로 그의 모험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의 요약된 삶을 보는 것이 지루한 것도 아니다. 배경음악과 장면이 적절히 어우러져 관객의 시선을 모아둘만 한 리듬을 만들어냈고, 각 장면에 등장하는 소품들 또한 어느 하나 의미없는 것이 없어서 하나하나 눈여겨 보게 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집안에 박혀 사는 칼에게 어느 날 불행한 사건이 터진다. 공사 차량이 지나가다 칼의 우편함을 부러뜨리게 되고, 아내와 함께 만든 우편함이 파손된 걸 본 칼은 분노하며 지팡이로 인부의 머리를 내리쳐 버린다. 이를 계기로 칼은 양로원으로 가서 지내라는 법원의 판정을 받는다.

칼이 집을 떠나야 하는 날, 애니매이션의 마법이 시작된다.  칼은 굴뚝 가득이 풍선을 매달아 집을 띄워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해 떠난다. 어린 시절 엘리가 집 전체를 비행선 삼아 탐험 놀이를 하던 것을 칼이 실현시킨 것이다.
 

영화 <업>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한참 날아가던 중 난간에 숨어 있던 탐험 소년 러셀이 문을 두드린다. 되돌아갈 수 없던 칼은 러셀을 안으로 들이고 이로써 칼에겐 동행이 생긴다. 그러다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여자저차 파라다이스 폭포의 맞은 편에 착지한다. 하지만 칼과 러셀 모두 집에서 떨어져 수도 호스로 집을 붙잡고 있는 신세였고, 따라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집을 공중에 띄운 채 수도 호스를 등에 메고 걸어가야 했다.

이후 칼은 폭포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떠다니는 집을 공중에 둥둥 끌고다니는데, 이는 칼이 얼마나 과거의 추억과 꿈에 얽매여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만의 꿈을 품고 산다. 그 꿈은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발을 붙잡는 짐이 되기도 한다. 칼의 꿈은 막연한 이상도 눈앞의 현실도 아닌 딱 그 중간에 있다. 그래서 땅에 닿지는 않지만 저 멀리 떠오르지는 않을 만큼의 높이로 칼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더욱 칼이 그 꿈을 놓지 못하는 걸 테지만.
 

영화 <업>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정글을 가로질러 가던 중 러셀은 칼에게 아버지와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던 추억을 들려준다. 러셀은 "그 때가 참 좋았어요. 따분하게 들릴지도 몰라도요. 지내 보면 따분한 일들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칼이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한 뒤 깨닫는 지점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

찰스 먼스로와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많은 풍선이 터지게 되고 칼은 속상한 마음에 러셀을 쫓아내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앨리와 관련된 살림들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고 회한에 잠긴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모험책을 펼쳐본다. 책의 앞부분엔 남미와 탐사대원과 관련된 사진이 가득했지만 '내가 하고픈 일들'이라는 제목 뒷장에는 그가 상상도 못한 자료들이 붙어 있었다. 바로 둘의 결혼사진과 함께 춤을 추는 사진, 소풍 갔던 사진, 생일 날 찍은 사진, 산책하는 사진, 차를 마시는 사진 등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한 장 한 장 남아 있었다. 마지막 부분엔 '당신과의 모험 고마웠어요. 이젠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요. 당신의 사랑, 앨리'라는 문구까지 써 있었다.

앨리는 알고 있었다. 당장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지 못하더라도 하루하루 칼과 보내는 시간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값진 모험이라는 것을. 칼은 앨리의 빈 의자를 보며 러셀이 남긴 탐험대원 배지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는 러셀을 찾아 밖으로 나온다. 러셀은 얼마 남지 않은 풍선을 몸에 매달고 칼의 눈앞에서 찰스를 쫓아 날아가버린다. 러셀은 어떻게든 집을 다시 띄워보려 집안의 모든 살림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그가 그토록 아끼던 물건들을 죄다 쏟아내고 난 뒤 그의 집은 다시 떠오른다. 이 순간 영화의 제목인 '업'의 의미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칼의 두 번째 비상은 그가 과거의 꿈이 아닌 현재의 꿈을 위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첫 번째 비상보다 더 의미있다.

현관 밑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더그를 보고 칼은 그를 무척 반기며 더그가 주인님으로 부르도록 허락한다. 한편 러셀은 찰스의 비행선에 잠입하지만 얼마 못가 잡혀버리고 그를 뒤따라온 칼이 러셀을 구한다. 칼은 따라나서겠다는 러셀의 고집을 뒤로한 채 더그와 둘이 도요새 캐빈을 구하러 간다.
   

영화 <업>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비행선 안에서의 구출작전은 유쾌한 설정들로 가득 차있다. 캐빈의 철장을 감시하던 개들이 칼이 던진 공을 물기 위해 우르르 복도로 나가버린다든지, 집을 격추시키기 위해 출동한 비행부대의 조종석에 뼈다귀 모양의 손잡이가 있고 비행사들인 개들이 그것을 물면 미사일이 나간다든지, 러셀이 "다람쥐다!"라고 외치자 개들이 반사적으로 추격을 멈추고 정신없이 다람쥐를 찾는다든지, 찰스와 칼이 칼싸움을 벌이는데 둘 다 노인인지라 팔을 번쩍 들다가 오십견에 멈칫한다든지, 찰스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으면 뱉어보라고 위협할 때 칼이 틀니를 그의 얼굴에 날려버린다든지, 개들의 행동대장인 알파가 개망신 깔대기를 쓰자 다들 명령을 안 듣고 비웃는다든지 등등 개와 노인의 특성을 소재로 한 귀여운 코미디가 펼쳐진다.

여차저차 끝에 찰스는 비행선 밖으로 떨어지고 칼은 캐빈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동시에 집도 잃는다. 멀어지는 집을 쳐다보는 그를 러셀이 위로하자 칼은 가만히 웃으면서 그래봤자 집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캐빈은 무사히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칼과 러셀, 그리고 찰스의 부하였던 개들은 비행선을 타고 칼이 살던 동네로 돌아간다.

러셀이 탐험대원의 배지를 받는 날, 그의 아버지 대신 칼이 단상 위로 오른다. 칼은 러셀에게 어린 시절 그가 받았던 '앨리의 뱃지'를 달아준다. 그 후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러셀의 추억을 재연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 폭포 위 고요히 남겨진 칼의 집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 집엔 더 이상 아무런 풍선도 남아 있지 않다. 집의 외출은 그렇게 영원한 끝을 맞이한다.
 

영화 <업>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영화는 관객들에게 꿈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칼이 어릴 적 우상인 찰스 먼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는 전개가 단적으로 그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언젠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다. 칼이 찰스처럼 모험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하찮아졌는가?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한 그의 인생은 시시하기는커녕 아름다워보인다.

꿈을 잉태한 건 결국 보잘것없는 일상이다. 그러니 꿈이 돌아갈 곳도 마찬가지로 일상일 것이다. 일상을 외면하고나면 꿈은 갈곳을 잃고 덧없이 공중을 부유하게 된다. 꿈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언젠가 우리는 일상 속으로 무사히 착륙해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마음 속에서 꿈을 완전히 떠나보내야 한다. 꿈과 현실이 다른들 슬퍼할 필요 있나. 겨우 꿈일 뿐인데.
애니메이션 영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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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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