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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복판에서 심정지... 가슴뼈가 부러져도 살려야 했다

내 손으로 직접 사람 목숨을 구한 라이프 세이빙의 첫 경험

등록 2021.02.27 11:52수정 2021.02.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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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패러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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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구조(Life saving) ⓒ pixabay

 
패러매딕(Paramedic, 응급구조사)이 되어 일을 하면서 사실 지금껏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했다. 그건 아직까지 내 손으로 '사람 목숨을 구했다'라고 할 만한 경우가 없었던 것. 내가 맡은 심정지 환자 중에 심폐소생과 제세동을 거쳐 다시 심장이 뛴 환자분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들 예후가 안 좋았는지 이송한 병원에서 모두 사망하셨다.

라이프 세이빙(Life saving)을 했다고 인정 받는 데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패러매딕의 심폐소생술과 제세동을 통해 심정지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어야 하고, 둘째로는 병원 이송 후에도 안정적인 심장 기능을 유지하여 환자가 원래 기능을 회복한 상태로 퇴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되면 베이스 호스피탈(Base Hospital)에서는 심사를 거쳐 '라이프 세이빙' 인증서와 배지를 수여 한다. 동료들 중에 옷에 '라이프 세이빙' 배지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동료들을 보면 부럽고, 괜히 내가 부족한 것 같고, 난 언제쯤 당당하게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라고 말해보나 싶었다.

더군다나 옆집 꼬마 R은 나만 보면 "오늘은 몇 명이나 구했어요?"라고 묻는다. 안 그래도 라이프 세이빙을 못 해서 신경 쓰이는데 볼 때마다 자꾸 같은 질문만 해대니, 이제는 괜한 자격지심이 생겨서 "야, 오늘은 밥값 좀 했냐?"로 들리기까지 했는데... 그 기회가 찾아왔다.

식은땀 흘리며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남자 

처음 지령실에서 전한 바로는 심정지가 아닌 호흡곤란이라고 했다. 환자의 아내는 양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우리 앰뷸런스를 향해 달려오는데 너무나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우리 차에 치일 뻔했다.

"Mrs. OOO잖아?"

나와는 동갑인 파트너 K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K는 그 마을 토박이로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붙어 있는 가톨릭 학교를 다녔는데 Mrs. OOO, 그러니까 환자의 아내는 K가 다녔던 그 학교의 행정직원이라고 했다. 그녀를 알아보고 앰뷸런스를 주차하는 그 짧은 와중에도 K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에게 감정의 앙금이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나, 저 여자 안 좋아해. 저 여자 때문에 교장실에 여러 번 불려 갔거든."

TV를 보다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남편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던 아내는 남편이 의식을 잃자 곧바로 차를 길옆에 세우고 911에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나 경황이 없던 아내는 자기가 어느 길 위에 있는지, 어디쯤인지 911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그저 길 옆에 이상하게 생긴 큰 나무가 있다고만 말했다.

사실 그런 정보만 가지고 환자의 위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주소, 하다못해 가로지르는 두 길 사이 어디쯤이라는 대략의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만, 깜깜한 밤에 이정표도 없는 시골길 위에서 나무 모양만 가지고 위치를 가늠하는 것은 그 지역 출신이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 파트너인 지역 토박이 K는 나무 얘기만 듣고 단번에 환자의 위치를 알아냈다.

"나무 모양만 가지고 어디인지 알 수 있어?"
"그 나무, 이름도 있어 이 친구야. (웃음)"

오타와 서쪽에서 알곤퀸 주립공원에 이르는 넓고 울창한 산림지역을 오타와 밸리라고 부른다. 내가 일하는 렌프루 카운티가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옛 시절 이 지역 아이들은 언덕에 서서 잠든 소에게 다가가 밑으로 굴리는 카우 티핑(Cow tipping)이란 것을 하고 놀았다고 한다. 

K 역시 이 지역의 산과 들, 강과 호수를 뛰놀며 카우 티핑을 하며 자랐다고 했다. 그런 토박이들에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나무는 학교 건물이나 성당 건물만큼 또렷한 이정표였던 것. 그 나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면 이 환자분은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K가 마스크와 가운을 챙겨 입을 동안 어텐딩(Attending, 환자 케어를 주로 담당하는 자)이던 내가 먼저 환자에게 달려갔다.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 도로 옆 갓길에는 눈이 쌓여서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 앞뒤에서 달려오는 차량들이 알아서 속도를 줄이고 잘 피해 가주면 좋으련만...

환자는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잡히지 않는 맥박

"눈 떠보세요!"를 외치며 가슴 복장뼈 부분을 세게 눌러 통증 반응이 있는지 살폈지만 무반응. 곧바로 뇌로 피를 보내는 경동맥을 잡아보니 맥이 뛰고 있다. 그 사이 '드르렁' 하고 코 고는 듯한 부분기도폐쇄가 들려서 속으로 '맥은 뛰니까 기도만 잘 확보하면 병원까지 늦지 않게 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손목에 맥박을 잡아봤는데 '어라, 안 잡히네?'
다른 손목에도 잡아봤더니 '뭐야... 여기도 안 잡혀?'

그래서 다시 경동맥을 잡아봤는데 방금 전까지 뛰던 경동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짧은 사이에 심정지가 온 것이다.

"K, 맥박 안 잡혀. 심정지 왔나 봐"라고 말하며 바로 환자를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려는 찰나, 아내 분이 환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뒤로 확 제끼면서 뺨을 막 때리신다.

"제발 좀 일어나봐요!"

환자의 아내를 떼어낸 후 환자를 뒤에서 껴안아 조수석에서 땅으로 끌어 내렸고 환자가 입고 있는 셔츠를 손으로 잡아 뜯어버린 후 바로 흉부압박부터 시작했다. 가슴뼈가 두드득 부러지는 느낌이 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보호장구를 다 갖춰 입은 K가 모니터를 들고 와서 얼른 제세동 패드를 붙였다.

제세동패드가 분석한 환자의 심장상태는 심실세동. 심장이 규칙적으로 힘차게 뛰지 못하고 부르르 떨기만 하는 상태다. 바로 전기충격을 가했고 환자 몸이 땅에서 튀어 오를 기세로 꿈틀한다. 곧바로 흉부압박을 다시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가 눈을 뜨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파... 그만해..."
(당연히 아프시겠지요. 제가 방금 선생님 가슴뼈를 부러뜨렸거든요...)

​심정지 후 자발순환이 왔고 환자의 맥박이 아주 예쁜 정상 리듬을 그리며 뛰고 있다. 하지만 내 예전 심정지 환자들처럼 또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육중한 그 환자를 어떻게 둘이서 들것으로 옮겼는지 신기하다. 심전도를 포함, 환자에 대한 검사를 다시 하고, 산소도 연결하고, 수액까지 다 연결하고 K에게 환자 케어를 넘겼다. 이제부터는 K가 어텐딩.

이제 병원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Mrs. OOO가 끼어든다.

"렌프루 빅토리아 병원으로 가는 거지?"
"아니에요. 저희는 펨브로크 지역 병원으로 가야 해요."
"안돼! 우리는 렌프루 빅토리아로 가는 길이었다고! 거기 이 양반 주치의가 있어!"
"이 환자는 이 상황에서 펨브로크로 가게 되어 있어요. 그게 규정이에요. Mrs. OOO, 이건 여기서 논쟁할 사안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요!"

K가 그녀의 말을 끊고 앰뷸런스 문을 막 닫으려는데 들려오는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

"나중에 하느님한테 뭐라고 변명할지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K 역시 지지 않는다.

"그거 알아요? 예전하고 똑같아.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그 순간, 신의 손길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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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 pixabay

 
현장에서 펨브로크 지역 병원까지는 정상 속도로는 35분 거리. 사이렌을 켜고 최대한 빨리 달리면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군데군데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겨울철 41번 지방도로를 빨리, 그리고 뒤에 탄 K가 제대로 환자 케어를 할 수 있게끔 안전하게 달리면서 지령실-병원-우리, 이렇게 삼자 간 무전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내 몫이다.

병원까지는 17분이 걸렸고 미리 통보를 받은 응급실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는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직후부터 응급실 의료진들에게 인계할 때까지 계속 안정을 유지했다. 이대로 환자가 제 발로 걸어 퇴원한다면 아마도 나의 첫 라이프 세이빙으로 기록될 것이다.

겸손이 아니라, 그건 K와 내가 한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본다. 연락을 받고 놀란 얼굴로 병원에 도착한 환자 가족들이 우리를 끌어안고 고맙다며 울먹이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부끄럽고 어색했다. 그렇다고 "사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의 반강제로 그들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은 퍽 좋았다.

돌아보면 내가 환자의 가슴을 누르던 순간, 그리고 K가 패드를 붙이고 제세동 버튼을 누르던 순간, 우리 둘이서 그 무거운 환자를 가뿐히 들어 올려 들것에 옮기던 순간에 오타와 밸리의 깜깜한 시골길, 한겨울 찬바람 속 우리 어깨에 살포시 얹어진 따스함, 그것은 분명 신의 손길이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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