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동네약국 사용설명서'

[발칙건강한 책방] '대한민국 동네약국 사용설명서'

등록 2021.02.24 17:34수정 2021.02.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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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처방을 조제하고, 손님을 빨리 내보내는 것이 최고의 임무였던 근무약사 시절, 환자도 나도 존중 받지 못하는 일터에서의 하루는 늘 허무했다. 그러던 중 지역주민과 노동자의 건강 지킴이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약국을 개국한 지 5년이 넘어가면서 관성에 젖으려는 지금, 환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던 초심을 다시금 일깨워준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6명의 약사가 약국을 운영하면서 겪은 체험과 공익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실천의 결과물, 올바른 약 사용법, 그리고 약국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정보들을 깨알같이 적어두었다.

나만 모르는 약국 관련 제도

이 책은 약국과 관련된 의료정책과 제도들을 소개하며 처방약을 받으면서 알아야 할 상식들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처방받은 약이 왜 구비되어 있지 않은지를 설명하면서, 대체조제의 중요성을 말한다. 보험이 되는 약과 안 되는 약의 차이, 야간과 휴일에 약값이 올라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같은 처방도 종합병원에서는 환자부담 약값이 10~20% 더 나올 수 있는 것은 가벼운 질환자가 2, 3차 의료기관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약값을 줄이는 약국 이용법을 소개한다. 또한 당뇨소모성 재료 요양비 지원을 통해 인슐린 주사바늘이나 당뇨체크지 등을 10% 환자 부담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제도와 같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유용한 제도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약사들은 월급을 제외한 약국의 수익을 지역 공동체와 서비스 개선을 위해 쓰고 있다. 또한, 금연캠페인, 자살방지 게이트키퍼활동, 치매안심센터 안내 등의 공익적 활동도 실천하고 있다. 저자가 15년째 매달 두 번씩 창신동 쪽방의 의약품 지원과 건강상담 활동을 통해 빈곤을 사회문제로 이해하게 되고, 선입견에서 벗어나 건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글이 무척 와 닿았다.

필자도 이주민 무료 조제와 이주노동자 약제비 할인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주민 중에서도 미등록 여성과 아동처럼 가장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동네약국 사용설명서』. 2020. 늘픔약국. 생각비행 ⓒ 생각비행

 
싼 약값, 빠른 조제보다 환자를 중심에 두는 약국


저자는 어떤 약국이 좋은 약국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환자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약국인지, 나의 건강을 중심에 두고 소통하는 약국인지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올바른 약 복용을 위해 일반의약품에도 복용법과 주의 사항을 스티커로 붙여주고, 약을 잊는 분들을 위해 약포지에 복용할 날짜를 인쇄하고,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복용법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어르신들을 위해선 큰 글씨로 인쇄하고, 흡입기 동영상을 보내주는 등, 중요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환자중심의 복약지도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환자, 직원 모두를 보호하는 안전한 약국을 위해 첫째,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둘째,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약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파악하고, 셋째, 환자응대업무용 감정노동매뉴얼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는 등, 환자의 욕설, 폭력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는 장치들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리고 환자의 병력이 노출되지 않도록 개인정보를 보호할 것, 장애인과 거동 불편자 누구라도 접근 가능한 공간을 만들 것, 성소수자에 대한 젠더 감수성을 가질 것, 에이즈나 결핵 등 특정질환에 대한 혐오에서 자유로울 것 등 약국뿐 아니라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인권감수성을 일깨워준다.

만성질환, 완치 아닌 관리로 건강한 삶을

하루에도 몇 분의 환자들이 "난 혈압도 정상이고, 당뇨 수치도 좋은데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보신다. 하지만 약사입장에서는 "약을 드시니까 정상으로 수치가 내려가는 겁니다. 당장 끊으시면 큰일 날 수 있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저자도 말하듯이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의 경우는, 완치가 아니라 더 심각한 합병증의 예방을 위한 관리가 약복용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아프면 약국을 찾게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럴 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어떨 때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는지를 여성, 아이, 성인과 노인으로 나누어 자세히 알려준다. 생리통, 피임, 질염 등 여성의 삶에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임신 중 먹을 수 있는 약도 요목조목 짚어준다. 아이에게 스테로이드와 항생제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며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알려준다. 노인의 경우 수분이 적고 체지방이 많으며 위장관과 간, 신장의 기능이 약하다보니 몸속에서 약이 머무는 시간이 길고 부작용도 많다. 이에 따라 주의해야 하는 수면제, 소염진통제, 제산제 등도 따로 설명해 주고 있다.

먹기만 하면 당장 건강해질 것만 같이 광고하는 건강기능식품은 모두 간에서 대사되고, 신장에서 배설된다. 영양제를 너무 많이 드시는 환자에겐 제일 필요한 약부터 몇 개월 드시고, 좋아지면 다른 영양제를 번갈아 드시길 권유한다. 저자도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며, 먹고 있는 약과 영양제를 들고 동네약국에 가서 상담할 것을 권한다. 동네약국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향남약국 약사이신 조윤미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동네약국 #건강관리 #지역의료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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