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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감자, 우리가 아는 그 '감자'가 아니라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냈다? 감자와 고구마의 이름 쟁탈전

등록 2021.03.03 14:33수정 2021.03.0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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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고구마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뭘 고를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둘 다 절대 못 잃어!!"라는 답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자도 좋아하고 고구마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인류는 무의식적으로 고구마에 비해 감자를 선호해온 것 같다. 어떻게 아냐고? 세계 여러 언어에 감자 선호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감자는 원래 고구마의 이름이었다

고구마와 감자 모두 중남미에서 기원했다. 수천년에 걸쳐 중남미 농부들이 끈기 있게 야생종의 작디작은 덩이를 개량하여 지금처럼 복스러운 감자와 고구마를 만들어냈다. 맛있는 감자,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안데스 산맥, 유카탄 반도의 농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potato는 고구마를 뜻하는 중미 단어 batata에서 유래했다. 스페인어에서 고구마를 patata로 부르게 되고 이것이 다시 영어 potato로 바뀌었다. 이때까지 고구마가 유럽에서 patata, potato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감자가 상륙하자 고구마의 인기를 압도해버렸다. 처음에는 고구마를 '그냥 포테이토(common potato)', 감자를 '상놈 포테이토(bastard potato)'라고 불렸는데, 점차 감자가 '포테이토'라는 이름을 점유해버렸다.

감자는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는 저장법도 있을 정도로 추위에 강한 데 반해, 고구마는 수분과 당분이 많아 상처가 나거나 추운 곳에 두면 쉽게 썩고, 특히 독일, 영국처럼 추운 곳에서는 감자가 훨씬 더 잘 자랐기 때문에 곧 고구마의 인기를 압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굴러온 돌에 박힌 돌이 밀려나 감자가 그냥 감자가 되고 고구마는 '단 감자(sweet potato)'가 된 것이다.
  

감자가 '감자'가 된 과정 고구마만 있었을 때는 '감자' 'potato' Kartoffel' 'aardappel'이라고 불렸으나, 감자가 전래된 뒤 감자가 이 이름들을 점유해버리고 고구마는 '고구마' 'sweet potato' 'Sußkartoffel' 'zoete aardappel'로 바뀌었다. ⓒ 김나희

 
독일어에서도 카르토펠(Kartoffel)이 원래 고구마였는데, 감자에게 이 이름을 빼앗기고 고구마는 쉬스카르토펠(Süßkartoffel, Süß=달콤한), 즉 단 감자가 되었다. 네덜란드어에서도 감자는 aardappel(땅의 사과), 고구마를 zoete(=달콤한) aardappel, 즉 단 감자라고 부른다.

따뜻한 남유럽에서는 감자, 고구마의 이름을 혼용 

추운 지역에서는 감자가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고 '감자'라는 이름을 점유해버렸지만, 따뜻해서 고구마도 잘 자라는 남쪽 유럽에서는 고구마가 원래의 기표 batata를 잃지 않았다.

스페인어에서는 감자가 patata, papa라고 불리고 고구마는 batata, papa dulce(단 감자)라고 불린다. 포르투갈어에서도 역시 감자는 batata, 고구마는 batata doce(단 감자)이다. 프랑스어에서는 patate, pomme de terre(땅의 사과, 또는 땅의 과일)가 감자를 가리키고, patate, patate douce(단 감자)가 고구마를 가리켜서, 여전히 patate가 고구마와 감자 둘 다 가리킨다.
   

감자와 닮은 사과 품종- 레네트 뒤 카나다 (Reinette du Canada) 이름과는 달리 오래된 프랑스의 사과 품종이다. 프랑스어로 감자는 pomme de terre, 네덜란드어로 aardappel, 즉 땅의 사과이다. 감자를 왜 땅의 사과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 품종의 사과를 보자마자 납득이 갔다. ⓒ 김나희

       
다만 학명은 언중의 인기에 따라 바뀌지 않으므로 여전히 고구마의 학명은 Ipomoea batatas로 남아 있다.

한국어에서도 고구마는 '감자'라는 이름에서 밀려났다

우리 한국어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에 고구마가 먼저 전래되었을 때 감저라고 불렸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도 사실은 현재의 '고구마'를 뜻한다. 감자 전래 후 처음엔 감자를 북감저, 고구마를 그냥 감저라고 했으나, 혼용의 시기를 거쳐 결국 고구마는 감자라는 이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지금의 '고구마' 이름은 대마도 지방의 발음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한반도 전 지역에 걸쳐 사투리에서는 여전히 고구마를 감자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특히 따뜻한 한반도 남쪽에서는 감제, 감저(제주도), 무시감자, 진감자, 무감자(전라도) 등으로 고구마가 원래 자기 이름을 보존하고 있는 편이다.

현재 감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만ha의 땅에서 약 4억 톤이 생산되는데, 고구마는 약 900만ha에서 약 1억 톤이 생산되어, 확실히 감자의 수요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2:1~3:2 정도로 고구마에 비해 감자가 더 많이 생산되지만 고구마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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