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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는 의사의 손길... 왜 환자가 피해야 하죠?

[신소영의 사소하지 않은 수다] 의사면허 취소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보며

등록 2021.03.02 07:26수정 2021.03.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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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년 전쯤(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기억은 뚜렸하다),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였다. 평소 다니던 곳은 아니었지만, 밤새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가까운 병원을 찾은 터였다. 의사선생님께 말했더니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옆구리 쪽을 살짝 툭툭 치는데도 아팠다. 그제야 감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옷을 내리려는데 갑자기 등을 쓰다듬는 의사의 손길이 느껴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진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던 데다가, 내가 당황한 틈에 "신우신염이네요"라고 진단하며 자세히 설명을 이어가서 상황은 그렇게 유야무야되었다. 그 의사는 속으로 '자연스러웠어'라고 했으려나.

내가 민감하게 느낀 건가. 아픈 와중에도 그렇게 스스로 상황을 합리화했고, 내 병명은 알았으니 그것으로 됐다면서 무마했다. 그러나 희롱당한 것 같은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고(지금까지도!)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

불쾌했던 진료의 기억들
 

ⓒ elements.envato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10년 전쯤, 하지정맥 때문에 외과에 방문했을 때였다(이때의 기억도 아직 뚜렸하다). 당시로부터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일을 또 겪었다.

의사는 하지정맥을 검사한다고 자기 앞에 놓인 높은 의자에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하지정맥이 있는 곳을 체크하더니, 됐다고 말함과 동시에 내 오금 안쪽을 스윽 만졌다. 순간, 20여년 전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불쾌함이 고스란히 소환되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진단하고 수술 이야기를 하는 의사를 보며, 혼란스러웠다. 어떻게든 대응 하고 싶었지만, 진료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너무 기습적으로 당하다 보면 몸도 머리도 멈춰버린다. 뒤늦게 내가 한 대응이라고는, 병원 측에 담당 의사를 바꿔달라고 한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내가 너무 민감한 거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병원을 다니고 촉진을 받으면서 내 몸을 진료를 위해 만지는 것과 아닌 마음으로 만지는 건 분명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의사에게서 받은 이 두 번의 불쾌한 경험은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몸을 쓰다듬는 행위도 이렇게 끔찍한데 더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떨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아찔하다. 물론 이런 의사보다 좋은 의사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런 트라우마를 남긴 두 의사를 소환한 이유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의료법 개정 때문이다.

과잉처벌 우려로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의료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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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 임시회관 앞. 의협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형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인데, 이를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개정안은 '실형을 선고받으면 출소 뒤 5년간, 집행유예인 경우에는 유예기간 종료 뒤 2년간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성범죄 부분이다.

23일 경찰청 발표를 보면, 2015년~2019년까지 강간 및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된 의사 수가 매년 세 자릿수로, 의사 성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구체적으로 2015년 102명, 2016년 118명, 2017년 121명, 2018년 136명, 2019년 136명이라고 밝혔다. 5년간 613건으로 변호사의 15배라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사협회는 강력범죄 금고 이상의 형에도 '의사 면허 취소와 재발급을 의사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의료법 개정은 야당에서 과잉처벌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의료행위와 무관한 범죄까지 면허 취소 사유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측은 과감한 진료행위를 위해서 의료행위가 수반되는 업무상 과실 치상, 치사는 면호 취소 사유에서 제외했다고 반박했지만,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3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양당 모두 진짜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성범죄 의사가 생명을 다룰 자격 있을까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한 장면. ⓒ tvN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으로 직업 윤리가 더더욱 필요한 직종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라고 여긴 것은 현실에선 그렇게 친절하고 인간적인 의사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 정도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몸이 아파서 찾아간 환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건 그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평생 마음의 병까지 생기게 하는 일이므로.

한편에선 안 그런 의사들도 많은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냐는 말도 들린다. 자기 집단 구성원에게 불리한 법안이 나올 때마다 듣는 말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법이 국민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 나온 법안인지 말이다.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 게 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애초에 벌 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면허를 박탈당할 일도 없는 건데 말이다. 오히려 법은 환자 입장에서는 예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의사 입장에서는 법을 잘 준수하는 의사들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난 좋은 의사가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서른 살 때 뇌수막염에 걸려서 40도 고열로 정신마저 오락가락할 때, 나를 안심시키고 격려하면서 치료해 주었던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은 지금까지 고맙다. 우리 엄마의 수다를 얹은 증상 넋두리를 다정하게 잘 들어주는 동네 내과 선생님도 고맙다. 그래서 한편으론 궁금하다. 그분들도 이 법안을 반대할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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