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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보름밥은 못 먹는 거지유?" 서운한 어르신들

코로나 팬데믹 세상에서 처음 만들어본 정월대보름 음식

등록 2021.02.26 13:40수정 2021.02.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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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서 정월 대보름날까지 시골마을에서는 축제의 나날이었다. 각 마을마다 모시는 당산나무, 돌미륵 등의 수호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줄다리기, 풍물놀이 등의 민속놀이를 한다. 농경시대에 놀이는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놀이를 통해 단합된 힘을 보여주고 체력을 단련해, 한 해 농사를 지을 근육을 만들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정월대보름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했다. 근육과 힘을 쓰는 일이 사라지자 농경사회의 기반이었던 공동체 의식도 희미해졌다. 코로나 팬데믹의 세상에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일들이 전격 금지되었다. 협업의 연결 고리가 되는 놀이와 풍속의 문화가 사라지는데 가속 페달을 밟은 격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소된 대보름 행사

"올해도 보름밥은 못 먹는 거지유? 살다보니께 보름 밥을 못해먹고 넘어가는 세상도 만나네유. 나물 몇 가지 무쳐놓기는 했는데 회관에서 못 먹는다니께 집에서 먹고 말아야지 어쩌겄어유."

거의 매일 마을 회관을 놀이터 삼아 모이던 어르신들은 못내 서운해 했다. 작년 처음으로 대보름 행사를 취소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한 해를 꼬박 코로나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부여 대보름 장날 부여 오일장에 나온 대보름 나물들 ⓒ 오창경


시골에 살다보니 저절로 세시풍속이 챙겨졌다.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 시골에서는 정월대보름에는 마을회관에 모여서 음식을 해먹고 윷놀이를 하는 것은 연례 행사였다. 정월 대보름 음식을 장만하는 비용과 뒷풀이 윷놀이 상품으로 나눠주는 휴지 다발을 구입한 비용은 마을 부녀회 결산 보고서에서 가장 큰 지출 항목이었다. 농업이 급속도로 기계화 되면서 시골마을의 공동체 행사도 점차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가 찾아왔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서 투박한 손으로 뚝딱 만들어서 내오던 소박한 음식들이 그립다. 살림에 오랜 내공이 쌓인 동네 어르신들의 음식은 별다른 재료가 없이도 구수한 맛을 냈다. 특히 대보름 오곡밥과 나물 반찬은 때가 되면 먹고 싶어지고 입맛이 기억하고 몸이 반응을 하는 음식이었다. 말린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고 들기름에 달달 볶은 나물 반찬은 고향의 어머니의 반찬처럼 그리운 음식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 하지만, 시골 마을의 요리 고수들에게 둘러싸여 살다보니 물 길어오고 설거지만 하는 하수의 자리만 내 차지였다. 그러니 요리를 레시피로만 배운, 검색 창에서 찾아낸 실력으로 다져진 요리 수준은 식구들 삼시세끼만 챙기는 단계에서 늘지 않았다. 대보름 음식을 직접 해먹는 일은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대보름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다
 

부여 오일장에 사온 나물들 지지고 볶고 나홀로 대보름 음식을 만들어 본다, ⓒ 오창경


대보름을 앞두고 있는 오일장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말린 나물과 오곡밥 재료들이 좌판에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솥단지만 걸면 바로 보름밥을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오일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어 보였다. 한국전쟁 중에도 섰다는 부여 오일장이 작년 전염병의 세상에서는 판을 벌이지 못했다. 설 대목에도 기를 펴지 못했던 오일장이 대보름에는 기를 펴는 거 같았다.

"우리 시어머니가 그랬슈. 대보름에 칼을 쓰면 평생 칼을 쓰며 살아야 된다구유."
"그럼 어떻게 대보름 음식을 해먹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러니께 보름 전날에 다 해놓고 보름날에는 맘껏 놀으라는 소리쥬. 보름날에는 딱딱한 거 먹는 거 아니랬슈. 그래서 두부를 먹는 거래유. 내가 평생 두부를 만들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인 사람이유."

 

나물 파는 여인네. 두부를 직접 만들어서 판다고 해서 장날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 오창경


어찌나 장사를 잘 하는지 좌판의 여인네에게 홀딱 빠져서 말린 나물에 달래와 쑥까지 있는 대로 사고도 두부까지 한모 사버렸다. 두 식구가 며칠을 먹어도 남을 양이었다. 시골 오일장은 이런 맛에 다니는 거니까.

그리운 그 시절 정월대보름

오랜만에 동네 지인들을 불러 오곡밥에 말린 나물로 차린 밥상을 대접하기로 했다. 요즘 애들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까봐 하지 못했던 '나 때는 말이야'를 마음껏 풀어놓기 위한 시간으로 지인 2명만 불러서 대보름 음식을 같이 먹기로 했다.

"벌써 50년 전이네. 그때는 대보름이 이렇게 포근하질 않았지. 논두렁 밭두렁을 뛰어다니며 놀다보면 정월 찬바람에 코가 빨개지고 볼때기(볼)가 겨우내 꺼칠꺼칠하게 터있었고 그랬지."
"정월 보름께에 깡통을 뚫어서 쥐불놀이 한다고 불을 붙여 돌리고 놀다가 멀리 던지면, 불티가 나이롱 옷과 양말에 튀어서 영락없이 구멍이 났지. 그 때는 나이롱 옷이 전부일 때라 불티 구멍이 난 옷을 안 입은 애들이 없었다니께."
"내가 쥐불놀이 깡통 멀리던지기는 선수였는디."
"뭔 소리여. 내가 더 잘 던졌다니께."


두 동네친구들의 헛 뻥치는 소리마저 즐거운 코로나 시대의 정월대보름 '나 때는 말이야' 시리즈가 계속되었다.
 

대보름 상차림. 시골살이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나 혼자 대보름 음식을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과 마을 회관에 모여서 나물을 지지고 볶아서 수다를 버무려서 먹던 시간이 그립다. ⓒ 오창경


그 시절에는 논두렁의 풀을 자라는 대로 베어다가 소여물로 주기도 하고 발효시켜 거름으로 쓰던 시절이라 논두렁에는 자라다 만 잡초뿐이었다. 쥐불놀이를 하다가 불티가 튀어도 큰불로 번질 만한 풀이 없었다.

논에서 이어진 산에도 나무들이 거의 없는 민둥산이어서 발화가 될 만한 낙엽조차 귀할 때였다. 산불에 대한 인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보름을 시점으로 논두렁마다 들불이 타오르고 흥겨운 풍장소리가 마을 고샅에 울려퍼지면 동네 친구들과 온 마을을 보름달처럼 둥실둥실 뛰어다니던 정겨운 시절이 있었다.

"배고픈 시절이었잖여. 그날만큼은 맘껏 먹으라고 집집마다 오곡밥을 한 양푼씩 해서 부뚜막에 놔둔 거지. 저녁에 어느 집 사랑방에 모여서 윷놀이 하고 놀다가 누구네 집에서 오곡밥을 훔쳐오고 누구네 김장독에서 김치를 퍼오고 해서 손으로 쭉쭉 찢어먹으면 그렇게 달았는디. 지금은 그런 맛이 다 어디로 가버렸디야."
"귀밝이술, 그거 있잖여. 보름날 아침에 할머니가 나이가 어린 우리들에게도 한 잔씩 마시라고 줬잖여. 어린 나이에도 그 술이 그렇게 맛이 있었당께. 우리집은 좁쌀과 누룩으로 술을 했는디 지금도 그 솜씨를 아무도 따라가질 못혀."


흘러간 세월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기억되는 법이다.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공백으로 있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남들의 추억들로 채웠다. 동네 지인들과 반세기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들만의 정월 대보름을 즐겼다.

낮에 내린 비로 오늘은 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백신 접종이 정월대보름 달을 덮어버려 불꽃이 튀고 달집을 태우는 대보름 이벤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년에는 오곡밥에 아홉가지 나물은 못 먹어도 전염병은 물러가기를 기원해본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봄나물 #오곡밥 #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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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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