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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안 볼 권리' 발언 들은 날, 난 악몽을 꿨다

[추모글] 기홍씨 잘 가요, 이제는 편견 없는 곳에서 편히 쉬어요

등록 2021.02.28 11:58수정 2021.02.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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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제3지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에서 '퀴어문화축제 안 볼 권리'를 말하던 날, 나는 악몽을 꿨다. 복면을 쓴 누군가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서는, 내가 성소수자인 게 확인되자 내 얼굴을 칼로 사정없이 그었다. 놀라서 깼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다시 잠들었다. 이번엔 길을 걷고 있던 내가, 문득 뒤통수에서 살기를 느껴 돌아봤더니 내 뒤를 조용히 밟던 이가 '호모새끼'하면서 나를 둔기로 내리치는 꿈이었다. 또 다시 악몽이었다.

잠들면 또 비슷한 악몽을 꿀까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다독이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새로 주어진 하루가 형벌같이 느껴져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 섬처럼 외로운 사람들

나만 고통스럽고 외로운 밤을 보낸 줄 알았다. 다른 내 성소수자 친구는 밤이 깊어갈수록 속에서 일던 분노가 가라앉은 자리에 절망만이 남아, 그게 믹서기 칼날처럼 마음 속에서 쉼 없이 돌며 자신을 거침없이 후벼 파더라는 말을 했다. 그날 밤, 이 땅의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나와 내 친구처럼 외로운 항해를 하다가 멈춰서, 까만 밤 망망대해 위 섬 하나처럼 절망스러운 표류를 하고 있었을 거다.
  
어디 그날 하루뿐이었겠는가. 안철수의 망언에 이어 또 다른 경솔한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말을 하나둘 얹을 때마다, 나와 친구들의 얼굴은 사정없이 찢기고 두개골이 부서져 나갔다. 그 친구 중 하나였을지 모르는 기홍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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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씨가 지난 2017년 제주퀴어문화축제를 준비 중인 모습. ⓒ 김기홍씨 블로그 갈무리

  
기홍씨는 자신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며, 성소수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그는 제주퀴어문화축제를 여는 데 앞장섰고, 지난해 총선에서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관련 기사: 반대 많았던 제주 '첫' 퀴어문화축제, 이렇게 열렸다).

그는 평소 주위 성소수자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지막으로 남긴 게시물에는, 얼마 전 출시된 길벗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자긍심을 드러낼 수 있어 기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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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길벗체로 쓴 김기홍 길벗체는 내가 주도해서 만든 한글 최초의 완성형 전면 컬러 서체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연대의 뜻이 담겨있다. 길벗체로 쓴 김기홍씨 이름. ⓒ 강영훈

 
길벗체는 내가 주도해 만든 한글 최초의 완성형 전면 컬러 서체다. 글자에 입힌 색상 조합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색이라던가, 트랜스젠더나 바이섹슈얼을 상징하는 색상이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거나, 이들에 연대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다.

언젠가 내가 세 가지 종류의 길벗체로 그의 이름 석 자 '김, 기, 홍'을 적어 건넨 작은 선물에, 그는 고맙다며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는 이미 많은 선물을 준 사람이었다. 

과거 나는 군 복무 중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 정신병원에 3개월 넘게 갇혔던 적이 있다. 기홍씨는 재작년 봄, 내가 겪었던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눌 자리를 만들어준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작년 초에 내가 기획했던 '한국 성소수자에 관한 종교적 혐오 사례 미디어 아카이브' 전시에 가장 먼저 방문한 사람이기도 했다. 또, 그는 작년 가을에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국가 폭력을 경험한 성소수자 군인들 증언을 담아 만든 설치물을 전시했을 때, 제법 외졌던 전시공간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어렵게 찾아와 격려와 지지의 뜻을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따뜻했던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봤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왜곡된 말들도... 계속 고립돼 있어요'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고백이 내게는 너무 시리게 다가왔다. 그가 떠나는 길에서는 덜 외로웠으면 해서, 굳이 빈소를 찾아가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제람과 김기홍 제람과 숲, 라파엘이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전시이자 한국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적 혐오 실태를 반영한 미디어 생산물 아카이브 연구인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Pride Over Prejudice, POP)에 첫 방문자로 다녀간 김기홍과 제람이 함께 찍은 사진 ⓒ 강영훈

 
기홍씨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에 사람이 많아 보여서, 당차고 밝아 보여서 당연히 고립되지 않았을 거라 여겼던 성소수자 친구들이 문득 떠올랐다. 펜을 들고 당장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곁에 있다고, 곁에 있겠다고, 괴로울 때 꼭 연락하라고 적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희미하게나마 신호를 보내는 등대처럼 서로가 그렇게 의지하며 살아가자고 꾹꾹 눌러 적었다. 내가 제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재배하고 수확한 천혜향을 조금씩 담아 편지와 함께 그들에게 밀어 보냈다.

일단 오늘을 살아남자, 친구들아

내일부터 제주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다음 며칠 내내 육지로 가는 배가 안 뜬다기에, 조금 서둘렀다. 기약할 수 없는 내일까지 미룰 여유가 없었다. 오늘 지금 당장 말해야만,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일단 우리가 오늘 살아남아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그는 떠나고 없지만, 나는 살아남아 이렇게 오늘을 기억할 글을 쓰고 전시를 한다. 곧 책을 펴낼 예정이고, 축제도 열 것이다. 무엇보다, 의지적으로 내가 고립되지도, 남을 고립시키지도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서로를 보듬고 이렇게 연결되어, '우리'로 오늘을 살아갈 테다.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를 논하는 이들에 굴하지 않고, 우리는 당당하게 성소수자로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거다.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그가 세상에 없는 하루를 겨우 살았다. 

[관련 기사] 
성소수자 논쟁하는 정치판에 김기홍이 남긴 질문 http://omn.kr/1s7hd
'퀴어퍼레이드 거부' 안철수와 국힘, 헌법도 모르고 정치하나 http://omn.kr/1s5ny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시민기자 강영훈(제람)씨는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시각예술활동가입니다. 다양성 존중·소수자 연대의 뜻이 담긴 서체 '길벗체' 제작을 총괄한 공동책임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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