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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입니다, 똑같은 양말을 3만원어치 샀습니다

[워킹맘 생존법] 고민과 결정을 최소한으로

등록 2021.03.06 11:48수정 2021.03.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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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말을 샀습니다.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무려 3만 원 어치나요. 무슨 양말을 이렇게 많이 사냐고요? 일단 3만 원부터 무료배송이었고요. 그보다 큰 이유는 향후 1~2년간 양말 고를 일이 없었으면 해서요.

같은 디자인의 양말을 여러 켤레 사두면 아침마다 이 양말 신을까 저 양말 신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빨래를 정리하기도 쉽고 한 짝을 잃어버려도 나머지 한 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뇌의 노동을 덜어주려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고, 결정할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 elements.envato

 
옷도 한 번에 여러 벌씩 사는 편입니다. 주로 계절의 초입에 사요. 입기에도 편하지만 관리도 편한 옷을 선호합니다. 세탁기에 막 돌려도 되는 옷이요. 지난 겨울에는 SPA 브랜드 한 곳에서 무난한 디자인의 바지 4벌과 셔츠 5벌을 샀습니다. 비슷한 디자인에 색상만 다른 옷들로 샀더니 코디하기가 참 편해요. 손에 닿는 대로 맞춰 입어도 패션 테러리스트 소리를 듣지는 않습니다.

가방으로는 백팩을 애용합니다. 우산과 작은 수첩 하나, 볼펜과 립글로스를 넣어 다녀요. 점심에 읽을 책 한 권과 출장에 필요한 서류철도 거뜬히 들어가는, 넉넉한 크기의 백팩입니다. 주말에는 용도에 따라 두 가지 사이즈의 크로스백을 번갈아 사용합니다. 새로운 용도가 생기지 않는 한 향후 몇 년간 가방을 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같은 양말, 비슷한 옷, 같은 가방에 같은 신발까지. 복사해다 붙인 듯 매일을 비슷한 옷차림으로 살고 있습니다. 옷차림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면 저는 옷 고르는 일조차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로 보일지도요.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저는 감히 제 입장을 대변해주실 몇 분의 선배님들을 이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결정의 최소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든 그는 늘 같은 옷을 입었던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회색 정장만 고집했고 버락 오바마는 회색이나 네이비 슈트를 주로 입었죠. 심지어 '패션은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말해준다'던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조차 정작 본인은 블랙 슈트만 입는다고 해요.  

"뭘 입을지, 먹을지 이런 결정은 하고 싶지 않다. 사소한 일에 방해를 받으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없다. 간단한 의사 결정을 하느라 에너지를 써버리면 다음 의사 결정을 할 때 능력이 떨어진다."

재임 시절 오바마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와 아인슈타인, 마이클 코어스가 늘 같은 옷을 고집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지 않았을까요?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오바마나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한 스티브 잡스 못지않게 머릿속이 분주한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엄마이자 직장인인 우리, 워킹맘들이요.

사람들이 하루에 맞닥뜨리는 결정의 순간은 평균 3만5000번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하게 되는 '일어날까 좀 더 잘까' 하는 결정에서부터 잠들기 전 '화장실에 다녀올까 말까' 하는 결정까지, 하루는 서로 배턴을 이어가는 수많은 결정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지요. 내 몫의 결정에다 아이 몫의 결정까지 해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아마 평균치보다 훨씬 더 많은 결정의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건 뇌의 도파민계 신경세포들이라고 해요. 제 도파민계 신경세포들은 어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와 관련한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어린이집 등원을 앞둔 아이의 수저세트와 신발을 고르느라 열일했고요.

칫솔, 치약, 샴푸, 바디워시, 토너, 로션, 비비크림, 립글로스, 양말, 속옷까지. 내 몸 하나 집 밖에 내어놓기 위한 준비물도 열 가지는 족히 넘지요. 매 교체주기마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가격까지 비교하며 최선의 결정을 하려면 기업의 구매담당자처럼 구매만을 담당하는 도파민계 신경세포가 따로 있어야 할 겁니다.

뇌의 노동을 덜어주려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고, 결정할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양말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향후 1~2년 치의 양말 구입과 관련한 결정을 미리 해두는 거지요.

한번 사용해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5년이든 10년이든 갈아타지 않고 쭉 사용합니다. 토너와 클렌저는 20대 중반부터 10년 가까이 같은 제품을 사용 중이에요. 화장품은 용도별로 딱 한 가지씩만 둡니다.

주름에는 A제품이 좋다던데, 하는 말을 들으면 솔깃하긴 합니다. 하지만 화장대 위 제품의 개수는 곧 바쁜 아침에 해야 할 결정의 개수가 되고 말지요. 같은 용도의 화장품을 여럿 두었다가 기한 내 다 쓰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해 난감했던 경험이 있기도 하고요.

결정할 거리가 줄면 머릿속은 물론이고 서랍 속, 화장대 위도 간결해집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소한 결정들을 조금씩 덜어 내다 보면 우리가 느끼는 피로의 무게도 조금은 덜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루틴 만들기
 

정해진 루틴을 따르며 에너지를 아낍니다. ⓒ elements.envato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들으며 출근하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우유를 한 잔 마셔요. 점심시간이면 단골 카페의 같은 자리에 앉아 늘 같은 메뉴를 먹고요.

과거의 내가 해둔 결정에 편승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무료하지 않아요. 어제의 루틴을 반복해도 오늘은 결코 어제와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근길에 듣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늘 새로운 정보가 흘러나오고 점심시간에 읽는 책 속에는 어제와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과거에 기댈 수 없는 새로운 과제가 항상 있어요.

결정할 것이 많다는 건 머리와 가슴에 담을 것이 많다는 의미겠죠.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고, 직장에서도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렇다고 내 인생을 대충 방치하고 싶지 않고요.

수많은 가치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삶에 충실히 담아내기 위해, 정해진 루틴을 따르며 에너지를 아낍니다. 가정과 직장에 양발을 걸쳐둔 이상 삶이 아주 단순해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조금 덜 복잡해질 수는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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