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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이름에 얽힌 웃픈 사연

[서평] 김대현 저 '당신의 징표'

등록 2021.03.03 08:58수정 2021.03.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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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신이다. 몇 해 전 44년 동안 불렸던 이름을 부정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업무 미팅에서 상대방에게 명함을 건네자 이름을 확인하더니 본명이냐고 물어 온 것이다. 새삼 김은숙 작가와 그가 쓴 드라마 <도깨비>의 인기를 실감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도깨비>의 시청률이 그렇게 대단했을까. 최근에도 중고 거래 때 예금주가 노출되면 열에 다섯은 "와이프가 좋아하는 분이네요"라거나 "공유시네요. 네고 안 되나요?"라며 나를 당혹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공유가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농반진반이다).


이처럼 이름은 나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징표'가 된다. 몇 해 전 김대현 작가가 쓴 <당신의 징표>는 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론을 다뤘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김 신'보다 더 심한 이름을 언급한다.
 

<당신의 징표> 표지 ⓒ 북멘토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대략 80자에 달하는 이름이다. 개그콘서트도 폐지된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썰렁한 개그냐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한때를 풍미했던 코미디언 서세원이 대한민국을 웃겼던 이름이다. 

워낙 긴 이름이라 서세원도 추임새를 넣으며 슬랩스틱을 했는데, 가끔 순서가 뒤바뀌거나 잘못 발음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웃픈' 사연이 있다.

'수한무'는 수명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거북이와 두루미도 십장생(十長生)의 일원으로 불로장생을 뜻한다. 동방삭은 한무제 때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만큼 장수한 사람이다. 즉, '김수한무...'는 자식이 오래 살길 바라는 부모의 작명 센스인 것이다. 여기서 김대현 작가는 개그를 다큐로 승화한다.


"이름의 중간을 차지하는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캉'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사람의 이름으로 리듬감을 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김수한무' 이야기 속의 아이는 이름과 성을 갖춤으로써 자신을 사회의 다른 존재들과 구분함과 동시에 자신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사회적 관계 자산을 외부에 표시한다. 다시 말해 서세원의 개그, 말장난 같은 운율의 라임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던 셈이다.

이름의 의미뿐 아니라 이름의 형식도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다. 동일한 형식의 이름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의 형식이 다른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자긍심을 없애기 위해 강제한 창씨개명 정책도 공동체 귀속 요건과 관련된 정책이다. 말 그대로 가족공동체를 규정하는 새로운 씨를 창설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변경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시행한 다른 동화 정책들에 견주어 창씨개명 정책에 유난히 강하게 저항했던 것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는 행위일 뿐더러 오랜 기간 부계 혈통으로 이어져 온 가족공동체의 이탈을 의미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의 징표>는 '이름의 계보학', '이름의 심연', '이름의 문화사'를 두루 훑으며 제목처럼 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학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김대현의 징표 분석은 <슬램덩크>까지 이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백호의 원작에서의 본명은 '사쿠라기 하나미치(櫻木花道)'로 직역하면 '벚나무 꽃길'이다.

"벚꽃은 매우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만큼 너무나 빨리 시들어 떨어지는 꽃으로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뽐내기도 전에 어느 새 사라지고 만다, 사쿠라기(강백호)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굉장한 활약을 하며 팀의 에이스로 떠오르지만, 안타까운 부상으로 활동을 접게 되고 경기장에서 사라진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채소연은 본명인지, 또 어떤 함의를 담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동심을 파괴할 것 같아 참는다.

<당신의 징표>는 출간한 지 3년이 지난 구간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집콕 생활에 지친 '당신'들의 교양을 채워 줄 수작이다. 요즘 음성형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가 뜨는 모양인데, 각자의 성과 이름으로 수다를 떨며 '불타는 소통'을 해봐도 좋겠다. 내가 클럽하우스에 만든 방의 제목은 '난 도깨비가 아니야'다.

당신의 징표 - 이름의 존재론과 성(姓)의 정치학

김대현 (지은이),
북멘토(도서출판), 2018


#당신의징표 #김대현 #북멘토 #도깨비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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