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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뢰더의 자서전을 읽고 떠오른 도시, 춘천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속 정책과 춘천 시정이 닮은 점

등록 2021.03.03 16:27수정 2021.03.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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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자서전 표지 전 독일 총리 에르하르트 슈뢰더의 자서전. 그의 정치 역정과 철학을 잘 담았다. ⓒ 메디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인물이다. 2005년 7년간의 독일 총리직을 마치고,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자문을 했고, 한국도 자주 찾았다. 그러던 중 2017년 8월 한국에서 자서전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 문명국가로의 귀환>이 번역 출간됐다.

다음해에는 평상시 그의 통역을 맡았고, 한국판 자서전의 책임 번역을 맡았던 김소연씨와 결혼했다. 그와 한국의 인연은 여전한데, 지난달 24일에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명예특별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독일의 역사적인 진보정당인 사민당(사회민주당)의 지도자로 총리에 오른 것은 서독시절 빌리 브란트(총리 1969~1974)가 대표적이었고, 슈뢰더는 1998년 녹색당과 연정을 통해 총리에 올라 2005년까지 7년 간 독일호를 이끌었다. 그는 2003년 6월 '어젠다 2010'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고, 부당해고 금지의 간소화 등 개혁적인 안이 많았다.

궁극적으로 이 정책이 그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 정권을 잡은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어젠다 2010'을 수용했고, 전 세계적으로 독일의 개혁능력을 상징하는 정책이 됐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많은 나라에서 슈뢰더를 찾는 이유기도 하다.

예술, 문화, 에너지 정책 등 닮아
 

코로나 시대에도 멈추지 않은 춘천 문화 코로나 시기에 춘천시에서는 '어바웃타임 중도'(위)와 일상 공간에서 방역수칙을 지킨 공연(하단) 등을 선보였다. ⓒ 춘천문화재단

   
그런데 슈뢰더가 가진 정책 구상이 비슷하게 실현되는 곳이 한국에 있다. 바로 춘천이다. 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으로 일하면서 춘천시 정책과 슈뢰더가 제시한 정책이 너무 흡사한 것을 발견했다. 슈뢰더가 자서전에서 던진 핵심 과제들을 중심으로 춘천 시정과의 유사성을 찾아본다.

슈뢰더는 독일 패망 직전인 1944년 독일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 리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6개월 후에 사망해 루마니아에 묻혔기 때문에 어머니는 힘들게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슈뢰더 역시 중학교 졸업 후 판매직을 하다가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대학 입학 자격을 땄다.

이후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가 됐다. 젊은 시절부터 사민당의 당원으로 활동했고, 1980년부터는 연방하원 의원을 지내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한번의 좌절을 겪은 후 1990년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냈고, 1998년에 제 7대 독일 연방총리에 선출됐다.


그럼 슈뢰더의 정책과 춘천의 정책은 무엇이 닮았을까. 슈뢰더는 1986년 니더작센주 총리 선거를 치른 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공동체를 이루려면 예술과 문화가 마음 껏 융성할 수 있는 자유 공간을 보장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점"(45p)을 깨달았다고 썼다.

민선 7기 춘천시정의 핵심 과제에는 '명실 상부 문화·예술 도시 도약'이라는 과제가 있었다. 물론 이전부터 인형극제, 연극제, 마임축제 등으로 가장 문화 예술이 활발한 도시였지만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사람 마다 한가지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지원하는 '1인 1예'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코로나 시대에도 온택트 공연을 개발해 예술가들도 시민들도 휴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런 성과들이 인정받아 금년 1월초에는 5년간 200억원 규모로 진행되는 2기 '법정 문화도시'에 지정되기도 했다.

슈뢰더는 진보정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을 통해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독일에서 원전을 없애고, 재생 에너지 비중을 올리는 등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폈다. 특히 2000년 6월 원자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핵합의 타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15만명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하면서, 매년 60억 유로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기초를 다졌다.

민선 7기 춘천시가 내세운 정책 기조 중 '지속 가능도시'는 이런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1억 그루 나무심기'를 통해 '바람길 녹지축 조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전거·버스 타기운동을 통해 자동차를 줄이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무인수거기나 RFID 음식물류 폐기물 종량기를 설치하는 등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수소차 등 수소경제 정착과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확보도 나서고 있다. 
 

안심 먹거리와 지역푸드산업을 육성하는 춘천 지역 푸드 플랜을 위한 토론회(위)를 개최하고, 학생들을 위한 안심 먹거리 배달 등도 선제적으로 추진했다 ⓒ 춘천시농업기술센터

 
자연에 순응하는 농업에 대한 예의도 닮아

슈뢰더는 레나테 퀴나스트를 농업부장관에 임명해 독일 농업정책 전환을 가져온 인물이기도 하다. 슈뢰더 정부는 "농업에서 일방적인 양적 증가나 가격 경쟁을 추구하는 생산방식과 결별하고, 대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면서 특히 품질 경쟁을 추구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농업 경영 방식에 치중"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실제로 경영방식이 건강과 환경보호 요건에 부합하는 사업장을 선별적으로 지원했다. 이를 위해 농업, 친환경 농가, 식품업계 그리고 상업계간의 협력구조를 새롭게 갖추려 했다. 이 과정에서도 슈뢰더는 '유전자 변형 유용작물'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되풀이 했다.

춘천도 마찬가지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농업전공 후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젊은 시절부터 생명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다. 또 문재인 정부 시작과 더불어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에 일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 경험이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한 인식은 춘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선 스마트팜 등 양적 기반의 생산 체제보다는, 춘천만의 안전하고, 품질좋은 농식품 및 산림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정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곳에 안심 먹거리가 있다. 이를 위해 시가 직접 먹거리지원센터를 운영하고, 모든 학교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를 100% 믿을 수 있는 안전 먹거리로 제공하고 있다. 이 센터는 춘천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우선으로 해 신선하고, 안전성 및 농산물 검사 등 철저한 검증도 거친다.

또 상당수 지자체가 시 소유림을 팔 때, 이재수 시장은 200만평을 시유림으로 매입했다. 또 지난해부터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농산물 인증 촉진비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농산품을 유통하기 위해 농수산물도매시장에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로컬푸드 센터'를 건립한다.

이밖에도 슈뢰더가 독일 및 세계 정치에 뿌린 씨앗들은 무궁하다. 그는 1998년 아시아에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개인과 독과점 기업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는 재벌 모델을 비판했다.

또 2003년 6월 1일 사민당 특별전당대회에서 내세운 '어젠다 2010'도 미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책 전환의 상징으로 읽혀진다. 또 코소보나 아프카니스탄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과감하게 군대를 파견했지만,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라크 전쟁 때는 파병을 거부하기도 해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빌리 브란트에 이어, 2004년 8월에 열린 바르샤바 봉기 60주년 행사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재임하던 2000년 6월 나치 착취 강제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합의를 이루는 행동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전히 빛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춘천 시정을 생각할 수 있는 의미있는 책 읽기의 시간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 문명국가로의 귀환

게르하르트 슈뢰더 (지은이), 김소연, 엄현아, 박성원 (옮긴이), 김소연 (감수), 김택환 (해제),
메디치미디어, 2017


#슈뢰더 #독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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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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