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운명의 변곡점이 되는 스승 이달을 만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4회] 이달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부끄러움 없이 방랑하겠다는 의지 보여

등록 2021.03.05 17:11수정 2021.03.05 17:11
0
원고료로 응원
 
a

손곡 이달의 시비. 손곡 이달의 시비. ⓒ 강기희

 
허균은 어렸을 때 서울 건천동 본가로 돌아와서 여덟 살 때 명예방(명동 근처)으로 이사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가 세 살 때에 작은형 허봉이 문과에 급제하고, 일곱 살 때에 동ㆍ서 분당이 이루어지면서 아버지가 동인(東人)의 영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학인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역시 당대 일급 의 시인 노수신ㆍ양사언과 가까이 지낼만큼 학문과 지절이 높았으며, 두보의 시에 능하여 학당파(學唐派)의 중심인물이었다.

허균은 이런 아버지 밑에서 글공부를 하며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릴적 살았던 마을의 회상이다.

나의 본집은 건천동에 있었다. 청녕공주 저택 뒤로부터 본방교에 이르기까지 겨우 서른 네 집인데, 나라가 시작된 이래로 이 동네에서 이름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김종서ㆍ정인지ㆍ이계동이 같은 때였고, 양성지ㆍ김수은ㆍ이병정이 한 시대였으며, 유순정ㆍ권민수ㆍ유담년이 같은 시대 인물이었다.

그 뒤에도 정승 노수신 및 나의 아버님과 변헙이 같은 때에 살았고 근세에는 서애 유성룡과 나의 형님ㆍ이순신ㆍ원균이 한 시대였다. 유성룡은 나라를 중흥시킨 공이 있었고 원균과 이순신 두 장군은 나라를 살린 공이 있었으니, 이때에 와서 인물이 더욱 성하였다. (주석 4)


허균이 열한 살 때에 아버지가 경상감사로 부임하자 어머니와 함께 상주로 따라갔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아버지가 갑자기 별세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아버지와 형들에게서 유학과 당시(唐詩) 등을 배워 영특함이 드러났다.


아홉 살 때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시를 지었다. 매형 우성전이 그의 시를 읽고 "뒷날 문장을 잘 하는 선비가 되기는 하겠지만, 허씨 집안을 뒤엎을 자도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유몽인의 『어우유담』에 나온다.

그가 열두 살 때에 누이와 함께 둘째형 허봉의 소개로 이달(李達, 1561~1618)을 만나게 되었다. 이달은 아버지와도 교분이 있었던 선비였다. 허균이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이달을 스승으로 만난 것은 그의 생애에 일대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된다. 사람은 언제,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습은 꾀죄죄하였고 성품은 또 분방하여 걸리는 데가 없었다. 그리고 속된 예의를 익히지 않아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술을 즐기며 왕희지의 글씨체로  글을 잘 썼다.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에 살면서 한 뙈기의 밭도 없었고 먹고 사는 일에 종사하지 않아 사람들이 더러 이를 아껴주었다. 평생에 몸 붙일 땅이 없어서 사방에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어서 사람들이 천하게 여겼다. (허균, 『손곡산인전』)

허균이 쓴 스승 '손곡'에 대한 인물평이다.

 좋은 자리의 높은 벼슬아치들
 곳곳에서 만나는데
 수레는 물같이 흘러가고
 말도 마치 용과 같구나
 장안의 길 위에서
 헛되이 머리를 돌리니
 그대의 집이 곁에 있지만
 아홉 집이나 닫혀 있더라.

이달이 젊은 시절 함께 글을 배운 옛 벗들이 높은 벼슬아치가 되어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타고 있는 말과 수레부터도 자신의 초라한 나귀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그러나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러한 외양의 차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따돌림이다. 옛 친구들의 집이 바로 옆에 있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신분적인 차이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주를 미워하고 질시하는 권력자 사대부들이 냉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문을 두드릴 생각도 못한 채, 솔적없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이처럼 이달의 시에는 남모를 울분과 회한이 가득하다.

 가을 강물은 급하게 흘러
 용나루로 내려가는 데
 나루의 관리가 배를 세우고자
 비웃다가 다시금 꾸짖는구나
 서울에 드나들면서
 무슨 일을 했길래
 십 년이 넘도록
 벼슬 한 자리 못 얻었는가. 

「도룡진」이라는 이 시에는 이달의 해학이 담겨 있다. 한강 나루를 건너서 서울로 드나드는 자신을 보고 여러 번 과거 시험에 떨어진 것으로 여긴 나루의 뱃사공이 비웃는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나 정작 이 시가 의미하는 바는 벼슬을 못 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떠돌아다녔다는 데 있다. 남들은 비웃지만 자신은 신념을 가지고 부끄러움 없이 방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달의 자(字)는 익지(益之), 흔히 손곡산인(蓀谷山人)으로 불린다. 그의 출생 시기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언제까지 살았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여기 저기 문헌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선조(宣祖, 1552~1608) 대의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는 고려 시대의 문장가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기녀 출신이라,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서 제대로 쓰여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이달은 한동안 강원도 원주 손곡(蓀谷)에 살면서 그 곳의 지명을 따서 손곡이라는 호를 지었다. 비롯 서얼 출신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많은 책을 읽고, 천성이 총명하여 하나를 읽으면 열을 헤아리는 재주를 가졌다. 젊었을 때에 이미 읽지 않은 책이 별로 없었으며, 또 많은 글을 지었다. 술을 좋아하여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기력을 잃다시피 했다. 하지만 결코 주정뱅이는 아니었다.


주석
4> 「성웅식소록」, 허경진, 『허균 평전』, 15쪽, 재인용, 평민사, 1984.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멋있는 수필 <멋>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