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중인 학생에게 표창장을 주었습니다

놀이처럼 시작한 일, 상 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등록 2021.03.04 10:24수정 2021.03.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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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장이라고 하니 동양대 표창장 얘기인가 할텐데 아니다. 그런 시시한(?) 표창장이 아니고 '올해의 3·1만세 혁명 운동가' 표창장 얘기다.

이름부터 거창하지 않은가? 동양대 봉사상 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상이다. 상의 이름에서만이 아니라 상을 만든 곳과 그 상을 받은 사람을 알게 된다면 더 놀랄 것이다. 그런 상이 있었나? 뉴스에 안 났던데? 그 상은 누가 받았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방탄소년단?

다 틀렸다. 그 상은 내가 만들었고 작은 단톡방 이름으로 줬는데 상장도 있고 상금도 있었다. 받은 사람은 이름을 말해도 모를 것이다. 그 사람을 소개해도 '3·1만세 혁명 운동가'라는 말과 어울리는 사람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내막은 이렇다. 30여 명이 모인 단톡방이 있는데 만들어진 지 몇 년 되어서 서로 임의로운 사이다. 그 방의 한 젊은이가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그곳에서 비닐 재활용 활동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 과정이 자못 눈물겨웠다.

그 젊은이는 매번 몇 시간 동안 비닐이 쌓인 쓰레기통들을 뒤져서 비닐 속에서 썩고 있는 음식물을 분리하고, 비닐 모으는 데를 따로 정해서 그곳에다 안내 라벨을 만들어 붙였다. 비닐 버리는 학생들을 찾아가서 비닐 버리는 요령을 일일이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라벨 그 학생이 만들어 붙인 라벨 ⓒ 전희식

 
그렇게 모은 비닐을 갖다주려고 슈퍼마켓이나 그 지역 행정관청에 알아봤으나 그들도 잘 몰라서 비닐 재활용 전문 회사를 찾아내서 문의하는 과정이 카톡 문자에 다 나와 있었다. 눈에 선했다.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런 공공의 일이 얼마나 소소한 잔일거리가 많은지를. 그게 다 일을 벌인 사람의 몫이 된다는 것을.

마침 글이 올라온 날이 3월 1일이어서 나는 대뜸 위 표창장을 제안했고 몇몇이 상금을 후원해 줘서 함께 전달할 수 있었다. 표창장에는 "미(개)국까지 가서 기후 위기 극복과 쓰레기 문제 해결, 육식 중단에 본을 보이고 계신 ○○님을 올해의 3·1만세 혁명 운동가로 선정하고 상장과 상금을 드립니다"라고 썼다.

매년 3·1절이 되면 판에 박힌 듯한 딱딱한 행사만 있고 감동이 없었는데 이런 놀이(!)가 재미있었다. 3·1혁명 운동을 기후 위기와 연결한 시의성도 좋았다.

이런 제안은 오래전의 내 기억과 연결된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랑 사는 나를 찾아온 친구가 "노벨 효도 상이 있어야 돼!"라며 종이에다 사인펜으로 쓱쓱 몇 자 적더니 1만 원을 봉투에 넣어 과장 섞인 어투로 효도 상이라며 내게 주었다. 자기가 제정한 상이라면서. 그 뒤로 나도 수많은 상장과 표창장을 남발(?)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지지하고 격려해 왔다. 놀이처럼, 재미 삼아서.

유학 중인 그 젊은이는 표창장과 상금을 받고 고마워했다. 집착하지 않고, 누구도 탓하지 않으며 비닐 재활용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 일을 하는 과정에 스트레스도 있지만 절충점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가끔 내게 당신이 뭔데 그런 상을 만들어 주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안 될 게 뭐냐고 되묻는다. 뭐 해 달라, 왜 없냐, 이게 뭐냐는 등의 말을 하기 전에 그 상황을 일단 수용하고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하려고 한다.

인터넷에는 멋진 표창장 이미지들이 널렸다. 몇 자 적어 넣고 인쇄를 하면 어엿한 표창장이 된다. 쉽다. 상장을 받는 데만 목을 매다가 상장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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