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슬픈 자화상

90살 넘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등록 2021.03.04 16:14수정 2021.03.0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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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10여 년을 요양병원에 계신다. 어머니가 오래 계시는 요양병원이 암 전문병원으로 바뀌기 때문에 환자들은 모두 퇴원하라는 통보가 왔다. 사실 걱정이었다. 어머니가 그래도 그 요양병원에서 제집처럼 아무 불평 없이 잘 계셨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다른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가 3일을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큰 방에 모셨는데 밤마다 어머니와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큰 방에는 우리 목사님 사진, 무디 목사님이 빵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사진과 내 외손자들 사진이 놓여 있다. 어머니가 자주 나를 부른다. 어머니가 "안나, 아빠야" 하며 나를 부를 때면 우선 가슴부터 철렁한다. 또 무슨 헛 말씀을 늘어놓으려고 나를 부르는 것일까. 


어머니의 말은, 저 사진 속의 노인들이 나와서 내 외손자들의 머리를 누르고 못살게 군다는 것이다. 빨지 저 사진들을 치워 버리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헛것이 보이는 것이니 괘념치 말라고 몇 번을 타일러도 아무 소용없다. 별 수 없이 아무 죄 없는 두 사진 판화를 밖으로 치웠다. 6~7여 년을 한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있었던 사진판들이다.

어머니는 3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명절에 집으로 모셔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더니 우리 아파트 앞 공터 얘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 공터에서 텐트를 치고 사람들이 춤을 추며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라는 것이다. 그 공터에 텐트를 치고 누가 자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래도 그때는 어머니가 헛것이 보인다는 것을 모를 때여서 혹시나 앞에 있는 교회에서 청년부 극기 훈련을 하느라고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교회에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사진을 치우고 조금 있으니 어머니가 또 "안나, 아빠야" 하며 나를 부른다. 가서 보니 뿔 달린 도깨비 같은 것이 보이니 빨리 칼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가리키는 그곳은 아내의 화장대다. 화장품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이러다가는 저녁 내내 어머니와 씨름을 할 것 같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뭔가가 있다는 곳에 '이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죽어 봐라' 하며 막대기를 휘둘렀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저녁 내내 시달릴 것 같다. 어머니에게 보이는 헛것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본인이 알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뭐가 보인다면 어디에 그 도깨비 같은 것이 있냐며 가리키는 곳에 가서 물건을 들어 확인해 보여주었다. 조그만 색감이 있는 화장품들도 크게 확대되어 이상한 괴물로 보이는 모양이다.

방의 조금 어두운 구석에 또 뭐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을 켜서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어머니도 나중에는 자신이 헛것이 보임을 인정한다. "인자, 큰일 났어야. 전에는 안 그랬는데 병원에서 나가라고 한 뒤부터 충격을 먹어 뭔가 보인다. 이런 말 절대 새로 갈 요양병원에는 하지 말아라, 잉. 치매환자라면 절대 안 받아 줘야" 하신다. 


저녁 내내 어머니가 보인다는 헛것을 일일이 확인을 해 주고서야 어머니가 본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헛것이 보이는 것이니 안심하고 주무시라며 보지 말라고 눈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고 우리가 잘 방에 오자 아내가 한 마디를 한다.

"그런 코미디가 없소. 모자가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인다고 '그놈이 어딨소' 하며 막대를 휘두르고 사진을 치우고 화장품을 모두 밖으로 내니 말이오."
  
어머니가 젊어서는 얼마나 총명한 분이었는가. 그리고 헛소리 한 번 안 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90이 넘고 보니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나이도 이제 70이 다 되었지만 우리도 어머니의 나이가 된다면 어머니처럼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4형제를 낳아 키우느라고 고생만 하신 어머니,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아픔의 시대를 거쳐 살아온 어머니.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모두 힘든 시대를 살아온 장하신 분들이다. 어머니에게 보인다는 헛것과의 싸움은 우리 슬픈 노년의 자화상이다.
#노년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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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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