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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윤석열이 원하는 것... 놀라운 장면들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정치인' 윤석열 어디로 가나

등록 2021.03.05 19:02수정 2021.03.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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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3일 오후 대구고검·지검을 찾은 윤석열 총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 조정훈

 
4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몇 가지 장면은 놀라웠다.

먼저 그의 정치적 제스처들. 역대 검찰총장 중 언론 카메라 앞에서 사임의 변을 읊은 총장은 없었다.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뒤로 한 채 대검찰청으로 들어서는 윤 총장의 제스처는 정치인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전날(3일) '하필' 대구 고검‧지검을 방문했을 당시 의전 차량 앞으로 마중 나온 권영진 대구시장의 행태는 매우 상징적이었다. 권 시장이 개인 번호라며 명함을 건네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둘째, 정치의 언어. 임기 내내 국민을 소환했던 윤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도 어김없이 국민을 호명했다. "(검사) 여러분들과 함께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임기 내내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매진했다던 윤석열 검찰의 모습은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석열 검찰은 '선택적 기소'에 매진했고, 도드라진 것은 국민의 공분을 산 김학의 사건부터 96만 2천 원 불기소 등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이 계속 자기 정치를 위해 국민을 호명하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 아닐까.

셋째, 청와대의 사퇴 의사 수용 속도. 4일 오후 2시 윤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청와대가 사퇴 의사 수용 소식을 알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가량이었다. 그러자 청와대가 며칠 전부터 언론 인터뷰 등으로 개인 행보를 이어갔던 윤 총장의 사표 수리를 준비해왔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같은 날 오후 4시 청와대는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을 신임 민정수석에 임명했다. 이 역시 청와대가 신현수 전임 수석의 사퇴 파동 직후 신임 민정수석의 인선 과정을 이미 마무리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청와대가 신임 민정수석 임명에 이어 빠르게 신임 검찰총장 임명 절차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과의 빠른 결별 수순은 이렇게나 신속했다.


넷째, 보수‧경제지들의 논조. 윤 총장은 한 일간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에 질세라 어느 보수언론은 윤 총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또 다른 보수언론은 윤 총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단독 인터뷰'라고 내보냈다.

사퇴 선언조차도 다수 언론은 '마지막 퇴근'이라 추켜세웠다. 보도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은 실시간 생중계로 대검찰청을 연결했다. 이례적인 장면의 연속이었고, 마치 유력 대권주자의 대선 출마 선언을 방불케 하는 언론보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윤 총장은 국가공무원 신분이었고, 지금껏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윤 총장의 사퇴 선언은, 임기 내내 '검찰정치'를 해왔던 국가공무원이 직을 던지고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요란하고도 이례적인 정치행보일 뿐이라 할 수 있다. 윤 총장이 취임 직후 조국 일가족 수사를 벌인 이래 그와 한 배를 탄 보수‧경제지들이 공동운명체임을 자랑하듯 윤석열 띄우기에 '올인'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선주자 윤석열'도 없었을 것이다.

왜 하필 지금인가

결국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염두에 둔 사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지난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대표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 즉 '판검사 즉시 출마 금지법'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국민 운운하며 직을 던진 명분 자체가 옹색해지는 것은 시점만이 아니었다. 윤 총장이 극구 반대하고 나선 중대범죄수사청은 이제 논의를 시작했을 뿐이다. 더욱이 2년 전 인사청문회 당시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수사청 신설에 대해 묻는 금태섭 의원의 질문에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찬성하기도 했다.

결국 윤 총장은 자신의 정치적 계산대로 움직인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보수‧경제지들이 띄우기에 나섰던 윤 총장의 쓰임도 더욱 확실해질 전망이다. 흥행성이 약한 보수야권 주자들을 대신해 현 정권을 흔드는 대항마로서의 역할 말이다. 그간 조국‧추미애‧박범계로 이어지는 법무부 장관 라인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정권 수사에 '올인'하는 것이야말로 윤 총장의 쓰임새가 아니었던가.

국정감사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윤 총장은 "수사를 지켜봐 달라"라고 강조해왔다. 맞다. 검찰은 기소로 말하는 법이다. 윤 총장 본인 또한 "수사로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는 언론 인터뷰로 스타가 됐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관 자격을 물었던 사모펀드 수사는 1심 재판부가 '"권력형 범죄는 없었다"라고 결론 냈다. 대신 그야말로 학생의 일기장까지 탈탈 털었던 표창장 위조 사건만 남았다. 수십 건의 압수수색과 강제수사, 별의 별건 수사로 얻어낸 검찰의 결론을 받아들인 1심 재판부가 4년형이란 중형을 선고하지 않았다면 작금의 '대권주자 윤석열'이 가능했을까.

보수‧경제지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여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결과는 어땠나. 이렇다 할 대통령 측근 부패나 권력형 범죄를 결과로 내보인 것이 있었나. 역대 어느 검찰총장과 비교해도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휘둘렀던 윤 총장이 내놓은 결과치고는 실로 초라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시작부터 '정치검찰'의 '검찰정치'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윤 총장이 보수야권 주자로 떠오른 것도, 고작 임기 반년이 지난 후인 2020년 초 여론조사에 포함되면서부터였다. 유력 대권주자로 점쳐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족을 파렴치한 범죄 집단으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청와대 수사를 지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된 검언유착 의혹 사건까지, 보수‧경제지의 윤석열 띄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수사, 불가능한 행보가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 보수‧경제지들은 '장사'를 했다. 끊임없이 추미애 vs. 윤석열 프레임 등 갈등을 부추기며 현 정권과 검찰의 대립각을 부각했다. 덕분에 윤 총장은 한때 여론조사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반면 박범계 장관 임명 이후 그 대립이 현저히 줄어들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곧바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그 결과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윤 총장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소환하며 직을 내던졌다.

검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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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초점은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의 다음 행보에 맞춰진다. 윤 총장 징계안에 대한 마무리가 오는 5월에 결정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여야 정치인들도, 언론들도 모두 정치인 윤석열을 기정사실화하는 중이다. 어떤 수가 가능할까.

먼저, 국민의힘과의 결합. '반문재인'을 기치로 내건 국민의힘은 일단 윤 총장의 사퇴를 쌍수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대권주자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지금, 윤 총장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외면하기로 작정한 걸까. 사면론을 환영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전직 대통령 둘을 줄줄이 감옥에 보내는데 앞장선 검사 윤석열을 과연 어디까지 지지할지 의문이다.

둘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안 대표 역시 4일 오후 윤 총장 사임을 응원하는 뜻을 표명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일찌감치 국민의힘과의 힘겨루기에 나선 안철수 대표의 경우, 윤 총장과의 물리적 결합으로 자기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눈치다. 이른바 '안동설'(우주가 안철수를 중심으로 돈다)에 입각한 안 대표다운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충청권 대망론을 기반으로 한 독자 신당 창당이다. 일단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윤 총장은 임기 내내 정치권 교감설이 있었다. 과거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당시 윤 총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사장과의 회동에 이목이 쏠린 것도, 이후 홍 회장이 이사로 이름을 올린 '여시재' 연구재단이 주목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윤 총장이 '검찰당'을 창립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환경이다.

윤 총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윤 총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는 사실이다. 장모나 부인 관련 수사나 징계안은 기본이다. 또 임은정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해 버린 검찰의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모해위증 교사 의혹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피해갈 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 윤석열로 거듭나는 순간 국민의 검증이 시작될 것이란 사실이 중요하다. 초짜 정치인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우호적인 언론 환경이 언제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지 모를 일이다. 말 한 마디 실수도 일파만파 커지는 혹독한 검증 국면을 '정치인 윤석열'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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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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