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경기도에서 10만 원 받은 날, 자취생이 벌인 놀라운 일

난생처음 동네 정육점에서 장 보고, 무서워서 못 탔던 자전거 도전하고... 재난기본소득의 효과

등록 2021.03.05 17:39수정 2021.03.05 17:53
4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전거 ⓒ 정누리


4~5살쯤 때만 해도 나는 자전거와 친했다. 당시 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아 시간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오후 2시가 되면 경비병 순찰 돌 듯 세발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뱅뱅 돌았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까지 하고 다녔다. 나는 어느새 동네 유명인사로 자리잡았다.

그날도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문 앞에 세워진 아빠의 커다란 검은색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나보다 훨씬 큰 두발자전거가 갑자기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자전거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4살짜리 아이가 그 높은 안장에 어찌 탈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나는 중심을 잃고 꽝! 고꾸라졌고 그때부터 자전거가 공포스러웠다. 거침없이 돌아가는 공포의 페달, 잘못 맞으면 이마가 깨질 것 같은 탑튜브. 그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약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왜 다 커서 자전거를 배우려 하는 것일까? 사건은 한 달 전 제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10만 원이 들어온 날 시작되었다.

동네정육점에서 두 번 놀랐던 사연 
 

정육점에서 산 다짐육으로 만든 순두부찌개 ⓒ 정누리

 
그 전까지 나는 주로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했다. 그래서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코로나 이후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페이로 받게 되면서 지역을 조금씩 관찰하게 되었다. 예전이라면 그 돈으로 외식이나 쇼핑을 했겠지만, 혼자 사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식재료 구입이었다.

처음으로 동네 정육점에 들렀다. 가게 간판에 '어느 멋진 날'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우직한 느낌의 정육점과 다른 상당히 감성적인 이름이었다. 머뭇거리며 들어가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순두부찌개에 들어갈 다짐육이 조금 필요하다 하니, 잠시 기다리라며 손질을 해 주신다.

나는 가격을 듣고 두 번 놀랐다. 처음엔 '만 원'이라고 잘못 듣고 비싸서 놀랐고, 다시 제대로 가격을 알아듣고는 너무 싸서 깜짝 놀랐다. 싼 고기를 너무 조금 샀나. 서비스로 돼지 비계와 소스도 조금 주셨다. 커피 한 잔보다도 싼 가격의 고기를 구입하러 온 손님에게도 이리 정성스레 대해주시다니. 재난지원금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가게를 새로 알게 된, 어느 멋진 날이었다.

며칠 뒤 또 그 정육점에 가고 싶은데, 거리가 참 애매했다. 걸어가기엔 멀고 자동차를 타고 가기엔 좁은 골목길이라 번거로웠다. 갑자기 창문 너머로 빨간 자전거 도로가 눈에 띄었다. 그 순간 시원하게 뚫려 있는 길 위로 자전거를 타고 정육점을 향해 달리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거다! 발로도 차로도 해결할 수 없는 거리는 자전거가 답이다!

그날로 나는 자전거를 구입했다. 바구니는 필수다. 잔뜩 장 본 것을 담아야 하니까. 어찌 자전거 조립까진 끝냈지만, 갑자기 어린 날의 공포가 한번에 떨쳐지지는 않는다. 할 수 없이 동네 자전거 가게에 자전거를 끌고 가 먼저 안전한지 점검을 부탁드렸다.

과묵한 아저씨와 예리한 눈을 가진 아주머니가 이리저리 뜯고 조립하고 만져보며 자전거를 봐주신다. 환자의 어긋난 관절을 맞춰주는 의사처럼 보였다. 점검이 끝난 자전거를 끌고 나가며 꾸벅 인사하자, 다소 무뚝뚝해 보였던 사장님 두 분이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타보고, 익숙해지면 큰 걸로 바꿔봐요." 재난지원금 덕에 나는 난생 처음 동네 자전거 가게에 들러 보았다.

재난지원금 덕분에 알게 된, 시원한 바람의 촉감 
 

자전거를 타다 생긴 피멍 ⓒ 정누리


주말만 되면 자전거를 끌고 동네 공터에 나갔다. 역시나 쉽지 않다. 돌아가는 페달에 정강이 안쪽을 세게 박아 시뻘건 피멍이 들고, 넘어지면서 탑튜브에 박아 정강이 바깥쪽에도 혹이 났다. 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심을 잡고 바퀴를 굴리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은 조깅할 때도, 드라이브를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바람이다. 이렇게 직진을 하다 보면 커브도 가능해질 것이고, 돌부리도 능숙하게 비껴갈 것이다. 재난지원기본소득은 현재의 재난뿐 아니라 어릴 적 내 마음 속에 있던 장애물까지 뽑아주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야겠다. 자전거 장바구니에 그득히 고기와 야채를 담는 그 날까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AD

AD

인기기사

  1. 1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아수라장 된 청문회장
  2. 2 '코인 대박' 꿈꾸며 지른 사람들, 이렇게 당했다
  3. 3 "당신은 정말..." 한국어 피켓 든 미얀마인들
  4. 4 침몰한 배에서 살아온 남편... 지옥문이 열렸다
  5. 5 "그래도 남편은 살아왔잖냐"... 비밀 단톡방의 슬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