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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은 감옥이 아니다

[소년원 이야기 ⑮] 삶과 희망을 체험하는 학교가 되어야

등록 2021.03.10 11:10수정 2021.03.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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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마련한 장작으로 끓이는 가마솥 라면 ⓒ 최원훈


나는 지난 1월 정기인사 때 대전소년원에서 인천보호관찰소로 발령이 났다. 통상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은 3년 주기로 이동하는데, 나는 2년 6개월 만에 비연고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원래는 6개월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지금까지 해왔던 군고구마 봉사활동 등의 체험활동이 소년원 학생의 재사회화를 위한 교육과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나름 노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0년 12월 말,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21년 상반기 인사에서 타 기관으로 문책성 인사조치되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생들 간식 제공을 위해 봉사활동 학생 2명과 일과를 시작했다.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소년 한 명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소년원 정문이 활짝 열려있었던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소년을 뒤쫓아 달렸다. 소년은 정문을 통과하여 내리막길을 지나 아파트 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합류한 직원들과 함께 아파트 정문 앞에서 소년을 붙잡았다. 소년의 이탈 미수는 10분 만에 끝났다. 충동조절장애가 있던 소년은 후에 당시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성실하게 봉사활동에 임하던 소년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탈한 소년을 뒤쫓아 뛰어가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저 녀석 못 잡으면 큰일인데. 잡을 때까지 전 직원이 고생할 텐데.'


소년원은 감옥이 아니다

한숨 돌리고 나니 문득 1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방의 한 소년원에서 근무할 때 같은 권역의 다른 소년원에서 보호소년 한 명이 이탈했다. 해당 소년원은 당직체제로 전환하고 생활관 당직 근무자를 제외한 전 직원이 소년을 검거하기 위해 며칠 동안 밤낮없이 수사를 나갔다.

소년원 학교에서 학생의 이탈은 소년원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학과장에서 이루어지는 교과교육, 인성교육, 직업훈련 교육을 전면 중단하고 학생들을 생활관 호실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1명의 이탈 학생을 잡기 위해 100명, 200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활관에 갇혀 지냈다.

내가 근무하던 소년원과 인근 소년원의 직원들도 이탈 소년 검거에 투입되었다. 나는 소년이 지나갈 수도 있을 어느 한적한 길목에서 직원들과 봉고차 안에서 매복을 했었다. 그때 한 경찰관이 다가와서 했던 말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아니, 애가 이탈했을 때 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면 우리가 길목 다 차단하고 즉시 잡았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당시나 지금이나 소년원생이 이탈하면 72시간 안에 소년원 직원들이 붙잡아서 복원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말로는 학교라고 하면서 이탈한 소년 한 명을 잡기 위해 전 직원이 그 일에만 동원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되는 것이다.

일례로 같은 수용시설인 6호(아동복지시설 6개월 처분) 시설의 경우, 보호소년이 이탈해도 직원들이 잡으러 가진 않는다. 평소대로 교육활동에 전념한다. 결국 이탈 소년은 여자친구의 집이나 PC방에서 경찰에게 붙잡힌다. 사실 교도소에서 수형자가 탈옥해도 교정 공무원인 교도관이 잡으러 가지 않는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다. 신창원을 추적하고 검거한 것은 경찰이었다.

삶과 희망을 체험하는 학교
 

생활관 호실에서 학생들이 키우던 식물 소년원은 삶과 희망을 체험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 최원훈

 
어쨌든 내가 시작한 봉사활동이고(관련 기사 : 대전소년원 숲에 있는 군고구마통의 정체 http://omn.kr/1lyd7), 내가 소년들을 인솔해서 이동하던 중에 발생한 수용사고이니 책임을 면할 순 없었다. 문제는 내가 대전소년원을 떠나고 난 뒤에 일어났다.

기관에서 학생들 간식 제공을 위한 봉사활동과 치유의 숲 체험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감호 상의 문제가 있으니 간식은 컵라면으로 대신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봉사활동을 통한 간식 제공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인권적 처우와 교육활동보다는 이탈 등 수용사고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판단된다.)

내가 학생들과 함께 군고구마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가마솥에 라면을 끓여서 전교생, 교사들과 함께 나누는 활동을 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소년원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공감능력과 배려심이다. 상당수가 자신의 범죄(약 70%가 폭력·재산범죄이다)로 인한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지 않은 소년들이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동료 선생님들이 사비로 사주신 고구마와 라면으로 간식을 만든다. 치유의 숲에서 학생들과 함께 나무를 구하고 장작을 패서 땔감을 마련한다. 땔감을 수레에 가득 실어 옮긴다. 추위를 참고 인내하며 군고구마통에 장작불을 피워서 2~3시간 동안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나눠먹을 군고구마를 굽는다.

오랜 시간 장작불을 피우고 불을 키워서 가마솥에 라면 60개를 끓인다. 체육활동이 끝나고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운동장에 모여앉아 한 가족이 되어 가마솥에 끓인 라면을 나눠먹는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보여줄 뿐이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선생님! 정말 보람 있어요. 살면서 제가 노력해서 이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건 처음이에요."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3분의 시간은 소년들이 사회에서 저질렀던 범죄의 시간과 차이가 없다. 돈이 필요하면 인형뽑기 방 지폐 교환기를 부숴서 털었던 소년들이다. 가게 앞에 세워둔 키가 꽂힌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간 소년들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기다림과 외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소년원은 수용관리 위주의 감옥이 되어야 할까? 삶과 희망을 체험하는 학교가 되어야 할까? 소년원의 혁신은 적폐를 극복하고 청산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소년원 #소년법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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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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