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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한 손엔 총 다른 한 손엔 돈을 쥐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경제정의

등록 2021.03.08 14:23수정 2021.03.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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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세션1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버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각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암살된 뒤 영국에서 살다가 미얀마로 돌아간 그가 민주화운동에 나선 50만 군중 앞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연설한 때가 서울 올림픽 개막 3주 전인 1988년 8월 26일이었다.

그 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을 당한 일, 그의 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 승리하고도 집권하지 못한 일, 미국 등 서방세계가 미얀마 정부를 제재한 일, 그가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고도 시상식에 가지 못한 일.

10년을 흘러 2011년에 군부 출신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테인 세인(Thein Sein) 대통령이 취임해 민주화를 제한적으로 추진한 일, 2015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거두고 2016년 3월부터 신정부를 이끈 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대학살을 당하는 가운데 아웅산 수치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자 2017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그에 대한 시상이 취소된 일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NLD 정부가 무너졌다.

미얀마에서 지체한 민주화

1988년 8월 8일 일어났다고 해서 '8888 항쟁'으로도 불리는 그해 민주화운동은 1986년 필리핀 피플파워, 1987년 한국 6월항쟁의 분위기를 잇는 동시에 1989년 중국 톈안먼(천안문) 사건에도 영향을 준 일이었다고 평가된다.

2011년에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발생한 재스민혁명(아랍의 봄)은 단기간에 신속하게 이 지역을 휩쓸었다. 그해 1월 5일(현지 시각 4일) 튀니지에서 발생한 혁명은 9일 뒤에 벤 알리 정권을 붕괴시키고 2월 11일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 성명으로 연결되고 2월 15일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 3월에는 시리아 내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아랍권과 달리 동북아·동남아는 바다와 산악들로 막혀 있다. 이 때문에 필리핀 국민들이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이 동북아·동남아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 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고 소셜미디어도 없었던 1980년대에는 값비싼 국제전화나 우표 붙은 편지가 아니고서는 각국 민중의 소통과 연대가 힘들었기 때문에 민주화의 국제적 전파가 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민주화운동은 동유럽 민주화보다 약간 일찍 시작돼 세계 민중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다.

그런 정치적 격동의 결과로 한국과 필리핀에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데 비해, 미얀마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지체됐다. 진전은 분명히 있었지만, 군부의 파워가 여전히 압도적이다. 미얀마 민중의 역량도 강력하지만 군부의 파워 역시 만만치 않은 점이 미얀마 민주화를 지체시키고 있다.

왜? 문제는 경제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보면 미얀마 민중이 군부를 서서히 이기고 있는 게 확실하지만, 그 속도가 더디고 그로 인해 인명피해가 계속된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게 바로 경제민주화의 문제다.

한국 6월항쟁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민중의 경제력 역시 시민혁명 성공의 열쇠다. 6월항쟁에서 앞장선 세력은 재야 운동권과 학생들이지만, 은행원들로 대표되는 넥타이 부대 또는 중산층의 가세 역시 항쟁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 국가권력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중산층 동향에 특히 주목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유사한 사례는 세계사와 한국사에도 매우 많다. 유럽에서 왕정체제가 몰락한 것이 부르주아의 경제력에 힘입었다는 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것이 정도전·조준 등으로 대표되는 중상류층 신진사대부들의 궐기에 힘입었다는 점, 16세기 조선에서 기득권층인 훈구파가 몰락한 것이 중소 지주층인 사림파의 투쟁에 힘입었다는 점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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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시위와 경찰 진압. ⓒ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단체

  
미얀마 민주화가 상대적으로 지체되는 원인 중 하나도 경제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블록의 경제력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 기고문을 기자가 편집하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호주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의 미국판인 <더 컨버세이션 US>의 2월 15일자 기사에도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비즈니스에 주목하기: 미얀마 쿠데타는 부분적으로는 군부 엘리트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Taking care of business: the coup in Myanmar is partly about protecting the economic interests of the military elite)'이란 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미얀마 쿠데타의 발생 원인과 관련해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한 주의를 받지 못한 것 중 하나는 미얀마에서 부와 사업적 이익을 지키려는 군부의 욕망"이라며 "이것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라고 평가한다. 그런 뒤 미얀마 실정을 이렇게 정리한다.
 
"수십 년간 군대는 국가 관료기구를 통제하고 주요 부문에서 거의 독점적 지위를 확립함으로써 부를 축적해왔다."

"군부 지도자들과 군부 지도자의 동료들이 면허, 토지, 경제적 권리를 확보했다."
 
테인 세인 정부의 경제개혁도 이 구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민간 부문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몫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대세를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민간 부문과 국제 투자자들의 보다 강화된 역할을 포함하는 중요한 개혁들이 지난 10년간 미얀마에서 있었지만, 군부는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2016년부터 국정을 이끈 아웅산 수치의 NLD 정부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 기사는 "2018년 11월 민주주의민족동맹 대변인은 경제의 핵심 분야에 대한 군부의 지배를 지적하고, 역사적으로 퇴역 장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정부 관료기구가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라고 말했다"고 설명한다.

미얀마 군부가 쥐고 있는 건 총뿐만 아니다 

'총'뿐 아니라 '돈'까지 쥐고 있다 보니, 미얀마 군부는 정치권력의 이동뿐 아니라 돈의 흐름에 대해서도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경제적 철옹성을 위협할 만한 움직임에 대한 이들의 민감한 반응은 테인 세인 정부 하에서도 나타났다.

2014년 포스코경영연구소가 발행한 <친디아 플러스(Chindia Plus)> 제98호에 실린 정재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의 '미얀마 개혁 피로증의 원인'은 "미얀마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극소수 군부 및 국영기업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영세한 가족기업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 뒤 미얀마의 민간 대기업은 한국의 중소기업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군부기업과 국영기업이 국가 경제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의 영향을 받는 기업들한테는 2016년 이후 상황뿐 아니라 2011년 이후 상황도 심각한 도전으로 비친다. 위 기고문은 "테인 세인 정부의 개혁 추진과 외국 기업과의 무한경쟁 체제가 도입됨에 따라 많은 국영기업이 곤경에 빠지고 있다"라고 진단하면서 군부기업들에겐 눈앞의 변화가 "자신들을 무한경쟁체제로 인도하는 사자"로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군부 중심의 지배블록이 경제력을 독과점하고 다수 국민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상태가 미얀마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구도는 민주화운동이 지속화되는 데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지배블록에 대한 민중의 의존도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민주화 흐름에 대해 군부 지배층이 더욱 불안감을 갖도록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화는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뿐 아니라 '재산 목록'의 감소도 의미한다. 그래서 여건만 허락된다면 언제라도 민간 정부를 전복하도록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간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 정부의 개혁 의제는, 비록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적이기는 하지만, 이 수익성 좋은 정실 자본주의 체제를 약화시키려고 위협했다"고 <더 컨버세이션 US>는 진단한다. NLD의 개혁이 군부 중심의 정실 자본주의에 위협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군부의 최근 행보를 이해하는 실마리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크게 보면 민중이 군부를 이기는 방향으로 미얀마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 노동운동 및 경제정의 실현에 더 많은 역량이 투입된다면 그 역사가 한층 빨리 전개되리라 전망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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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2월 18일 모습. 현지 사진기자 모임인 'MPA(Myanmar Pressphoto Agency)'가 찍어 보내온 사진이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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