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추천결과

논쟁2 반대

"믿음으로 거래되는 비트코인, 최악의 경우 가치 0"

[논쟁 /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인가 - 반대]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1.03.15 07:15최종 업데이트 21.03.15 07:22
  • 본문듣기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트코인에는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내재 가치 없이 '믿음'에 기반한 비트코인 거래는 투기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 권우성


과거 돈으로 쓰였던 물건은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먼저 그 자체로 '쓸모'가 있었다. 조개나 동물 가죽, 금이나 은 등이다. '종이'처럼 내재 가치가 없는 경우라면 국가가 정해둔 법률이 가치를 뒷받침했다.

비트코인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실물이 없으니 그 자체로 쓸모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처음부터 '탈중앙'을 표방하며 등장한 처지라 국가의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통 경제학자'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트코인에는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5일 오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금 개인 투자자들은 언젠가 비트코인을 비싼 값에 팔아도 누군가 사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내재 가치 없이 '믿음'에 기반한 비트코인 거래는 투기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십여년 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김 교수는 비트코인의 가치 증식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암호화폐가 금처럼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니,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암호화폐가 교환의 매개로 쓰인다면 가치가 생길 거라고 본다"라며 "그래서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이 화폐를 대신할 날을 기대하며 이더리움 등 각종 기술력 높은 암호화폐를 제작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민간에서 만든 암호화폐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가능성은 적다"라며 "그럴려면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산 거래가 디지털로만 기록될 경우 신뢰성 문제에도 부딪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아무도 민간 암호화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 그 가치가 0원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요즘엔 암호화폐나 기술주를 두고 '프라이스 드림 래시오(Price Dream Ratio)', 희망 대비 주가 정도를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며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모든 재화의 가치는 내재가치에서 나온다고 배워온 경제학자 입장에선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비트코인에 쏟아지는 돈, 투기인가 투자인가
 

"비트코인 가격은 '앞으로 오를 것'이라거나 '내가 팔아도 누군가 사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투기와 투자를 내재가치의 여부로 구분한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권우성

 
-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투기 심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나?

"그렇게 본다. 비트코인에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앞으로 오를 것'이라거나 '내가 팔아도 누군가 사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투기와 투자를 내재가치의 여부로 구분한다. 또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폭이 크다. 지난 4일(현지시간)에도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경제 재개방 속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하자 다우와 나스닥, 비트코인이 각각 1:2:5의 비율로 떨어졌다."

- 투기 심리로만 움직인다고 보기엔 비트코인의 가치가 너무 높다. 1코인당 가격이 5800만원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에 '아날로그'식으로 평가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내재가치가 있어야 재화라고 인정해줬다. 재화의 가치는 세 가지로 결정됐다. 금·은·동처럼 그 자체로 쓸모 있는 경우다. 다음으로 국가가 보장해줄 때, 달러 같은 종이에도 가치가 생겼다. 두 요소가 모여 일반인들까지 화폐를 가치 있다고 여기면 값어치는 더 커졌다. 아날로그의 시선에서 보면, 비트코인의 가치는 사람들의 '믿음' 하나로 형성되고 있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 옹호론자다. 반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비트코인을 '투기 자산'이라거나 '사기'라며 평가 절하한다. 세계 저명 인사들의 입장이 크게 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재가치 없는 재화가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일론 머스크는 디지털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디지털이 인간의 생활을 바꿔놓을 수 있는 만큼 그 자체만으로 내재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또 지금까지는 국가가 화폐 가치를 보장해줬는데 이젠 민간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 0 아니면 100"
 

"중앙 권력 없이 시민들이 만들어도 투명성만 있다면 돈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믿는 사람들이 현재 비트코인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성격과 유사하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권우성

 
- 암호화폐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처럼 개발되지 않았다며 '미래 화폐가 될지 여부'를 가리는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금이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금은 최소한의 쓸모가 있다. 반지를 만들거나 녹여서 썩은 치아를 메울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재화의 가치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사과를 샀다가 집에 가서 깎아보니 썩은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선 사과를 들고 있다는 데서 불확실성은 줄어든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주식을 가진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투자 대상'이라는 실물이 있다. 배당금까지 준다. 만약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주식을 아무도 안 산다면 가치가 0이 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만들어둔 전자 제품이나 기술력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내재가치를 생각해 금을 사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물론이다. 누가 금을 사면서 '요즘 치과에서 금 많이 쓰냐'고 묻겠나. 하지만 금의 가치에는 쓸모의 가치도 포함돼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사람들의 믿음과 쓸모의 가치 중 어느 쪽 비중이 더 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쓸모가 있기 때문에 가치가 0이 되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있다. 게다가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금을 관리하고 있으니 일반인들도 신뢰를 갖고 있는 것이다."

- 최근 캐나다 온타리오 증권위원회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점차 각국도 비트코인을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 뿐, 그 자체가 금이라거나 화폐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건 결국 개개인의 몫이고 암호화폐로 벌어들인 돈도 자산으로 인정해줄 수는 있다는 뜻일 뿐이다."

- 거꾸로 국가가 허가해야만 화폐로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꼭 국가가 돈을 관리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과거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왕이, 지금은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중앙 권력 없이 시민들이 만들어도 투명성만 있다면 돈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믿는 사람들이 현재 비트코인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성격과 유사하다."

-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국가 권력에 대한 반감과 통화량의 확장이 맞물렸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치가 지금처럼 상승할 수 있었다고 본다. 비트코인은 금융위기를 딛고 탄생했다. 이른바 빅브라더(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모든 인간은 빅브라더를 통해 안정감과 불신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 그 반감이 심해져 비트코인이라는 결과물이 나타났다.

코로나19도 그 반감을 만드는 데 한 몫했다. 국내에 마스크 대란이 발생했던 때를 기억하나? 마스크 몇 장 사기 위해 국민들이 줄을 30분씩 섰다. 국민들은 국가 통제에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였다면 시위가 빗발쳤을 것이다. 해외에선 정부가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데 대한 반감도 심하다."

- 디지털 금이 아니라면, 암호화폐의 목적은 무엇인가?

"암호화폐가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니,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암호화폐가 교환의 매개로 쓰인다면 가치가 생길 거라고 본다. 언젠가 모든 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대체하는 세상이 오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이 화폐를 대신할 날을 기대하며 이더리움 등 각종 기술력 높은 암호화폐를 제작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현재 비트코인의 단점을 보완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더리움은 '스마트계약'을 도입해 비트코인보다 나은 기술력을 갖고 있다. 애초에 비트코인도 신뢰성을 위해 사용량을 2100만 코인으로 제한했다. '그 이상 공급될 리 없다'는 투자자 사이 신뢰를 기술적으로 만들어둔 것이다. 물론 공급량이 제한돼 있다고 가치가 생기는 건 아니다. 과거 물건이고 새로 만들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도 어떤 건 골동품, 또 어떤 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결국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얼마 만큼 부여할 것인지의 문제다."
 

"비트코인의 미래는 그야말로 '0 아니면 100'이다. 0원이 되거나,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가 되거나 말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권우성

 
-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가 되는 날이 올까?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되려면 비트코인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령별로 돈 쓰는 패턴이 다르다. 70·80대는 은행을 다닐 때 아직 통장을 들고 다닌다. 모든 거래를 디지털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신뢰성 문제에 부딪칠 수도 있다. 디지털 금융 거래가 이뤄지는 지금까지도 모든 원장은 종이로 뽑아 보관한다. 컴퓨터가 다운돼 어떤 거래 기록도 확인할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서다. 게다가 전 세계 정부도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해야 한다."

- 현금에 대한 불신도 있다

"물론 나도 민간 암호화폐가 세계 통용 화폐가 될 가능성이 '제로'라고 보진 않는다. 위조 지폐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비트코인은 익명성이 적다. 만약 화폐 역할을 비트코인이 맡게 된다면 전 세계 GDP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게 될 수도 있다."

- 비트코인 가치가 0원이 될 수도 있나?

"그럴 수도 있다. 비트코인을 가진 이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내재가치를 갖기 위해선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에 값어치가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비트코인의 미래는 그야말로 '0 아니면 100'이다. 0원이 되거나,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가 되거나 말이다."

비트코인은 CBDC를 이길 수 있을까

-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인가?

"간편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암호화폐의 기술적인 장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또 국가 보증으로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개발한 CBDC마저 널리 통용될지는 의문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누가 누구에게 돈을 보냈는지 쉽게 드러날 텐데 개인들이 그런 투명성을 과연 좋아할지 모르겠다."

- CBDC가 개발된다면 민간 암호화폐들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지금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분산원장 기술력을 보고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면 국가가 개발한 CBDC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반감으로 투자하고 있다면 민간 암호화폐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트코인도 CBDC와 공존할 것이다. 그건 CBDC가 시장에 나와봐야 알 수 있다. 민간 암호화폐의 가치가 결정되기까지 20년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

- 여전히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투자를 고민한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가순이익비율(PER, Price Earning Ratio)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그런데 요즘엔 암호화폐나 기술주를 두고 '프라이스 드림 래시오(Price Dream Ratio)', 희망 대비 주가 정도를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물론 꿈이 현실이 된 경우도 있다. 테슬라가 대표적인 예다. 모든 재화의 가치는 내재가치에서 온다고 배워온 경제학자 입장에선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에 하나 비트코인의 내재가치가 드림(Dream)이 된다면 기존 경제학 이론을 다 바꿔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