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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팝송에 조명까지... '알테크' 위한 처절한 몸부림

[파테크 열풍] 닭 30마리로 시골 '알부자' 라이프 꿈꿨는데... 뜻밖의 복병을 마주하다

등록 2021.03.15 08:16수정 2021.03.1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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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솟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요리할 때 꼭 필요하긴 한데, 장바구니에 대파 하나 집어넣는 게 그렇게 망설여집니다. 어디 야채뿐일까요.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으로 달걀값도 들썩입니다. 이런 상황 탓에, 직접 야채 등을 키우며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명 '파테크'(파+재테크)족이 등장한 겁니다. 왕초보부터 베테랑까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봅니다.  [기자말]

닭장 주변의 잡초를 순삭하는 이 많던 닭들은? 이 많던 닭들은 얼마 후 한 두 마리씩 사라지게 된다. ⓒ 오창경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 지, 아니 대치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불을 환하게 켜주기도 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틀어보았지만, 녀석의 포악한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침입할 만한 틈새를 메우고 울타리도 보수를 했지만, 녀석은 우리를 조롱하듯이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와 기어이 사냥을 해갔다.

매일 아침 '꼬끼오' 하는 리얼 모닝벨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서 유정란을 꺼내오던 우리의 짠내 나는 시골라이프에 금이 간 지 벌써 몇 달째이다. 30여 마리 정도 키우던 닭들이 이제 겨우 7마리만 남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닭의 사체를 발견하게 된 어느 날부터 아침에 닭장에 가는 일이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다. 내일은 몇 마리 아래로 떨어질지 생각하기도 싫은 날들이었다.


'달걀 무한리필' 로망 실현하려 기르기 시작한 닭

시골로 주거지를 옮기게 되면서 살아생전에 저런 일도 하게 될까 하던 일을 많이도 해본 것 같았다. 도시 여자로 살았던 나의 시골라이프는 호기심 천국이었고 일상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 시골라이프도 몇 년이 지나자 시들해졌고 변화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옮겼다. 어느덧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도시로 떠났다. 우리의 식생활 패턴도 달라졌다.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반찬이 줄지 않았다. 식재료들이 남아서 버리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시골라이프 로망 1단계인 텃밭 가꾸기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가까운 이웃들이 가꾸는 텃밭에 기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씨앗을 뿌릴 때 거들어 주면서 내가 좋아하는 채소의 씨앗을 사다가 안겨주고 노동력도 제공하면서 조금씩 얻어먹거나, 함께 나눠 먹게 되었다. 서로 지인 찬스를 공유하는 슬기로운 시골라이프로 바뀌어가게 되었다.

귀농을 해서 토종닭 농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 농장에 가끔씩 놀러 가다가 방사해서 키우는 닭들이 잡초를 쪼아서 먹고 밟아서 초토화시키는 것을 보고는 마당 잡초 제거용으로 몇 마리만 키우기로 했다.


시골라이프의 팔할은 잡초와의 전쟁이다. 잡초를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덤으로 유정란과 공장식 닭고기가 아닌 자연이 키운 닭고기도 먹을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팔랑귀가 되어 닭장을 짓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지인 찬스를 이용해 닭장을 짓는 재료와 노동력까지 제공받았다. 잡초와 우리 집 주변에 사는 온갖 곤충들을 잡아먹은 자연이 키운 닭고기를 무한 리필해주는 조건으로 우린 시골라이프 로망 2단계에 진입했다.
 

우리 닭들이 낳아놓은 유정란 유정란을 부화시킬 시기가 다가왔건만..... ⓒ 오창경

 
병아리 시절을 겨우 벗어난 닭들을 병사하거나 폐사할 경우를 대비해 여유 있게 가져온 것이 30마리였다. 그렇게 한두 마리만 놓치고 잘 키운 아이들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까워서 못 잡아먹고 키운 아이들이었다. 닭들은 과연 집 주변의 잡초와 음식물 쓰레기까지 순삭하는 스킬을 보여주었다.

마침 동네 방앗간 사장이 절친이라 무한공급해주는 벼의 부산물과 쌀겨까지 먹이며 자연식으로 키운 닭이었다. 유정란은 얼마나 맛이 있는지 유명 맛집의 계란말이에도 손도 대지 않을 정도였다. 알을 낳기 시작하면 수탉의 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이웃들의 조언에 따라 수탉 두 마리로 첫 백숙을 해먹을 때의 감동적인 맛은 '표현할 방법이 없네' 였다.

이 정도면 요즘 유행한다는 파테크(대파 값이 비쌀 때 대파를 집에서 길러 먹어서 재테크의 경지에 이른다는...)에 버금가는 알테크를 우린 일찌감치 시작한 셈이었다. 절친 찬스와 짠테크까지, 우리의 알테크는 시골라이프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때마침 달걀 값이 폭등했고 미국산 달걀까지 수입하는 대란이 일어났다.

우리의 닭들은 지인들과 충분히 나눠 먹고도 남을 만큼의 유정란을 낳아주고 있었다. 도시의 대형 마트에서 일어난 달걀 파동과 우리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알테크의 성공에 자축을 했고 남아도는 유정란은 아낌없이 지인들과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쫄깃한 맛이 일품인 우리가 키운 닭고기를 맛보는 기회도 제공했다.

그 녀석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의 알테크는 순조로웠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알을 품고 병아리를 깔 준비를 해야 할 시기였다. 우리가 잡아먹은 닭의 숫자를 훨씬 능가해버린 그 녀석의 식성으로 인해 알부자를 꿈꾸었던 우리의 알테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그놈의 습격
 

마당에 나온 암탉들 낮에는 이렇게 평화롭게 산에도 올라가지만 밤에는 듣보잡 짐승에게 수난을 당한다. 녀석은 수닭보다 암탉을 선호한다 ⓒ 오창경

 
우리는 녀석이 족제비인지 삵인지 아직 존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밤마다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고 무인 카메라까지 설치하는 수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대로 소극적인 방어를 한 것이 음악을 틀어놓고 입구에 LED 전등을 밤새도록 켜놓는 일이었다.

야행성인 녀석이 전등의 효과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녀석의 존재를 잊고 방심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녀석의 방문은 다시 시작되었다. 닭장 주변에 쥐를 잡는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개도 묶어 놓으며 녀석과 우리의 치킨 게임(치킨을 지키기 위한 게임인가?) 같은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닭장 안에 음악까지 틀어놓게 되었다.

"소용 읍써? 내가 닭장에 CCTV라도 달아줘?"

방앗간 사장님은 쌀겨를 가져가는 간격이 전과 같지 않게 되자 우리의 치킨게임이 실패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랬다. 녀석은 또다시 밤새 켜놓은 7080 팝송을 들으며, LED 불빛 아래서 우아하게 닭을 잡아먹고는 사라졌다. 보름 만에 녀석은 팝송을 감상하는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인간의 집 근처에 살다 보니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금방 습득하는 것 같았다.

뒷산에 사는 스라소니는 사냥을 한 산비둘기의 깃털만 남기는 깔끔한 식성인 데 반해 이 녀석은 닭가슴살과 내장 부위만 섭취하는 편식성이었다. 녀석이 남긴 닭의 사체 처리를 우리가 고민하게 만드는 고단수의 짐승이었다. 시골라이프의 첫 알테크 성공 자축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듣보잡 공공의 적 앞에서 우린 속수무책이었다.

"그 X자식이 우리 닭을 먹게 하느니, 내가 먼저 다 잡아먹어 버리고 말겠어."

이렇게 저주와 울분을 쏟아놓다가,

"아니야, 녀석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지 뭐. 인간인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지. 녀석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도 닦은 사람 행세를 하는 이중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이름도 파악 못 한, 보지도 못한 짐승을 향해 공허한 욕을 퍼붓는 조증과 울증의 무한 반복에, 우리가 먼저 닭을 잡아먹는 소심한 복수전을 닭고기 파티로 기획하기로 했다.

굿바이 알테크

개뿔. 알부자와는 거리두기를 하며 살았던 우리가 무슨 팔자에도 없는 알테크람. 우린 알부자의 꿈을 먹어서 조져버리는(없애버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지도 올리고 밥을 사야 할 지인들에게는 전화를 돌리고 소식이 궁금한 친구들에게는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녀석들에게 닭고기 시식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우리였다. 조용한 산골에 날마다 울려 퍼지는 모닝 꼬끼오 소리에 야생의 본능이 깨어나지 않을 야수가 어디 있으랴.

녀석들이 우리 닭장에 침입한 것은 그들의 본능에 충실한 것일 뿐이었다. 낮에 주인을 믿고 야수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해 먼저 심기를 건드린 것은 우리 닭들이었다. 주인이 잘 먹여서 근육질 몸매와 마성의 꼬꼬댁 소리로 먼저 유혹한 것도 우리 닭들이었다. 우리 닭들은 그 야수가 밤의 제왕으로 뒷산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던 죄밖에 없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포기하고 체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시골라이프 알테크는 닭고기 파티를 열고 닭 굽는 냄새를 진동시켜서 오늘 밤에도 근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듣보잡 야수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끝을 내려 한다.
#시골라이프 #닭장 #유정란 #닭바베큐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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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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