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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쓸쓸히 사망한 아버지, 영상 속 마지막 말

마지막 인사조차 못한 사람들... 캐나다의 특별한 '코로나19 사망자 추모식'

등록 2021.03.14 20:20수정 2021.07.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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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의 로어타운(lower town)의 모습. ⓒ 조영준


캐나다 퀘백시는 드라마 <도깨비>(tvN) 촬영지로 유명하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샤토 프랑트낙 호텔, 이 아름답고 웅장한 퀘백의 랜드마크에는 드라마에서 배우 김고은이 편지를 부치던 우편함이 있다. 김신 역의 배우 공유가 한국과 캐나다를 넘나들 때 이용하던 '도깨비문'이 있는 프티샹플렝 거리, 루아얄 광장을 걷다 보면 '캐나다 속 작은 유럽'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들로 가득한 골목골목, 그 안에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예쁜 모형같은 가게들, 창마다 만발한 색색의 꽃들이 연출하는 또 하나의 장관. 퀘백은 드라마에서 보여진 것 이상으로 매혹적이고 설레는 도시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퀘백시를 주도로 삼고 있는 퀘백주는 온타리오 주와 더불어 캐나다에서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이 됐다. 3월 13일 현재까지 퀘백주의 코로나 확진자는 29만6000여 명, 사망자는 1만500명을 넘어섰다. 

캐나다에서는 특히 장기요양시설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노인들이었다. 팬데믹 초기에는 그 비율이 80%에 육박했다. 팬데믹 초반이었던 지난해 봄엔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퀘백과 온타리오주의 일부 장기요양시설에 군인들이 파견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노인들을 돌볼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노인들이 마주한 충격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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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9일, 캐나다 노스 밴쿠버에 있는 라이온스 게이트 병원의 직원이 안면 가리개와 마스크를 얼굴에 하고 임시로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앞에 서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파견됐던 캐나다군(CAF)은 이후 실태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모든 장기요양시설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군이 목격한 실태는 캐나다인들을 경악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부족한 인력, 바퀴벌레 등 들끓는 벌레, 상한 음식, 강제 급식, 노인들의 도움 요청에 대한 장시간 무응답, 제때 갈지 못한 기저귀와 침대 시트 등 열악한 상황이 캐나다군의 보고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올라 캐나다 전체가 떠들썩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관계자와 가족들이 수년간 지적해왔으나 자금 삭감, 시설의 민영화, 정부의 태만과 관심 부족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던 문제들이었다. 거기에 보호장비 부족, 직원 부족의 심화,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공간 공유 등의 문제가 더해졌다.


이러한 캐나다군의 보고는 전 국가적 관심과 책임을 환기시켰고, 이후 실태를 조사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게 됐다. 현재 관련 인력 배출을 위해 국가지원 무료 속성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직접 원인이라고는 해도, 이미 많은 노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세상을 등진 후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코로나 방역수칙 때문에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했다. 비단 장기요양시설 거주자들 뿐 아니라 사망자들의 상당수가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만 가족들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가 됐을 것이다. 4년 전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도 그랬기에, 마음의 준비 없이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는 것, 작별의 순간을 곁에서 지키지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지를 잘 안다.

"너무 일찍 떠난 모든 분들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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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1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시민이 포스터를 지나가고 있는 모습. 캐나다 정부는 3월 11일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거행했다. ⓒ 연합뉴스=신화

  
이에 퀘백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꼭 1년이 된 지난 11일,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열었다. 퀘백 주지사 프랑수아 르고(Francois Legault)를 비롯해 유가족, 의료 종사자들, 정치 지도자들이 주도인 퀘백시에 모여들었다. 3시간가량 떨어진 몬트리올에서 연주하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국회의사당 밖에 놓인 커다란 화환 앞에 한 사람씩 흰색 장미를 내려놨다.

추모식에서 프랑수아 르고 주지사는 지난 1년간 의료진과 필수업계 종사자들의 노력을 치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심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퀘백을 있게 한 우리의 어르신들에게 더욱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를 잃었습니다. 오늘, 퀘백은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난 그 모든 분들을 기억합니다."

이날 <더 캐네디언 프레스>(THE CANADIAN PRESS)에 몇몇 유가족의 사연이 실렸다.

루시에 가르노는 지난 12월 98세의 아버지를 잃었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나이가 많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건강상태가 좋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병이 있든 없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남기는 슬픔은 다르지 않다. 지난한 삶을 오래 살았기 때문에 혹은 너무 짧은 생을 살았기 때문에, 병으로 고생했기에 혹은 병 없이 멀쩡했기에, 모든 죽음은 황망하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의사의 도움으로 페이스타임을 통해 마지막 보았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알지, 얘야.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란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녀도 말했듯, 추모식은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 그 경험을 잊지 않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해줬을 테다. 그들과 함께 한 애도가 위안과 치유로의 여정을 도왔을 것이라 본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너무 많은 상실과 아픔을 안겼다. 우리는 아직도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가운데 있는 지금,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앞으로도 이땅에서 삶을 이어가야 할 이들이 코로나19가 남긴 참혹한 사망자 수치를 잊지 않기를. 그 수치가 무엇에서 비롯됐는지, 멈춰야 할 인간의 잘못은 무엇인지 두고두고 되새기길. 그리고 가혹한 바이러스에 생명을 잃은 이들이 단지 통계수치로만 기억되는 일이 없길... 남은 가족들의 상처가 다른 많은 이들의 애도와 잊지않음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19 #캐나다 #퀘백 #추모식 #팬데믹 이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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