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로 여는 아홉 빛깔 평화

꼬마평화도서관이 고른 2021년 상반기 평화 책

등록 2021.03.17 10:52수정 2021.03.2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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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 미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북한을 커다란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으면서, 중국은 하기에 따라 협력과 경쟁 또는 적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적대감, 벗어던지기 어려우려나요. '꼬마평화도서관(아래부터 꼬평)'에서 가려 뽑은 2021년 상반기 어우름 책에는 적대를 떨쳐낼 헤아림이 소복해요.

<탈북자>(조천현/보리), <벗>(백남룡/아시아), <우리는 이미 평화의 길 위에 서 있다>(김재신/기역)는 글밥이 많은 책이고요. 그림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병사와 소녀>(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문학과지성사)도 글밥이 제법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고바야시 유타카/미래아이),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동학평화책학교 1기/ 책마을해리),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책읽는곰) <누가 진짜 엄마야?>(버나뎃 그린/원더박스), <가만히 기울이면>(조 로링 피쳐/불광출판사)은 그림책이에요.
  

2021, 상반기 꼬평이 고른 평화 책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은 2021년 상반기 평화 책 기둥을 '지피지기'로 삼았다. ⓒ 변택주

 
여기엔 꼬평 관장님들 숨결이 고스란해요. <병사와 소녀>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은 마흔한 번째 꼬평 이금영 관장님이,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열다섯 번째 꼬평 이명정 관장님이 골라주셨어요. 다섯 번째 꼬평 이대건 관장님은 <우리는 이미 평화의 길 위에 서 있다>와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 두 권을 골랐을 뿐 아니라 몇십군데 되는 꼬평에 다 놓일 수 있도록 보내주기까지 하셨어요. 참, 서른여섯 번째 꼬평 최미숙 관장님도 <가이아-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골라주셨는데 살짝 어려워서 빠졌어요.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머리 깨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목숨을 잃어도 괜찮은가요? 이번 평화 책을 고른 기둥은 '지피지기'예요. 초등학교 1·2학년에게 평화가 뭐냐고 물으니 입 모아 '사이좋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이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피지기해야 합니다. 지피, 저쪽을 깊이 살피다 보면 '너도 나처럼 몸을 다치면 아파하고 마음을 아프면 나 못지않게 괴로워하는구나' 하거나 '네가 말을 더듬거린다고 해서 생각이 짧은 건 아니구나. 나와 다르다고 해서 잘못이랄 수 없겠구나' 하며 사랑 어린 사람이라 받아들이게 되어요. 그런 줄 알면 가까워지지는 않더라도 적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겠어요.

<병사와 소녀>에선 적이라 여기는 이들도 나 못지않게 평화를 사랑하며 전장에 올 때까지 아무도 죽여본 적이 없는 사람이며, 잠깐 멈춘 전투 틈틈이 품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 사진을 꺼내 본다고 일깨워요. 그런데 나라를 살린다는 허울 아래 젊은이들을 죽을 구덩이로 몰아넣거나 제 잇속 챙기기에 눈이 벌건 이들이 병사를 속였다고 흔들고요.

전쟁에 휘말린 아프가니스탄 아이가 맛있는 파구먼 버찌를 파는 풍경으로 문을 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은 "그해 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며 막을 내려요. 헤밍웨이도 "전쟁에서 아름답거나 보기 좋은 죽음 따위란 없다. 그대는 아무 까닭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하고 드잡이했다지요?
 

평화는 이렇게 가끔 뽀송뽀송 ⓒ 책마을해리

 
<평화는 가끔 이렇게 뽀송뽀송>은 책마을 해리에서 연 여름동학평화캠프에 온 아이들이 남긴 얘기인데요. 뽀송뽀송한 평화를 펼쳐 듭니다.

<우리는 이미 평화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적과 더불어 사는 법을 비롯해 전쟁과 테러 막기나 아이 키우기, 자연과 어울리기처럼 폭넓은 평화를 스물여덟 사람 목소리로 들려줘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꼭지에서 폴란드 선생 코르차크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 혼자서 문 열 줄 아니?"
"알아요. 화장실 문도 열 줄 아는걸요!"


스스로 대견해하는 아이를 보며 픽 웃던 코르차크는 이내 뉘우칩니다. '아이는 이제 누군가를 믿고 비밀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면서요. 저 얘기 끝에 한 "나는 눈부신 놀라움으로 가득 찬 아이들에 대해 '모르겠다'는 말이 얼마나 경이롭고 생명력 넘치는 말인지, 사람들이 이 말을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싶다"란 말이 좋았어요. 모르겠다고 하면서 헤아리려고 다가서는 게 평화로워지는 지름길 아닐까 싶어서요.
  
'탈북자'라고 하면, 오직 북녘체제가 싫어서 북녘땅에서 벗어났다고만 받아들이세요? 다 그런 것은 아니래요. <탈북자>에서는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더군요. 우리가 어렵게 살 때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나라로 밀항하거나 관광비자로 가서 눌러앉아 돈벌이한 이들이 있듯이 돈을 벌어서 북녘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있고, 이민자들처럼 중국에 살면서 고향에 돈을 부치려는 이들도 있다네요. 탈북자들은 북녘으로 돌아갈지, 남녘으로 갈지, 중국에 머물지 뜻을 굳히는 데 10년을 넘기기도 한다고 해요. 스스로 갈피 잡기도 이토록 어려운데 '저이들은 이래!' 하고 몰아붙이는 사이를 비집고 평화가 깃들기는 어려울 테죠?

<벗>은 북조선 작가 백남룡이 1988년에 펴낸 소설입니다. "리혼시켜 주세요. 그이와는 생활 리듬이 통 맞지 않아요." 노동자로 살다가 성악가가 된 아내가 노동자인 남편과 이혼하겠다며 찾은 판사 앞에서 던진 말이에요. 북녘 여성도 당당하게 '이혼하겠다고 나서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제 무지에 놀랐고요. 우리와는 달리 이혼 소송을 맡은 판사가 서류와 변론만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직장과 이웃, 식구들을 찾아다니며 까닭을 짚는 모습에 뭉클하기도 했어요.
 

둘 중에 누가 진짜 엄마냐구? "배 속에 너를 담고 있던 엄마가 진짜 엄마인 거야." ⓒ 원더박스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를 본 적 있으세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선 말을 더듬어 놀림감이 되는 아이 손을 잡고 강으로 간 아버지가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강물처럼 말한단다" 하고 다독여요.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는 강물을 바라보던 아이는 강물도 더듬는다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요.

<누가 진짜 엄마야?>에선 어른이라고는 여성 두 분밖에 없는 집에 아빠 손 잡고 놀러 온 아이가 물어요. "두 분 중에 누가 너희 엄마야?" 그 집 아이가 "두 분 다"라고 하니까 놀러 온 아이는 "배 속에 너를 담고 있던 사람이 진짜 엄마인 거야. 그 엄마가 누구야?"하고 받아요. 참으로 그런지 가만히 기울여볼까요?
 

가만히 기울이면 가만히 우단 옷감 같은 강아지 털에 볼을 대고 보드라움을 느껴보아요 ⓒ 불광출판사

   
<가만히 기울이면>을 펼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아요. 같이 보실래요? 가만히 들어보아요. 가만히 모아보아요. 가만히 느껴보아요. 가만히 세어보아요. 가만히 기다려보아요. 가만히 떠올려보아요. 가만히 바라보아요. 가만히 찾아보아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만가만 살살 누리다 보니 저 깊은 곳에서 울림이 가만가만히 일어나네요. 어울림일 테지요?

이 봄에는 부디 코로나가 잦아들어 나라 곳곳에 있는 꼬마평화도서관에서 평화 책 연주하는 소리가 결 곱게 울려 퍼지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간추려서 아이들이 보는 월간지 <개똥이네놀이터>에도 싣습니다.
#꼬마평화도서관 #2021상반기평화책 #탈북자 #병사와 소녀 #누가 진짜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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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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