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학교에 전화해 이런 '삭막한 질문' 그만해주세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대입 반영되지 않으니 봉사활동 필요 없다는 아이들과 학부모

등록 2021.03.29 07:41수정 2021.03.29 07:41
6
원고료로 응원
a

2019년 11월 28일 유은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 룸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위해 마이크를 고쳐 잡고 있다. 대입정책 4년 예고제에 따라 2024학년도 대입부터는 정규교육과정 외의 활동에 대한 대입 반영이 폐지되었다. ⓒ 연합뉴스

 
"선생님, 올해 봉사활동을 굳이 해야 하나요?"

학년 초 말문이 막힐 정도로 뜬금없는 질문을 연이어 받고 있다. 부러 학교에 전화를 걸어 묻는 학부모도 있고, 답을 듣기 위해 교무실에 직접 찾아오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낯선 질문에 순간 당황한 나머지, 무슨 뜻인지 되물어야 했다.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올해 고1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4학년도 대입에서는 봉사활동이 전형자료에 반영되지 않으니, 애꿎게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수능 과목 공부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현재 봉사활동은 생활기록부에 시간과 시행 기관, 내용을 간략히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반영 여부는 각 대학이 결정하지만, 대개 참고 자료로만 활용될 뿐 당락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여 교육부의 지침에서도 봉사활동은 학교별 '권장 사항'일 뿐이다.

그마저도 올해 고1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봉사활동에 대한 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대입 전형자료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하다. 교육과정이 대입에 종속된 현실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과거 교육부가 봉사활동을 정량화하여 대입 전형자료에 반영하기로 방침을 정했을 때, 학교 안팎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당장 대입에 연동시키면 봉사활동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자발적이지 않은 봉사활동의 한계


결국, 교육부의 의지대로 봉사활동은 비교과 영역인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부로 편성되어 이수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목'이 됐다. 이후 1년에 개인당 20시간을 기준으로 학교마다 학사일정에 삽입되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학교와 개인이 시간을 반반씩 나눠 봉사활동이 운영되고 있다.

봉사활동을 대입 전형자료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회귀 결정은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온갖 편법이 난무하며 아이들이 봉사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기는커녕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직시한 것이다. 자발적이지 않은 봉사활동이 지닌 한계다.

이는 학교 안의 문제만도 아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서 운영하는 봉사활동 온라인 시스템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참고로, '1365 자원봉사포털'과 'DOVOL(청소년 자원봉사)'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이들과 활동 기관을 연계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해당 기관에 대한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 십중팔구는 활동 기관은 다른데, 실제 활동 내용은 똑같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청소만 하다 왔다거나, 내내 잔심부름만 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기관에서는 학생들이 봉사활동 오는 것 자체를 귀찮게 여기는 것 같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관심이 있는 봉사활동 기관도 마땅치 않은 데다, 막상 마음먹고 가도 허드렛일만 하는 현실은 봉사활동을 더욱 천덕꾸러기 신세로 만들었다. 애초 대입 전형자료로 반영할 요량이었다면,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연계 방안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학교 안팎에서 봉사활동은 그렇게 '시간 때우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입에 보탬이 안 되니 할 필요가 없다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삭막한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봉사활동의 취지를 설명하면 대번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할 게 뻔하고, 현실을 말하면 봉사활동의 의미와 가치는 다시 또 조롱받게 될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렇게 얍삽하게 살지 말라고 퍼붓고 싶은 심정이다.

'실험'은 끝났다
 
a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예비 소집일인 지난해 12월 2일 수험생들이 한 교육청 앞에서 수험표를 받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며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시지탄이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봉사활동을 정량화해서 대입 전형자료로 쓰겠다는 건, 아이들에게 시험에 출제한다고 을러대 억지 공부를 시키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방식이다. 공부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게 된 것과 봉사활동이 조롱받는 건 맥락상 이유가 같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채 '실험'은 끝났다. 하긴 이는 봉사활동만의 문제도 아니다. 알다시피, 올해 고1은 대입에서 봉사활동을 비롯해 수상 실적과 독서 이력, 자율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등 사실상 비교과 전 영역이 전형자료에 반영되지 않는다. 생활기록부에는 교과 성적과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정도만 남게 되는 것이다.

독서 이력을 반영해야 책을 많이 읽게 될 테고, 자율 동아리 활동을 기재해야 자기 주도적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또, 진로 활동을 반영해야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진로를 탐색할 거라는 발상.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나, 결과는 참담했다. 학교와 아이들은 끊임없이 편법을 체득하고 공유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기소개서의 폐지다. 사실 학생부종합전형이 대폭 확대되면서 자기소개서는 '공공의 적'이 됐다. '자소설'이라고 불리며 비난의 표적이 된 것이다. 관련 사교육이 성행하는가 하면, 공교육 내에서도 대필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교사로서, 교과의 범주를 넘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 믿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분명 지나친 욕심이겠으나, 자기소개서만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하는 때가 어서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고작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백배 천배 더 중요한 능력이라 확신한다.

여전히 자기소개서를 써보도록 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면 폐지가 결정된 마당에, 학년 초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을 면담할 때를 제외하곤 자기소개서를 써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수행평가로 삼을라치면, 대번 쓸데없는 짓 말라며 도끼눈을 뜰지도 모른다. 벌써 글쓰기로부터 해방됐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차마 건네지 못한 대답

봉사활동 미반영부터 자기소개서 폐지 결정까지, 이유는 단 하나다. 공정성이 의심되므로 기록된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믿을 수 있는, 솔직히 말하자면, 다수가 공정하다고 믿는, 선다형 시험의 정량화된 결과로 우열을 가리자는 이야기다.

공정하지 않으니 신뢰할 수 없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앞뒤를 바꿔 읽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한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다 보니, 사안마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면 사생결단식으로 달려든다.

요컨대,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대입 제도를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으로 퇴행시키고 있다. 덩달아 학교 교육도 기능부전에 빠졌다. 앞으로 봉사활동을 비롯해 대입 전형자료에 반영되지 않는 비교과 영역은, 장담하건대, 학교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운영될 게 뻔하다.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대입에 다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반영 여부와 상관없이 파행을 거듭해온 비교과 영역이 그 취지를 살리려면, 대입에 연연하지 않는 공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 다양한 교육 활동을 온전히 대입에 저당 잡힌 작금의 현실이 혁파되지 않는 한 공교육 정상화는 백년하청일 뿐이다.

그들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대입에 보탬이 안 되니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이타심의 발로여야 할 봉사활동을 모독하는 짓이다. 봉사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일이다. 타인과 자신이 얽혀 있다는 유대감, 곧,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없다면, 그건 차라리 '동물의 왕국'이다."
#봉사활동 #2024학년도 대입 전형 #비교과 영역 #자기소개서 폐지 #학교생활기록부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