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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사기면 어때? 위험천만 '힙 투자' 빠진 사람들

[진화하는 코인 사기 ③] '나만 안걸리면 된다' 폭탄 돌리기... 그러다 쇠고랑 가능성

등록 2021.04.16 13:34수정 2021.04.1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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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들썩이면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 열풍이 거세지는 만큼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를 노리는 사기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세 차례에 걸처 조명해 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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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별로 가격이 다른 암호화폐를 사고 팔면서 차익을 실현한다고 주장했던 스위스의 온라인 금융 플랫폼 phpTrader는 지난 3월 24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 phpTrader

  
"이 투자는 99.9% 회사가 망한다는 전제하에 시작합니다."

누리꾼 Tom***는 암호화폐를 일정량 사두기만 하면 매일 원금의 1.5% 수익을 돌려준다는 한 업체를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서 소개하며 이같이 적었다. 망할 것 같은 회사를 피하는 '보통'의 투자 방식과는 달랐다. 그는 거꾸로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망하리라고 확신했다.

대신 그가 기대한 건 고수익. 그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만 감수하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오래 갈 (투자) 프로그램을 찾아 초기 진입, 원금 이상의 수익을 내고 빠져나오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가입할 때 서로를 추천인으로 입력하면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며 SNS 그룹 채팅방의 주소도 안내했다. 

투자처를 소개하는 내내, 그는 이러한 투자 방식을 '힙(HYIP, High Yield Income Programs) 투자'라고 불렀다.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힙 투자'의 본질은 피라미드식 다단계 금융 사기의 일종이다.

기자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힙 투자 실태를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3월 초, 투자자 100여 명이 모인 한 SNS 그룹 채팅방에 참여했다.

힙 투자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코인 스테이킹'을 모방한 신종 코인 사기를 역이용한다. 코인 스테이킹이란 정해진 기간에 암호화폐를 사두면 매일 원금의 일정량에 해당하는 수익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사기 업체들은 매일 높은 이율의 수익금을 주겠다며 투자자들을 유혹했고, 지인을 데려오면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다단계 형식까지 갖추고 있다. 

힙 투자자들은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의 투자금을 먼저 들어간 사람들에게 수익으로 나눠주는 다단계 사기 구조를 통해 수익을 챙긴다. 사업 초기 빠르게 투자금을 넣고 지인 등을 끌어모아 수익금을 받은 뒤 회사가 망하기 전 투자금을 회수해 빠져나오는 것이다. 실제 이런 위험천만한 힙 투자를 통해 운 좋게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다.


다단계 사기를 재테크에 역이용하다

"phpTrader 얼마나 갈까요?"
"오래 갈 거예요. 전 1000만원이나 넣었어요."


기자가 처음 채팅방에 입장했을 때, 투자자들은 이미 '피에이치피 트레이더(phpTrader)'라는 이름의 회사가 언제까지 운영될 수 있을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 회사는 유명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차익 거래로 수익을 남기는 스위스의 온라인 금융 플랫폼 업체였다. 채팅방 내 일부 투자자들은 "phpTrader는 수익 구조가 명확하다"며 "사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든 암호화폐 가격은 거래소별로 다르다. 같은 물건이라도 시장별로 다른 가격에 팔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 보니 특정 암호화폐를,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거래소에서 산 뒤 비싸게 팔리는 거래소에 내다 팔면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phpTrader는 투자자가 비트코인을 구입해 자사의 가상화폐(USDP)로 바꿔두면 '암호화폐 거래 로봇'을 통해 차익을 남겨주겠다고 했다.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언제든 전액 출금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매일 제공되는 고수익은 다단계 사업 구조에서 나오는 여느 사기 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투자자 아래 '추천인'이 달릴 때마다 투자자에게는 더 높은 수익이 주어졌다. 1~2명이 들어올 경우 원금의 0.5%, 3명이면 1%, 4~5명이면 1.5%, 6명 이상이면 2%가 매일 들어왔다. phpTrader는 모든 수익금의 50%를 수수료로 떼갔지만, 추천인을 데려올 경우 수수료가 최대 27%까지 낮아졌다. 

그래서 그룹 채팅방 내 투자자들은 추천인 모으기에 열을 올렸다. 기자가 처음 채팅방에 입장했을 때 몇 사람으로부터 "phpTrader에 가입했냐"는 메시지가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추천인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높은 수익률 확보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목표는 빠른 원금 회수였다. 힙 투자 특성상, 회사가 사기의 본색을 드러내고 잠적하면 투자금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위험을 잘 알고 있는 힙 투자자들은 매일 나오는 높은 수익으로 빠른 시간 내 원금 이상을 벌어들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실제로 채팅방 내 소수의 투자자들은 "이미 원금 회수를 끝냈다"며 "앞으로는 수익을 낼 일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극도의 긴장감

투자자들은 채팅방 내 메시지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업체들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다.

실제로 신종 다단계 코인 업체들은 별안간 사업을 접고 잠적한다. 지난 2월 사라져버린 핀란드의 온라인 금융 플랫폼 기업 와이즐링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한 번도 출금 지연이 없었던 와이즐링은 '핀란드 중앙은행·유럽연합과 카드 연결 계약을 체결해 은행 계좌를 연결한다'며 72시간 동안 출금을 제한하다 사라졌다. 이런 습성을 알고 있던 투자자들은 투자처의 업데이트 소식을 알게 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채팅방에 정보를 공유했다.

투자금을 모두 잃을 가능성에도 이들이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마이뉴스>는 '힙 투자' 관련 정보를 자신의 SNS에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는 한 누리꾼과 지난달 23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와이즐링 투자 피해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와이즐링 사건은 힙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익명성이 강해 추적하기가 어려워 업체의 잠적으로 돈을 잃으면 돈을 포기하고 있다"고 의연하게 답했다.

이 누리꾼은 이른바 '코인 판'에서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힙 투자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부터 금융권 이자가 낮아 저축하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비트코인을 사모으곤 했다"며 "그 후 각종 코인 투자를 시작했지만 한국 시장에는 제대로 된 코인 투자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내 코인 시장은 세력들이 한 코인에 집중 투자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며 개인들의 투자를 유도한 뒤 한 번에 털어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피해를 입던 중 힙 투자를 접했다"며 "남에게 돈을 맡기지 않아도, 매번 차트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시스템 또한 단순했다"고 밝혔다. 또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지만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며 "힙은 암호화폐 세계의 축약형이다. 욕심만 안 부리면 어느 정도 수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힙 투자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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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투자 재테크 채팅방 재구성. ⓒ 고정미

 
하지만 힙 투자는 대부분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달 22일 저녁. 평소와 달리 채팅방이 소란스러워졌다. phpTrader가 30시간의 업데이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회사 측은 홈페이지 접속을 제한하며, 심각한 해킹 시도가 발견돼 시스템을 원상 복구한다는 메시지를 사이트 전면에 띄웠다. 투자자들은 '먹튀' 가능성을 점치며 전전긍긍했다. 방장은 "수익구조가 탄탄한 만큼 별일 아닐 것"이라며 참여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이틀 뒤인 24일 오전 3시 10분께 회사 측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내 꾸려둔 '공식 채팅방'에서 투자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투자자들은 "지금 채팅방에서 강퇴당했는데 끝난 거냐"고 서로 묻기 바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트도 폐쇄됐다. 그렇게 이들의 힙 투자도 막을 내렸다. 

채팅방에는 최소 몇 십 만원 단위부터 최대 1억원 넘는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로 넘쳐났다.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다단계 성격을 띠고 있어, 이미 지인들이나 가족들 또한 투자로 끌어들인 뒤였다. 한 투자자는 "동료와 가족들에게 phpTrader를 권해 이미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돈 잃고 인간관계까지 잃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구제 방법을 찾지 않고 체념하는 분위기였다. 한 투자자는 "좋은 일에 기부했다고 생각하고 맘 편히 잊겠다"고 했다.

"사실상 다단계의 공범"... 돈 날릴 뿐 아니라 형사 처벌 가능성도

하지만 힙 투자는 돈만 잃는 데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단계 사기임을 알고도 지인들을 끌여들여 참여하는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각종 금융 사기 행각을 고발하는 포털사이트 카페 '백두산'의 운영자(아이디 대마불사)는 "힙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돈만 되면 다 하는 이들"이라며 "다단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멋모르는 사람들을 '낚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기 업체들과) 사실상 공범이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안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정향 ) 역시 "다단계 코인 업체가 사기인 줄 알면서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기 아래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투자를 감행했다면 사기죄 공범으로 법적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다단계 #PHPTRADER #코인 #스테이킹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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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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