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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달고 알싸한 맛의 향연, 입이 호사를 하네

그리운 맛, 봄나물 사러 공주산성시장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21.03.29 08:39수정 2021.03.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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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품의 머위라 한 소쿠리에 5,000원이라는 머위 양을 한 손님이 가늠해 보고 있다. 상인한테 직접 캐왔는지 물으니 "우린 캐러 다닐 새는 없지요. 도매로 떼 오는 거예요."라고 머위 출처를 솔직히 말해 준다. ⓒ 박진희


   
새봄이 돌아왔다. 이 산 저 들로 바지런히 움직였더니 우리 집 식탁에도 곧잘 봄 내음이 퍼진다. 달래된장국이며 고들빼기김치, 여린 민들레 겉절이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만든다. 요맘때면 향긋한 봄나물이 선사하는 쓰고 달고 알싸한 맛의 향연으로 하루하루가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다.


26일, 산골 어매와 할매들이 직접 캐온 봄나물을 기대하며 모처럼 공주장에 나가 봤다. 늘 먼저 찾던 골목 대신 할머님들이 나물거리 몇 주먹씩 놓고 좌판을 벌이는 곳으로 콧바람 잔뜩 넣고 들어섰다. 쑥, 돌미나리, 씀바귀, 곰보배추.... 봄나물을 골고루 늘어놓은 좌판을 둘러보고 있자니, 뒤이어 온 손님이 황급히 흥정을 시작한다.

"할머니, 미나리 얼마예요?" 
"이천 원만 내유."


미나리를 산 주부는 옆에 있던 풋마늘 가격도 묻더니 깨끗하게 까 놓은 걸 한 소쿠리 담아 간다. 이 골목 할머님들이 가져온 나물은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데, 이상하게 손님이 들기 시작하면 한곳으로만 손님이 몰린다. 한바탕 손님치레(?)를 끝낸 할머님이 다른  할머님들 들으라고 근자에 있었던 일을 떠벌리기 시작한다.

"땅 7마지기 있는데, 아들놈이 말 한 마디 안 하고 포클레인으로 다 갈아엎은 겨. 어찌나 열불이 나던지.... 고랑 하나에다 돌미나리 캐다 심었더니 이렇게 많이 나는 걸...."

손님들 발길이 뜸해진 장터 골목에는 그렇게 보통 사람들이 재미나게 사는 얘기가 퍼져나간다. 


"한 며칠 머위를 무쳐 먹고 쌈 싸 먹었는데도 남아서 오늘 장에 들고나온 겨. 8500원 벌어 가네." 
"근디 다음 장에도 가격이 오늘 같으면 어쩐댜? 달래도 삼천 원 받아야 할 걸 안 팔려서 이천 원  받았는데...."

땅이 내준 대로 거둔 것을 욕심 없이 파는 할머님들의 소박한 삶은 봄나물로 차린 이즈음 밥상을 꼭 빼다 박은 듯하다. 시내까지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도 안 빠질 만큼 이문이 적을까 봐 근심하는 하소연을 듣다가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나 왔다.
 

장을 다 본 할머님 한 분이 키워 먹을 상추 모종을 사 들고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 박진희

 
시내버스터미널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손님 손에는 상추 모종을 빼곡히 담은 박스가 들려 있다. 몇 본 심어 놓으면 여름 끝날 때까지 반찬 걱정은 싹 잊을 테니 부럽기만 하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소일삼아 대파며 고추, 깻잎까지 키워서 자급자족하는 분들도 많던데, 내 손만 거치면 왜 전부 죽어 나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나들이 삼아 때마다 장에 나올 밖엔.
 

집단장용으로 값이 싸면서 화사한 꽃이 피는 꽃화분을 구입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 박진희

 
"이거 하나 줘 봐유."

꽃 파는 좌판에 들르니, 손님은 살 화초를 결정했는지 주인을 찾는다. 주인에게 이천 원을 건네는 손님 손에는 '기자니아' 화분이 들려 있다. 이곳도 꽃 화분 하나가 신호탄이 되어 연이어 손님들이 들기 시작한다. 

"저분 사가는 민들레 같기도 하고, 지칭개 같기도 한 건 꽃이 예뻐요?"
"가자니아유? 빨간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는디 지금 봐선 뭐가 필지 몰라유."


값이 싸서인지, 화초도 유행을 타는 때문인지 몰라도 여러 손님 손에 가자니아가 들려 나간다. 오일장에서 분명 어떤 손님 손에 '금낭화' 화분이 들린 걸 봤는데,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금낭화가 있는지 물으니 "작년에 2~3,000원 하던 게 올해는 오천 원이나 하니 갖다 놓을 수가 없쥬"라고 주인장이 귀띔해 준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많이 사 가는 화초는 유행보다는 꽃값에 좌지우지 되나 보다.

짧기만 한 봄날, 올해는 왜 더 서두르지?
 

3월인데도 5월 기온이었던 이날 한 상인이 반소매 차림으로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 박진희

   
"맛 좋고 몸에 좋은 봄나물, 사 가세요."

다른 골목에 들어서니 장날에만 나와서 연로하신 시어머님과 채소 좌판을 벌이는 젊은 여사장님 목소리가 들려온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느라 마스크를 벗는 찰나, 드러난 얼굴은 온통 땀범벅이다. 눈이 마주치자, 땀을 닦아가며 인사 대신 한마디 건네온다.

"오늘 무지 덥지요? 저는 반팔인데도 이러네요."

날이 따뜻해진 데다 마스크를 쓴 채로 이 손님 부르랴 저 손님 맞으랴 동분서주하니 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겠지. 그런데도 늘 웃는 낯으로 정직하게 장사하고, 삶의 무게를 견뎌가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듬직한 여전사다. 

집에 돌아와 TV 뉴스를 들으니, 5월 같은 3월 기온을 기록한 이날 최고기온이 무려 25℃였단다. 채소상의 젊은 여사장이 반팔 소매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낸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열무, 감자뿐만 아니라 갯가에서 자라는 세발나물이며 갖가지 봄나물까지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들이 출하되는 중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밭작물이며 과일이 시도 때도 없이 장에 나오니 가끔은 제철을 망각한다.

그래서 겨우내 땅속 좋은 양분 들이키고, 따스한 볕과 바람 맞으며 자란 봄나물로 입 속 호사를 좀 누리나 기꺼웠건만, 계절은 벌써 여름을 재촉하는 신호를 보내오니 야속하기만 하다.
#봄나물 #꽃모종 #봄소식 #건강한 밥상 #이상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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